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은 동네'를 '살고 싶은 동네'로 바꾸는 [쉐어어스]
*이 글은 스페이스클라우드에서 도시작가로 활동하면서 작성한 것입니다. '도시작가'는 작가들의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로, 도시 곳곳의 로컬 공간들을 발견하고 방문하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이번엔 어떤 멋진 공간을 찾아가 볼까"
스페이스클라우드에서 도시작가로 활동하면서 얻게 된 재미이다. 도시작가에게는 스페이스클라우드와 제휴 맺고 있는 '로컬 공간'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많고 많은 공간 중에서 내가 선택하는 기준은 몇 가지로 추려진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공간인지, 다른 공간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는지, 미학적인 공간인지 등이다. 이번엔 순전히 소개 문구 하나에 꽂혀 공간을 찾아갔다.
지역 청년들을 위한, 마을 커뮤니티 공간
지역 청년들을 위해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서울 신림동에 위치한 '서림길 라운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방문했던 공간 중 가장 탐나는 곳이었다.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하는 그런 욕심이 나는 곳.
'서림길 라운지'를 찾아서 버스를 타고 신림동에 도착했다. 개인적으로 신림동은 처음 와봤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단박에 이곳이 고시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작은 크기의 수많은 창문들이 나 있는 건물. '원룸', '고시원'이라 적혀있는 간판들. 운동복 복장으로 백팩을 메고 걸어 다니는 청년들. '스파르타 학습관', '공무원', '수험 상담' 등의 문구가 적혀있는 건물들. 정말이지 '고시촌'이라는 특색이 뚜렷한 동네였다.
주위를 둘러보며 언덕을 조금 오르니, '에벤에셀 고시원'이라 적혀있는 간판이 보였다. 서림길 라운지가 있는 건물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출입문 앞에 다가서니 뭔가 이상하다. 그제야 유리문에 붙어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출입문은 건물 뒤편에 있습니다.'
건물 앞, 뒤에 출입문이 2개 있는 건물이라니. 출입문부터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렇게 '진짜 출입문'을 찾아 건물 뒤편으로 갔다. 곧 빨간색 벽돌 건물이 보였다. 간판에는 'SHARE US'라고 적혀있다. '서림길 라운지' 간판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사실 서림길 라운지는 'SHARE US'(쉐어어스) 건물 1층에 위치한 커뮤니티 공간을 뜻한다. '쉐어어스'는 선랩에서 운영하는 '1인 청년 가구를 위한 생활형 공유주택'이다. 1층 라운지를 제외하면, 2층부터 4층까지는 청년들의 주거공간이다.
내가 찾은 곳이 1호점이고 신림동 곳곳에 2호점, 3호점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 4호점이 기본계획 중이다.
출입문 옆을 보니, 빨간 벽돌 위 포스터가 붙어있다. 쉐어어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캘리그래피, 가드닝, 팝아트, 목공예, 가죽공예 등 청년 1인 가구의 여가와 취미를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다. 이밖에 자세 교정, 건강 음료 만들기 등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클래스도 있다.
놀라운 건 참가비다. 3만~4만 원은 받아야 할 프로그램의 참가비가 단돈 5천원. 청년들에게 전혀 부담되지 않는 가격이다. 커피 한잔의 가격으로 이런 클래스에 참가할 수 있다니. 쉐어어스가 있는 신림동이 부러운 첫 번째 이유다.
주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다란 통로 너머 부엌과 하얀 커튼으로 구획된 공간이 보였다. 이 곳이 서림길 라운지이다.
서림길 라운지는 지난 6월, 리뉴얼을 통해 탄생했다. 마을의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전에도 1층은 커뮤니티 기능이 있는 라운지로 사용됐지만, 입주자 위주의 공간이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가능했지만,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입주자 외에도 다른 청년들이 자유롭게 찾을 수 있도록, 마을 커뮤니티 기능이 한층 강화된 '서림길 라운지'를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서림길 라운지로 리뉴얼하면서 다양한 공간들이 생겨났다. 기존에는 아래 사진처럼 커다란 ㅁ자 테이블이 있었지만 지금은 휴게실, 독서실, 모임실 3개로 나뉘어있다. 추가로 2층에는 작업실이, 3층에는 회의실이 있어서 청년들이 커뮤니티 활동의 목적에 맞게 다양한 공간을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서림길 휴게실'은 다른 공간과 달리 좌식이다. 바닥에는 잔디를 연상케 하는 초록색 카펫이 깔려 있다. 책장도 있다. 청년들이 읽으면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책들이 꽂혀있다. 위쪽으로는 박공(세모난) 지붕을 형상화 한 목구조가 있어, 마치 다락방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서림길 독서실'에는 넓은 책상과 의자 2개가 있고, 다른 공간에는 없는 탁상용 스탠드가 있다. 그래서인지 집중하기에 좋다. 쉐어어스 공간 디자이너분께서 독서실이 가장 인기 있다고 귀띔해줬다.
'서림길 모임실'은 3곳 중 가장 큰 공간이다. 다닥다닥 붙어 앉으면 7명까지도 수용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모임실의 매력 포인트는 신림동의 지도와 쉐어어스의 지점별 위치를 확일할 수 있다는 거다. 벽면에는 신림동 지도가, 창문 쪽에는 신림동 모형이 제작되어 있어서 3D로도 신림동과 쉐어어스의 위치를 볼 수 있다.
서림길 라운지의 가장 큰 매력은 '구획'이 아닐까 싶다. 독서실, 휴게실, 모임실은 이용자가 원할 시에 커튼을 쳐서 외부의 시선을 차단할 수 있다.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이용 가능하다. 나는 '서림길 독서실'을 이용했는데, 잠깐의 낮잠을 자기도 했다. 여기가 카페였다면 남들 눈치 보느라 대놓고 낮잠을 청하긴 힘들었을 거다.
그리고 각 공간 사이의 구획은 '문짝'이 담당한다. 마치 옛날 할머니 집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나무로 된 미닫이 문짝이 천장에 매달려 있어, 파티션 역할을 하고 있다. 양 옆에는 나무 문짝이, 뒤에는 벽이, 앞에는 하얀 커튼이 있어 4개의 면을 모두 막고 있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아늑하다. 바닥과 천장 쪽으로는 모두 뚫려 있고, 파티션과 커튼이 시선만 가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고, 앞쪽 키친에서 요리하는 소리도 들린다. 또한 파티션 역할을 하는 문짝은 이동이 가능하다. 모임과 클래스가 있으면, 문짝을 천장에서 떼어내 하나의 큰 공간으로 변형할 수 있다.
서림길 라운지의 또 다른 매력은 가격이다. 이용 가격이 굉장히 저렴하다. 시간당 1천원. 하루 종일은 5천원이다. 화이트보드가 있는 회의실은 2시간에 2천원, 개인 작업실은 하루에 1만원이다. 청년들이 부담 없이 이용 가능한 금액이다. 게다가 쉐어어스 입주자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
서림길 라운지에는 카페에는 없는 '서림길 키친'있다. 정수기, 전자레인지, 토스트기를 사용할 수 있다. 외부 음식을 이곳에서 데워먹을 수도 있고, 매니저와 상의 후 부엌에서 요리도 할 수 있다.
쉐어어스 곳곳에 벽과 기둥을 헌 흔적이 보인다. 라운지 곳곳에 시간의 때가 묻은 인테리어 자재들이 눈에 띄었다. 선랩 공간 디자이너분에게 있어 물어보니 이곳을 리모델링면서 나온 폐자재들을 업사이클링했다고 한다. 테이블에 쓰인 나무들, 파티션 역할을 하고 있는 나무 문짝, 천장에 있는 조명 장식물 등이 이렇게 새 쓰임새를 얻었다.
이곳은 원래 고시원이었다. 건물 주출입구 뒤편에 '에벤에셀 고시원' 간판이 붙어있는 이유다. 그런데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고시원의 공실률이 늘어났고, 선랩건축사사무소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네 명만 살았다고 한다. 방은 총 44개가 있었다. 방의 크기는 성인 남성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양 옆으로 팔을 다 뻗기도 힘들 정도로 작았다. 그런 방들이 빼곡하게 붙어있고, 공용공간 하나 없는 삭막한 고시원이었다. 청년들의 열악했던 생활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선랩은 고시원 거주층에 대한 주거복지의 필요성을 느끼고 고시원의 대안을 마련하고자, 에벤에셀 고시원을 '쉐어어스'로 만들었다. 새로운 주거모델이었다. 기존의 고시원에는 없었던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하고자 1층을 공용공간으로 제공했다. 44개의 방이 있었던 고시원은 19개의 방으로 '방의 개수'는 줄었지만 '소통 공간'은 늘어났다.
방의 크기도 다양해졌다. 개인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방의 구조와 크기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쉐어어스에는 4개의 각기 다른 '유닛'이 있다. '1+1 유닛'은 독립적인 방 2개가 욕실을 공유하는 구조다. 사생활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다. '2 유닛'은 방 2개가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방은 침실로, 다른 방은 서재, 옷방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2 유닛의 경우 생활패턴이 유사한 사람들이 일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3 유닛'은 세 명이 교류하며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인실 3개와 거실형 공유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핵가족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형태를 생각하면 된다. 6유닛은 3유닛의 확장이다. 6개의 개인실과 거실, 부엌, 발코니, 화장실 2개로 구성되어있다. 더 많은 사람과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 6유닛에는 별도의 부엌이 있어서 다른 유닛에 비해 커뮤니티가 더 활발하다고 한다.
그동안 고시촌인 신림동은 많은 청년들에게 '떠나고 싶은' 동네가 아니었을까.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때, 떠날 수 있는 그런 동네.
하지만, 신림동은 이제 '떠나고 싶은' 동네에서 '살고싶은' 동네로 변신 중이다. 쉐어어스가 있기 때문이다. 쉐어어스의 각 호점들은 청년들이 풍요롭고 다채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1호점에는 '서림길 라운지'가, 2호점 거성점에는 루프탑이 있어 관악산을 바라보며 바비큐 파티, 동아리 활동, 요가 수업 등을 할 수 있다. 3호점 청광점에는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지하 공방이 준비 중에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 공간은 입주자가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다. 과거 신림동이 고시공부를 위한 '공부-수면-식사'의 단조로운 루틴을 가진 동네였다면, 지금은 다양한 취미활동·모임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성이 생겼다.
auri에서 발간한 <BOOT UP, 건축도시 START UP>에서 선랩건축사사무소 현승현 소장은 신림동에 5호점까지 계획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공용공간·커뮤니티 공간이 신림동에 생길 예정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도시의 조건 중 하나가 '다양성'이니, 신림동은 더더욱 청년들이 살고싶은 동네로 거듭나지 않을까 기대한다.
주 소 서울 관악구 서림길 117 1층
운영시간 9:00 ~ 21:00 (일요일 휴무)
이용가격 시간당 1천원
공간예약 스페이스클라우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