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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따비 Apr 07. 2017

19. 카페가 기술을 만났을 때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

자주 애용하는 스타벅스에 오늘도 갈 일이 생겼다. 무료 음료 쿠폰의 기한이 얼마 안 남아서 아무래도 이걸 써야겠다 싶었다. 외출을 위해 옷을 챙겨 입으면서 뭘 마실까 고민했다. 무료 쿠폰이니 비싼 음료를 시켜야지. 이번 시즌에 새로 나온 프라푸치노가 궁금했으니 너로 결정.


매장으로 가는 길, 스타벅스 앱에 접속해 사이렌 오더를 켰다. 가까운 매장을 선택하고 먹고 싶었던 음료를 골랐다. 영양정보를 확인해보니 칼로리가 상당하다. 주문 화면에서 '퍼스널'로 들어가 휘핑크림과 시럽을 조절해 칼로리를 최대한 낮추면서 맛있게 먹을 최적의 상태로 맞췄다. 음료 사이즈를 올리면서 추가 금액은 통신사 할인 혜택으로 처리했다. 앱에 보관된 쿠폰으로 결제하고 나니 주문이 접수되었다고 뜬다. 매장 도착 1-2분 전이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그 복잡한 주문이 깔끔하게 끝이 났다. 매장에 들어서자 마침 서버(직원)가 "주문하신 체리블라썸 그린티 프라푸치노 나왔습니다" 하며 음료를 올려놓는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그와의 마주침은 잠시, 곧장 음료를 들고 마음에 드는 테이블에 자리 잡는다.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가 만든 풍경이다.




# 좋은 서비스의 새로운 기준


스타벅스 앱은 여느 요식업체와 비교해도 모바일 앱 부문에서 이상적인 모델이라 할 만하다.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의 이용자 만족도 역시 상당히 높다. 스타벅스는 작년부터 사이렌 오더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도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바일 커뮤니케이션과의 연결이 긴밀하지 않던 카페 영역에서 새로운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이렌 오더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좋은 서비스를 가늠하는 일반적인 기준인 '친절함'이 쏙 빠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우리를 응대하는 것은 기계이다. 더 친절하고, 덜 친절할 것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고객을 존중해야 하고, 상냥한 말투와 표정을 유지해야 하며, 단정한 이미지를 갖추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우리가 사이렌 오더에 기대하게 된 건 개인에게 맞춰진 서비스만의 장점들이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주문의 과정이 복잡하지 않은지, 인터페이스가 잘 갖춰졌는지, 버벅거림 없이 원활하게 작동하는지, 직원의 직접적인 응대에 걸맞을 만큼 원하는 서비스가 모두 제공되는지.


사실 카페에서 대단한 서비스를 기대할 것도 없다. 주문을 잘 받고 음료를 잘 만들어주면 된다. 사이렌 오더는 주문을 받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잘한 문제점이나 돌발상황들을 걷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충분히 시간을 줄게. 네가 원하는 음료를 정확히 입력해줘.'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것이 맞춤형 서비스다. 고객 입장에선 부담 없이 충분히 시간을 들여 내 마음에 맞는 음료를 주문할 수 있으니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런 식의 주문이 계속되면 어느새 나의 습관으로 자리잡는다. 더불어 내게 맞는 음료를 편리하게 제공해주는 스타벅스와의 관계는 한층 더 긴밀해진다.



# 빼고 더한 서비스


조금 더 살펴보자. 사이렌 오더로 무엇이 바뀌었을까?


(-) 빼기.

먼저 대면 스트레스. 그(녀)는 잘못이 없다. 그런데 사이렌 오더를 이용하고 나니 서버와 대면하는 것조차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란 걸 알았다. 단 1kcal라도 말이다. 사실 이건 우리 이용자들보단 서버들이 더 반기는 지점이다. 더군다나 스타벅스의 직원들은 유독 친절하기로 유명하다. 그 감정노동이란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사이렌 오더 주문자들에겐 그저 맛있게 음료를 만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오늘의 사이렌 오더. 면대면 주문이었다면 조금 민망할 뻔 했다.


둘, 주문의 번거로움. 줄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 요구사항을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 사람은 좀 민망하고 미안한데, 주문받는 사람도 긴장시키는 그런 주문 말이다. 아무리 복잡한 커스텀도 이제는 당당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더욱 맘 편히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 더하기.

주문의 재미. 아직 이걸 '재미'라고 부를 만 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기술을 빌리면서 주문 과정이 조금 더 게임 같아진 면은 있다('아이러브커피' 같은 게임을 이용했던 탓일까?). 버튼을 누르고 맛있어 보이는 음료를 눌러보고 영양정보도 요리조리 살펴보고 퍼스널 선택사항 앞에서 고민도 해본다. 주문을 마치면 커피가 제조되는 과정의 일러스트가 움직이며 제작 완료까지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뭘까, 정말 지금 내 커피를 만드는 묘사 같은 이 기분은?



하나 더, 스타벅스 앱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는 사이렌 오더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데, 음료를 주문해볼까 하고 앱에 들어갔다가 종종 생각보다 한참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메뉴도 잔뜩 게시되어 있고 영양정보도 확인할 수 있는 덕분이다. 선택의 가짓수는 왜 이리 많은지. 기업 입장에선 얼마나 좋을까. 자신들의 상품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관심을 던져보고 있다. 아니면 "아메리카노요." 이 한 마디로 가볍게 끝났을 주문이다.



# 나만의 스타벅스 스토리


스타벅스에서 나의 경험은 몇 년 전 일반적인 카페의 그것과 상당히 달라졌다. 수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내가 고른 음료에 시럽이 몇 번 들어가는지, 지방량은 얼마인지, 다른 맛의 휘핑크림은 뭐가 있는지 세심하게 고를 수 있게 됐다. 물론 항상 그 과정을 거치지는 않지만, 그런 권한이 고객에게 생겼으며 그 서비스를 누리는 방법도 쉬워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내가 마시는 것에 이전보다 관심을 두게 되고 이를 적극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환경이다. 개인의 맞춤 취향에 최적화한 서비스들이 대세인 가운데 프랜차이즈 카페라고 논외는 아닐 것이다. 상품을 더 쉽고 즐겁게 소비하고 싶은 마인드는 모든 소비자들에게 해당된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는 그 사소한 경험에 대해서도.



결국 상품이든 서비스든 만족도의 기준은 '나에게 더 가까이 오느냐'의 여부가 되고 있다. 카페가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음료 중에 내가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카페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내에서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음료를 정확하고 손쉽게 전달받는 것이다. 나는 카페를 찾은 수많은 손님 중 하나에서, 명확한 취향을 가지고 카페의 서비스를 누리는 단 하나의 손님이 된다. 관점의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개개인에게 와닿는 만족도는 다르다.


이를 통해 스타벅스와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카페 방문이 단편적인 경험에 그치지 않고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연속적인 무언가가 된다(물론 그 스토리는 나만 알고 나 혼자 만족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의 진짜 힘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저 주문 방식을 간소화한 게 아닌, 이용자들 스스로가 스타벅스와 저마다의 유대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는 흥미롭게도 기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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