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만족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소비자의 체험을 위한 공간 마케팅
한남동에 '맥심플랜트'가 개장했다 하여 다녀왔습니다. 우리에게 커피믹스로 익히 알려진 맥심이 만든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 아쉬웠습니다. 맥심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듯한데, 맥심플랜트가 지향하는 '도심 속 정원 숲 속 커피 공장'이나 '복합문화체험공간'이 되기에는 멀지 않나 조심스레 생각합니다. 트렌디한 공간을 만드려 했지만, 흉내를 내다 그친듯했습니다. 왜 그리 생각했는지 하나하나 이야기를 꺼내겠습니다.
우선, 맥심플랜트의 건물은 지하 4층~지상 3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하 3층은 사무실이고, 지하 4층은 주차장 및 건물 뒷길로 이어지는 곳이라 소비자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지하 2층~지상 3층입니다. 맥심플랜트에 가실 예정이면 3층부터 가실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1층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3층에 올라갔는데 후회했습니다. 3층에서 주문할 수 있는 커피 종류가 훨씬 많고, '공감각 커피'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맥심플랜트 입구를 열고 들어가면, 커피 판매대와 함께 시원한 창문과 식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금 둘러보니 곳곳에 초록 식물들이 놓여있더라고요.
'도심 속 정원 숲 속 커피 공장'
맥심플랜트 웹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입니다. 맥심플랜트의 컨셉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아셨겠지만, '플랜트=식물, 공장'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맥심플랜트 공간에 그대로 담았습니다. 푸르른 녹색의 식물들을 창가 앞, 계단, 벽면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정원'의 컨셉을 살렸고, 공장은 지하 2층에 있는 로스팅 기계와 Steel소재의 테이블, 의자, 매대, 벽면, 철망 커튼 등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공간을 모두 둘러봤지만 '도심 속 정원 숲 속 커피 공장' 문구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인테리어 소품으로 식물과 로스팅 기계를 활용했구나', '식물이 다른 카페에 비해 조금 많네' 정도의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한층 한층 공간을 둘러볼까요? 그전에 맥심플랜트의 주제를 알고 가야죠. 맥심플랜트는 3가지 주제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맥심이 선별한 원두를 체험하는 '커피 플랜트', 맥심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프로덕션 플랜트', 문화와 트렌드를 즐기는 '컬처 플랜트'입니다. 이 3가지 주제를 염두에 두시면서 공간을 둘러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3층 더 리저브 공간에서는 '공감각 커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공감각 커피? 저도 처음에 듣고 무슨 커피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주문한 커피와 함께 주는 종이카드(아래 사진)를 보고는 이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제가 선택한 커피에 어울리는 디자인, 음악, 시, 색을 함께 제안해줍니다.
3층에 가면 태블릿 PC가 놓여 있는 테이블이 있습니다. 맥심만의 로스팅 프로파일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이 태블릿은 저와 가장 어울리는, 가장 좋아할 만한 원두를 추천해줍니다. 어떻게요? 태블릿은 저에게 로스팅, 산미, 좋아하는 향을 선택하게 하고, 이에 따라 원두를 추천해줍니다. 추천받은 원두에 해당하는 카드를 들고, 옆에 있는 매대로 가서 주문을 합니다. 물론 이 원두는 맥심 플랜트 1층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공감각 커피' 시도는 굉장히 이색적이고 좋았습니다. 체험 마케팅이 인간의 오감을 다 활용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공감각 커피는 어떻게든 소비자의 눈, 코, 입, 귀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 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종이카드를 주는 것에 그쳐 아쉬웠습니다. 음악은 내가 검색해서 들어야 했고, 또 이어폰이 없었기에 옆 테이블에 매너 없이 스피커로 노래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시를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의 공간도 아니었고요. (제가 갔을 때는 상당히 시끄러웠습니다.ㅠ)
커피를 마시면서 노래를 오롯이 감상할 수 없다는 환경이 아쉬웠습니다. 순간 맥심플랜트 옆에 있는 현대카드의 바이닐&플라스틱 2층이 떠오르더군요. 2층에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현대카드가 추천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음악에 집중할 수 있지요. 맥심플랜트에도 이와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그러면서 커피도 마시고, 시도 읽어볼 수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지하 1층 라이브러리에는, 커피와 관련된 책이 놓여있는 책장과 테이블들이 있습니다. 반전은? 읽을만한 책이 없습니다. '라이브러리'라고 명시됐지만, 책이 별로 없었고(사진에 보이는 책장이 전부) 더군다나 모두 영어로 적힌 책이었습니다. 마치 이 책들이 '이건 읽는 용도가 아니라, 보는 용도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이마트 편의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벽면에 인테리어로 책 사진을 도배한 모습이요. 동시에 몇몇 카페도 떠오르더군요. 멀리서 봤을 때는 북카페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책은 죄다 사진이었던 경험 다들 있지 않으세요?
책장 사진으로 도배한 이마트 편의점과 몇몇 카페들. 이들과 맥심플랜트의 라이브러리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책을 인테리어 소품 정도로만 여기고, '라이브러리'라는 명칭을 붙인 게 아쉬웠습니다.
앞에서 맥심플랜트는 커피플랜트, 프로덕션 플랜트, 컬쳐 플랜트 이렇게 3가지 주제로 구성됐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커피 플랜트' 외에 나머지 주제를 공간에서 찾기 힘들었습니다. '커피 플랜트'는 3층 더 리저브가 충분히 그 주제를 살리고 있었으나, 나머지의 주제는 맛보기 공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프로덕션 플랜트의 경우, 지하 2층 커피랩에 있는 로스팅룸(사일로가 있는)이 콘텐츠가 약했습니다. 제가 갔을 때 로스팅 룸은 들어가서 직접 체험할 수 없었고, 그저 유리벽 너머로 존재하는 기계를 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작동하고 있지도 않았고요. 강릉에 있는 커피커퍼 박물관 1층에 위치한 카페가 생각났는데, 거기서는 커피를 마시며 옆에 직원이 기계로 로스팅하는걸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신선한 커피, 무언가 전문적인 커피를 마시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는데, 맥심플랜트 로스팅 룸에서는 그런 기분을 만끽할 요소가 부족했습니다.
컬처 플랜트도 책과 식물이 함께 있는 힙한 분위기의 카페를 연출하고 싶었겠지만, 그러기엔 식물과 책 모두 절대적인 양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츠타야 서점, 독립서점,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등의 인기와 함께 '책'만 있으면 트렌디한 문화 공간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요? 츠타야 서점, 책방 연희, 부쿠,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에 있는 책들은 사실 큐레이션이 잘 된 책들입니다. 브랜드가 또는 공간이 얘기해주고 싶은 부분이 책 목록에 잘 녹아나 있습니다. 그저 보기 좋기만 한 '종이책'이 아니지요. 그래서 라이브러리 공간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습니다.(제가 영알못이라 그럴 수도 있고요...)
어쨌든, '커피믹스'로만 알려졌던 맥심이 한남동에 맥심플랜트를 개장하며 "우리는 원두 회사라고!"를 외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맥심=커피믹스로만 생각했는데, 맥심플랜트를 다녀오니 맥심플랜트가 유통, 판매하는 원두에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이것만으로 보면 브랜드의 가치를 이전보다 높게 평가하니 성공적인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맥심플랜트가 '브랜드 체험관'보다는 '카페'에 더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맥심에서 맥심플랜트를 준비할 때, '카페'의 기능과 역할만을 생각한 건 아닐 겁니다. 맥심은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커피처럼 카페를 운영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맥심플랜트의 목적이 '카페'보다는 '브랜드 체험관'에 더 가까웠을 거라 짐작하지만, 각 층마다 마련된 공간에서 맥심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요소는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음번에 한남동에 지인과 함께 카페에 갈 일이 있다면, 맥심플랜트를 재방문할 겁니다.
'카페'로써는 만족한 공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