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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May 03. 2022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 실크로드 경계의 삶

보통 우리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물들은 대개 발굴이나 기증, 대여를 통해 들어온 물건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제국주의적 팽창을 했던 경험이 있는 국가의 박물관에 가보면 과거 조상들이 이역만리 타지에서 가져(훔쳐)온 '약탈 문화재'를 전시해놓은 경우를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다. 실제로 길지 않은 영국 교환학생 시절 가장 강렬했던 경험 중 하나가 대영박물관 관람이었지만 엄청난 유물을 보면서도 '근데 이게 왜 여기 있지?'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식민 지배를 겪으며 이런 약탈 문화재 문제에서 피해를 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일군의 유물이 있다. 바로 3층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에서 전시되고 있는 "오타니 컬렉션"이다.

오타니 컬렉션이란 일본인 승려 오타니 고즈이가 20세기 초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가져온 유물을 말한다. 당시에는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탐험'이나 '보물 찾기' 같은 느낌의 제국주의적 수탈 행위가 만연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오타니는 이 흐름 속에서 많은 중앙아시아 유물을 수집했지만,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서 이 유물 일부를 일본인 사업가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본인 사업가가 모종의 이유로 해당 유물을 조선 총독에게 갖다 줬고, 이것이 총독부 박물관의 소장품이 되면서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참 기구한 사연이다. 아무튼 이렇게 취득하게 된 오타니 컬렉션을 반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잔잔하게 나오고 있지만 사실 뭐 직접적으로 나쁜 짓 한 게 우리도 아니고... 여러 현실적인 문제와 지정학적인 문제 등등으로 인해 굳이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고 있진 않은 듯하다. 오타니 컬렉션의 형성과 국중박의 취득 과정에 대해서는 경향신문 이기환 기자님의 기사를 포스팅 하단에 첨부하니 참고 바란다.

일단 중앙아시아실에 들어가서 처음 보게 되는 작품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복원한 '아프라시아브 궁전벽화 모사도'로 오타니 컬렉션 소장품은 아니다. 


지난 1965년 우즈베키스탄에서 발견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엄청 많은 관심을 끌었던 그림인데, 그림 오른 편에 그려진 두 사람이 고대 한국인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머리에 쓴 조우관(새 깃털로 장식한 관모)과 차고 있는 환두대도 등이다.


상대적으로 낯선 중앙아시아 지역이지만 우리나라와도 나름 역사적인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전시품으로, 관람객들이 중앙아시아실을 돌아보야 할 일종의 명분을 제공해주는 역할이자 흥미를 돋울 소재로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엔 다 오타니 컬렉션이다. 초반부는 대부분 벽화로 채워져 있다. 실제 한국에 남은 오타니 컬렉션 360여건 1500여 점 중 상당수가 벽화인데, 오타니가 자신이 수집한 유물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 부피가 큰 벽화보다는 문서 등 옮기기 쉬운 것 위주로 가져갔기 때문 아니겠냐는 추측이 있다.

투루판 지역 최대 석굴사원인 베제클리크의 서원화(誓願畫)가 많다. 서원화란 불교 그림 테마의 하나로, 석가모니가 전생에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맹세하여 소원을 세움)을 하고 당시의 부처에 공양하는 내용이다.

그림마다의 구체적인 스토리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보기만 해도 색감이나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타니가 뜯어올 때 잘못 뜯어와서 그런지 아니면 무슨 다른 사정이 있어서인지 파손이 많이 되어서 원래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과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여기 올라오기 전에 2층 불교회화실을 들렀다 왔는데 지역도 시대도 양식도 다른 불교회화 작품들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었다.

다른 한편에는 종교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이국적이기도 하고 분명 눈길을 끄는 조각도 있었지만 아주 막 감동적이다 싶은 그런 건 없었다.

맨 왼쪽: 로프노르 수집품, 가운데: 로프노르 수집품 중 목조인면상, 맨 오른쪽: 누란 수집품

또 다른 유물로는 로프노르, 누란이라는 지역의 출토품이다. 로프노르 출토품은 기원전 17~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선사시대 물건들이라 뜬금없이 엄청 신기했다. 누란 출토품은 기원전 2세기~기원후 5세기 물건들.

가장 재밌게 본 유물은 목조인면상이었다. 가면 모양인데 실제 얼굴 크기는 아니고 에어팟프로 케이스 크기랑 비슷해 보였다. 유사한 형태의 유물이 샤오허 묘지라는 이 지역 청동기 시대 무덤에서 나왔다는 보고가 있어서 이것도 거기서 가져온 것으로 보고 있다.

샤오허 묘지에서 발굴된 목조인면상 중 하나의 경우 시신의 가슴 위에 놓여있었다고 하는데, 그 시절 그 지역 사람들이 뭔가 익살스러워 보이는 가면 모양의 장식품을 어떤 의미로 무덤에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죽은 이에 대한 추모의 의미로 그 사람과 닮은 모양의 가면을 만든 것일까?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적인 존재일까?

마지막은 올해 6월 14일까지 진행되는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실크로드 경계의 삶' 테마전이다.

동선상 처음 보게 되는 '아스타나 230호 무덤 출토 시신 깔개와 문서'는 연구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일단, 시신 깔개를 만들 때 두 종류의 당나라 때 공문서 일부를 재활용해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도 그렇지만, 더 재밌었던 건 해당 공문서의 나머지 부분을 중국과 일본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문서들을 모아서 연결하니 하나의 문서가 되었다는 이야기... 이걸 알아낸 연구진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후엔 잔잔하게 볼만한 유물들. 무덤 주인이 누군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묘전이 대여섯 점 있었다.

이건 비석 파편이다. 강거사라는 사람이 대장경을 조성한 업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당나라 측천무후가 반포한 문자가 새겨져 있어서 대략적인 시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나무가 귀해서 무덤에 넣는 부장품을 공문서 등 종이로 만들었다. 실제로 보면 인형 팔이나 신발을 종이로 만들어 놓았다.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기후 탓에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전시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으니 중앙아시아관을 돌아보는 김에 같이 본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확실히 낯설고 금방 와닿는 건 없지만 그만큼 이국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은 부분이라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재미를 얻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참고로 중앙아시아실 유물이나 오타니 컬렉션에 대해 아주아주 자세한 자료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좋다. 중박에서 지속적으로 일제시대 소장품에 대한 정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정말 놀랍게도 그 보고서 일부를 인터넷에 그대로 공개해놓았더라.

사실 중앙아시아실 전시 자체가 해당 보고서 작업의 순서와 내용에 맞춰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정말 아쉽게도 베제클리크 석굴의 종교 회화 자료는 공개를 안 하고 있다. 아마 볼륨이 워낙 커서 그대로 공개하기도 좀 그렇고 저작권 문제도 있고 그렇지 않을까 하는 추측... 아무튼 종교 조각, 로프노르/누란 출토품,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관련 보고서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링크는 아래에 첨부함. 

알면 알수록 더 재밌는 국중박... 더 많은 사람들이 중앙아시아실에서도 재미와 영감을 챙겨갈 수 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1. 국립중앙박물관이 오타니 백작의 '약탈품'을 소장하게 된 경위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 이기환 기자, 2019. 12. 31 (링크)

2. [역사품은 국보]우연히 우리 품에 온 서역문명의 보고, 매일경제, 배한철 기자, 2021. 02. 05 (링크)

3.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학술/출판 - 아시아학 - 연구 보고서 (링크)

4. 조선총독부박물관 초기 소장품의 형성과 성격, 오영찬, 202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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