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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May 23. 2022

다시 경주를 찾아야 할 이유

한성백제박물관 경주 쪽샘 고분 기획전

몇 년 전부터 '쪽샘'이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다. 물론 몇가지 재밌는 발굴 성과에 눈이 가곤 했으나 '쪽샘'이라는 이름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 뿐 그저 다양한 고고학 발굴지 중 하나겠거니 하고 넘기거나 황당한 해프닝의 현장 정도로 기억에 남을 뿐이었다.

그래도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경주 쪽샘 신라고분 출토 유물들의 전시가 이뤄진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좀 호기심이 생겼다. 황남대총, 천마총 같은 초대형 발굴이 이미 70년대에 진행된 경주에서 아직도 뭔가 나오긴 나오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4월 8일 시작된 전시는 6월 12일까지 진행된다. 관람료를 따로 받지 않는 무료 전시다.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경주 홍보 영상이 나온다. 대표 유적지들을 비춰주고 뭐... 특별한 건 없다.

쪽샘지구 위치를 처음으로 확인했는데 대릉원 바로 옆에 있어서 좀 놀랐다. 과거 한참 경주를 다닐 때 많이 오갔던 곳이기 때문이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쪽샘'이란 '쪽빛의 물색' 또는 '샘물을 뜨던 쪽박' 등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라 왕족과 귀족 등 최고 지배계층의 무덤이 확인된 것만 1000여 기 밀집된 지역인데, 일제강점기 시절 일부 발굴이 되긴 했으나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된 것은 2007년부터다.


위 오른쪽 사진에는 '전시 관련 주요 무덤'이 묘제(墓制), 그러니까 무덤 양식에 따라 다른 색깔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종류는 우리가 신라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돌무지덧널부터 나무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독무덤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신라 무덤 양식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것 또한 이 전시에 나온 유물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전시 흐름 자체가 무덤 양식으로 구분되고 있기 때문.

첫 번째 1부에서는 나무덧널무덤 관련 내용이 다뤄진다. 나무덧널무덤이란 무덤 안에 나무 상자 형태의 공간을 설치하고 거기다 부장품과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 형태다. 처음 볼 수 있는 것은 각종 토기들.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보다 눈길을 끄는 것이 나온다. 완전한 형태의 말 갑옷(마갑)이다.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나 토탈워 시리즈 같은 게임에서만 느끼던 '기병뽕'을 실제로 느끼는 것만 같은 기분인데 그것도 그거지만 이렇게 온전한 모양을 갖춰 출토되고 전시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고 아름다웠다.


다만, 발굴된 말 뼈 등을 토대로 분석한 고대 신라 말의 크기가 이 갑옷을 입히기에는 약간 작게 나와서 이 마갑이 실제 전쟁에서 사용된 형태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한편에 적혀 있어서 김이 좀 빠졌다.


전시실 한쪽 벽에서는 이 마갑 발굴 및 보존 과정을 담은 영상도 나오고 있다. 재밌으니 눈여겨 보기 바람.

출토된 마갑 맞은편에는 복원품이 전시되어 있다. 복원된 모습도 멋있다.


사실 이번에 좀 더 알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마갑이 발굴된 경우가 몇 가지 더 있었나 보더라. 쪽샘지구 말고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함안 아라가야 고분인 '마갑총'에서 나온 것이 있다. 그리고 같은 지역의 도항리 8호 분에서도 마갑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은 현재 보존처리와 복원이 진행 중이다.


마침 이 도항리 8호 분 출토 마갑과 관련해 재밌는 기사가 국립문화재연구원 소식지 문화재窓 2022년 봄호에 실렸다.(링크) 마갑을 복원하는 연구원분들의 활동이 담긴 인스타 계정에 대한 기사다. 귀여운 캐릭터도 만들고 조각난 마갑을 이어붙이며 환호하는 모습도 공유가 되는데 관심 있는 사람은 팔로우 해두면 심심할 때마다 보기 좋으니 한 번 들러보길 바란다.(링크)


이제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넘어간다. 돌무지덧널무덤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도 볼 수 있다. 멍 때리면서 보기 괜찮았다.

이것도 진짜 재밌는 유물이다. 


행렬도, 그러니까 왕이나 귀족이 어디 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새겨진 토기다. 아쉽게도 부서진 채로 발굴된 까닭에 부분부분 남아있지만 남은 부분을 토대로 추정해 복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활 쏘는 사람도 있고 말 탄 사람도 있고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뭔가 어수룩한 그림의 모습에 정이 가는 토기였다.

고분하면 빠질 수 없는 무기류. 전시해놓은 모습이 재밌어서 찍었다.

복도 한가운데에는 토우(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로 장식된 그릇 뚜껑이 전시되어 있다. 사람도 있고 동물도 있는데 앙증맞고 귀엽다.

호림박물관이 생각나는 모습. 사실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이 전시를 보는 내내 호림박물관 [기억] 전시가 떠올랐다.

돌무지덧널무덤 출토품으로는 귀걸이 같은 금 공예품도 꽤 된다. 크진 않아도 신라가 '황금의 나라'라고 불리는 만큼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동선이 약-간- 애매하긴 한데 어쨌든 여기부터는 3부 돌덧널무덤과 독무덤 파트다.


벽 한 면 가득 재생되고 있는 오묘한 영상은 돌덧널무덤에서 발굴된 "동물무늬 굽다리 긴 목 항아리"에 새겨진 동물 그림들이다. 앞에 봤던 전시품들과 비슷한 느낌.


이 이후에 다양한 토기가 몇 개인가 나오고 전시가 끝난다.

전시 구성 자체는 '이런 게 있습니다~'하는 식으로 다소 밋밋한 느낌이 없잖았으나 마갑이나 그림이 그려진 토기 등 주요 유물들이 재밌는 게 많아서 그대로 좋았다. 왕릉급 고분에서 보던 아주 화려하고 번쩍번쩍한 금 공예품은 아니라도 소박하고 좀 어설프지만 나름의 스토리가 있는 유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주를 들러 엄청난 유물을 본 기억이 있을 텐데, 그런 경주 한가운데에서 지금도 이렇게 중요한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경주는 땅만 파면 발굴 현장이 된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경주가 보내는 초대장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닌 게 아니라 한때 나 역시 경주를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를 만큼 좋아했었다. 고향이 부산이다 보니 간단하게 다녀오기도 좋았고 볼 것도 많았고 대학교 때는 시간까지 많았으니 방학마다 당일치기로 들러 스탬프 투어도 다 찍었을 정도다.


그만큼 '경주에서 볼 건 이미 다 봤다'고 생각하고 좀처럼 경주를 다시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발굴과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모습을 확인하니 잊고 있었던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고 그 현장을 꼭 한 번 보고 싶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억 속에 과거로만 머무는 경주의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와 소통하고 변화해가는 경주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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