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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피디 Aug 16. 2024

점쟁이가 나보고 '왜 아직 여기 있냐'고 했다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

"다들 나처럼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낄까?"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생을 살고 가니까 다른 인생은 어느 정도의 재미와 기쁨, 생동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보단 즐겁게 살다 갈 거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삶이 너무 너절해서 이대로 살아가는 게 직무유기처럼 느껴지는 날들. 겨워.


특히나 나는 뉴욕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그중에서도 낙엽이 가득한 가을의 뉴욕 거리나 센트럴파크를 거니는 그곳에 속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질투가 나고 억울하다. 마치 내 삶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화가 나고 부러워 못 견디겠다. 왜 그렇게 절절하게 뉴욕을 원하는지, 저곳에서의 삶이 진짜 내 삶 것 같다고 느끼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뉴욕 최애 공간 - 브라이언트 파크

끊임없는 무기력의 반복, 아무리 긍정적이려 노력해 봐도 불만족스러운 삶이 너무 답답해서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간 적이 있다. 예약하고 6개월이나 기다려야 무당 앞에 앉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나에겐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신점이었고.


무당집에 대한 상상과는 다르게 이대 뒷골목에 있는 작은 가정집에 편안한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앉아있었다(한복 같은 거 입고 갓 쓰고 있을 줄 알았다).


"안녕하세요"

"생년월일"

"ㅇㅇ년 ㅇㅇ월 ㅇㅇ일이요"

"너는 왜 아직도 조선 땅에 있어?"

"네?"

"진작 여길 벗어났어야 되는 애가 왜 여기 있냐고."

".....(놀라서 암말 못함)"

"여긴 네 고향이 아니야. 대한민국이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기선 니가 받아야 할 인생의 운을 못 받고 살어. 외국으로 나가야  수 있어. 조상들이 보내려고 노력 많이 했는데 왜 아직도 여기 있어"

그랬다.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


내가 왜 그토록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낭여행가들의 책을 끼고 살았는지, 성인이 되자마자 역마살 가득하게 해외를 쏘다녔는지, 코로나로 한국에 묶였을 때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 내 전남친들이 왜.. 다.. 해외로 석박사를 가게 되었었는지..(친구들이 유학원이냐고 놀릴 정도로 나랑 사귀기만 하면 그 어렵다는 해외 석박사에 척척 붙고 유럽으로 미국으로 떠났더랬다. 현 남친도 나와 만나자마자 영국 석사에 붙었)


"그럼 저 외국 가서 뭐 해야 돼요? 저 영어도 잘 못하고 경력도 마케팅이라..(가서 할 게 없어요 라고 말하려고 했음)"

"넌 사무실에서 컴퓨터 두들길 팔자가 아니야"

"네?(2차 충격. 난 누구보다 훌륭한 회사원인데?)"

"너 전생에 서양의 남자 환쟁이였어.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다고. 외국 나가서 환쟁이 운을 받아야 돼. 그게 니 운명이야"

"저 그림 되게 못 그리는데요?"

"꼭 그림 그리라는 게 아니라!!!!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영상을 찍든 예술을 하라고. 환쟁이나 글쟁이나 비슷한 거야. 사무직 할 생각 하지 말고"

언제나 날 미치게 하는 빌딩숲 야경 - 밤의 브루클린 브릿지

무당 아저씨는 말했다. 한국에 묶이지 말고 어떻게든 외국 나갈 궁리를 하며 살라고. 3년 잡고 단도리하면 갈 수 있다고. 사실 나는 당장의 한국에서의 문제 -이직, 결혼 등-의 문제도 궁금해 말을 꺼냈지만 다 컷 당했다. 아니라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너한테 지금 이직 결혼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여. 넌 어차피 남자 사주라서 결혼 출산 그런 거 별로 안 중요한 팔자야. 외국 나가서 뭘 하고 할지 지금부터 치열하게 고민해. 지금 하는 일 상관없이 새롭게 준비해서라도 어떻게든 대한민국 땅에서 나가.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그려야 해."

인생을 새롭게 그려야 한다는 그 말이 머리를 띵하게 울렸다. 사실 눈물도 핑 돌았다. 내가 가슴 깊이 원했지만 애써 부정하고 있던 말이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족, 무기력, 우울감이 사실은 말해줬었다. 이건 내 삶이 아니야.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내가 이뤄온 모든 걸 포기하기가 아까워서,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이곳을 떠나기가 힘들어서,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으며 나 자신을 설득해 왔었던 거다. 문득 나 자신에게 굉장히 미안해졌다.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 점쟁이의 말을 듣고서야 수긍하다니- 고집 센 것 같으니라고!

여기서는 나도 러너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브루클린 브릿지

리고 소름 돋는 말 하나 더.


"지금 니 남친이랑 결혼 잘 풀리지?"

"와.. 네.."

"결혼이 버벅대는데 또 헤어지지는 않고 뭔가 찝찝한 그런 상태잖아"

"맞아요..."

"조상들이 니 남친에 X 쳐놨어. 별로 맘에 안들어해. 근데 헤어지게는 안 한다? 이유가 뭔지 알아? 걔가 너 외국 가게 해줄 인연이라 그래."


맞았다. 현 남친은 중학교를 외국에서 나왔고, 덕분에 영어를 잘해서 국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영국에서 석사도 마친, 그야말로 해외에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게 내가 이 사람과 인연을 이어가는 이유라고 했다.

 

모든 게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라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시원했다. 이 맛에 점을 보는구나. 


신점에 의지해 인생을 살 생각은 없지만, 정말이지 인생이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답답해 미치겠을 땐, 영험한 힘을 믿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경험이었다.


작년 9월 이 신점을 보고 딱 1년이 지났다. 덕분에 난 인생을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이직이나 현재의 커리어에 집착하지 않으며,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고 있고, 해외에 나가 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자격증 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회사 생활은 자주 현타가 오고 지긋지긋함을 떨칠 수 없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한 무언가를 할 때마다 설렌다. 언젠가 내 삶을 찾을 거라는 생각에.


결론은,

조상님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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