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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Mar 28. 2017

14. 친구 혹은 관계의 확장

카카오 플러스친구

카카오톡 채팅 목록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친구, 연인, 가족의 개인 톡과 단체톡 사이로 띄엄띄엄 끼워져 있는, 채팅의 상대라고 하기엔 다소 낯선 이들이었다. 그들 때문에 내가 채팅하고 있는 대상은 지인뿐이 아니었다. 하지만 카카오에서는 그들도 '친구'라고 부른다. '플러스친구'(줄여서 플친)이라는 이름이다.



# 어쩌다보니, 내 친구들



카카오톡에서는 기업이나 단체가 플러스친구 계정을 등록할 수 있다. 플친과 친구를 맺으면 그 기업이 제공하는 각종 소식이나 정보들을 그때그때 푸시 형태로 받아볼 수 있다. 카카오의 채팅창을 빌려서 말이다. 가끔 광고 메시지가 올 때도 있지만, 내가 보고 싶어 할 만한 신규 콘텐츠를 먼저 배달해주니 편리함이 크다. 메시지 알람도 켜두고 있어서 플친의 메시지를 받아보는 내 모습은 지인들과의 채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양새만으로는 카카오 상의 '친구'라고 불러도 정말로 무방하다.


유독 흥미로웠던 건 그게 정말로, 그저 친구 같아보였다는 점이다. 채팅창을 찬찬히 뜯어보니 더 그랬다. 플친의 채팅방은 마치 진짜 친구의 그것처럼 위장을 하고 그 많은 '진짜' 채팅방들 사이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플친 채팅방의 디자인은 일반 친구의 그것과 다르게 구성되지 않았으며, 그들이 건네는 메시지 형태도 채팅방의 말풍선 모습을 그대로 취하고 있다. 이는 카카오의 의도된 전략이었을 것이다. 기업이 건네는 메시지란 게 순수하게 비상업적일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채팅이라는 형식으로 유지되는 플친과의 관계는 '좋은/최적의 콘텐츠 제공'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기업과의 소통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켜준다.



# 친구라는 지위


몇 달 전, 인터넷에서 주문제작 형태로 콜드컵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결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사이트는 카톡 1:1 채팅방을 열었다. 컵에 새겨질 문구를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원하는 디자인, 배송 날짜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플친은 나의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내 주문을 세심하게 다뤄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트였고 주문을 단 한 건 진행했을 뿐이지만 나와 소통하는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금세 친근하게 느껴졌다. 플친의 상냥한 말투도 좋은 인상에 한몫을 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감사합니다.", "^^" 같은 표현이 절로 나왔다. "좋은하루되세요♥" 나도 하트를 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채팅이라는 매개를 통해 특정 기업과 이용자/소비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보다 친밀하고 가깝고 개인화된 관계다. 기업은 거대하고 막연하고 또는 돈 밖에 모르는 장사꾼이 아니라, 마치 친구처럼 나에게 대화를 걸어오는 '누군가'가 되었다. 상품과 서비스를 접하고 소비하는 과정은 이미 많이 달라져있다. 플러스친구의 메시지도 내 친구들의 안부 톡처럼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친구'라는 네이밍만으로 연결과 관계의 시작일 수 있다. 게다가 기업이 더 이상 무분별한 광고들을 폭격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솔깃할 만한 콘텐츠로 매일매일 인사를 건넨다면? 설사 의도가 순수하지 못했을지라도 친구가 못 될 것도 없다.



# 어떤 연결들일까


물론 아직은 기업의 일방적 발송이라는 성격이 짙다. 오늘 이 메시지를 받은 나는 그 플친을 구독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도 떨칠 수 없다. 다만 지금은 그 긴밀한 관계 형성의 초입으로 보인다. 확신할 수 있는 점은 우리가 '관계'를 맺게 될 이들이 더 이상 진짜 사람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우리의 연결성은 전 세계적이고 전방위적이어서 충분히 버거울 정도지만 연결의 지점들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누구와 어떤 연결을 짓느냐에 따라 저마다의 삶과 경험은 달라지지 않을까. 누군가(사람이든 아니든)와의 연결 없이는 생활조차 불가능한 시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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