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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Jun 13. 2022

당연하게만 받아들였던 채색화의 매력

한국 채색화의 흐름_국립진주박물관

지방선거일이었던 6월 1일부터 5일까지, 휴가를 쓰고 4박 5일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부산에서 시작해 진주, 순천, 나주를 거치는 일정으로 내가 혼자 계획하고 실행한 단일 여행으로는 가장 길고 많은 도시를 거치는, 초여름 휴가였다.


목적...이라고 하기까진 좀 그렇고, 콘셉트가 있다면 요즘 내 최대 관심사이자 취미인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서 작성한 "6월 전시" 포스팅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순서로 포스팅을 작성하자면 여행의 시작점이자 [치유의 시간, 부처를 만나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부산 이야기부터 해야겠으나, 진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채색화의 흐름] 전시 종료가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아 부득이하게 진주 이야기부터 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 포스팅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뭐 내 글 하나하나를 기다렸다가 보진 않을테니...ㅎㅎ

여행 첫날, 부산박물관을 돌아본 뒤 오후 3시쯤 진주로 출발했다. 부산역에서 출발해 밀양역을 들렀다가 진주행 KTX로 갈아타는 일정이었다. 고향이 부산이라 KTX는 지겹도록 타 보았지만 환승해 보긴 또 처음이었다.


숙소는 에어비엔비를 통해 진주성 바로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잡았다. 깔끔하기는 했지만 뭐 썩 마음에 들거나 하는 곳은 아니었다. 피곤하기도 했고 어차피 숙소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 잠에 들었고, 박물관 개장시간인 9시에 맞춰 나갈 수 있도록 일어나 준비를 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현재 진주성 안에 있으나 2026년에는 옛 진주역 부지로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접근성이 좋지 않고 확장이 어렵기 때문인데, 나도 이번에 가보니까 뭔가 꽁꽁 숨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차로 들어가기 힘들어 보이는 데다 나처럼 도보로 이동하는 방문객들의 경우는 굳이 굳이 공원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좀 불편하긴 하더라.

다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유명한 건축가인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것이기도 하고 국립민속박물관처럼 특별히 좋니 나쁘니 논란도 없어서인지, 박물관이 이전한 뒤에도 활용할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진주시가 밝혔다.


개장 시간인 9시에 맞춰 들어가려고 하는데 입구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내가 다가가니 얼른 도망가던데 국립박물관 출입구에 앉은 고양이를 보니 괜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진주 방문의 이유. [한국 채색화의 흐름] 전시다. 지난 3월 22일 개막해서 6월 19일까지 진행되고 입장료는 무료다.


전시 제목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그려진 채색화의 주요 테마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는 전시다. 전시 흐름은 기본적으로 시대 순서로 이뤄지는데, 이에 따라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작품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작품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전시한다.


원래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도 들르려고 했지만 갑자기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너무 피곤한 바람에 근현대 쪽은 포기했다 ^^ 조금 아쉽긴 하지만 생각보다 날도 덥고 그래가지고...

입구 쪽 복도를 지나면 오프닝 영상이 나온다. 영상 속 작품은 팜플렛과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풍림정거도"다. 서정적이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모습이 채색화라는 테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시대 순서상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고구려 시대의 "강서대묘 청룡 모사도"지만 아무래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려 시대 작품이었다.


고려 공민왕의 "천산대렵도"가 가장 처음 보였다. 나도 학생 시절에 얼핏 이름만 들어본 기억이 나는 작품이다. 보존 상태가 좋진 않아서 뭐가 잘 보이진 않지만 오랜 세월과 공민왕이라는 이름에 왠지 더 멋있어 보였다.


다만 아쉬웠던 게 있다면 시선 높이랑 맞질 않아서 안 그래도 흐릿한 그림을 자세히 보려면 꽤 애를 써야 했다. 그래서인지 진열장 유리에 "머리 조심하세요"라는 주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고려 불화 두 점. "묘법연화경 권6 변상도"(왼쪽)와 "기룡보살도"다. 뭔가 처음엔 '금니도 채색화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금색도 색이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 머쓱해졌다. 불교 미술 전시를 자주 보다 보니 이런 종류의 변상도도 종종 마주치게 되지만 경전 내용을 몰라서 다 그게 그거처럼 보인다. 조만간 관련해서 공부를 좀 해야겠다.


"기룡보살도"의 경우 처음 보는 도상이라 신기했다. 뭔가 귀여운 느낌의 그림. 용 크기가 너무 작지 않나...? ㅎ 고려불화라고 하면 내가 보통 알고 있었던 게 수월관음도에 기껏해야 지장보살도 정도였으니 정말 세상은 넓고 보고 배울 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로 넘어간다. 초반 전시품 네 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조선시대 작품이다. 앞쪽에서 나는 김홍도가 그린 "평안감사향연도"를 감상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몇 년 전 국중박에서 열린 [세한 평안] 전시에 나왔던 작품 중 하나인가 보더라. 그때 못 봤는데 잘 됐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상당히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놀랐다. 하나하나 뜯어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맞은편에 있는 "경기감영도"도 자세히 들여다보기 좋은 작품이었지만 뭔가 "평안감사향연도"가 만화처럼 귀여운 맛이 있어서 좀 더 정이 갔다.

책가도 두 점. 나는 책가도라는 테마를 진짜 얼마 전에 알았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테마는 아닌데 회화사적으로도 유의미하고 좋아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았다.

조세걸의 신선도. 개구리랑 춤추는 신선이 너무 귀여웠다.

왼쪽 그림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일월오봉도"다. 왕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왕이 가는 자리에 놓인다.


오른쪽 그림은 "일월부상도"라고 해서 일월오봉도를 민화적으로 변용시킨 작품이라고 한다. 정형화된 일월오봉도와는 달리 등장하는 요소와 표현이 자유롭다고 한다.

십장생도와 호렵도는 요즘 자주 보던 테마라 반가웠다.

앞서 이야기한 "풍림정거도". 되게 고풍스러워 보였는데 20세기 작품이었다.


'수레를 멈추고 앉아 저녁 햇빛에 비친 단풍 숲을 감상하니, 서리 맞은 단풍잎이 2월의 꽃보다 더 붉다'는 구절을 묘사한 그림이다. 감성적인 시구에 색감도 이쁘고, 화면 하단에 있는 등장인물들이 위아래로 긴 그림 속에서 위쪽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영화 같은 생동감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왼쪽 첫번째, 두번째=신윤복 여속도첩 / 왼쪽 세번째=팔도미인도

전시 마지막 파트에는 신윤복의 "여속도첩"이 나온다. 이 파트의 다른 작품들이 주로 20세기 작품들인 것에 비해 시대적으로 좀 앞서지만 아마 맞은편에 전시된 팔도미인도와 비교해서 보라고 둔 것 같다.

나오는 길에 재밌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스티커를 붙여서 병풍을 만들어보자. 나는 십장생도를 만들었다.


재밌는 전시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전시 규모도 크고 볼거리가 많았다. "채색화"라는 큰 주제 안에서 이전에 몰랐던 작품 형태라든지 표현도 살펴볼 수 있었고 그야말로 우리나라 채색화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럼에도 '왜 채색화를 다루는지'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전시 서문에서"한국의 옛 그림을 대표하는 것은 먹의 농담을 이용해 그린 수묵화지만,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은 채색화입니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히고는 있지만, 사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고 인지도가 높은 풍속화나 불화는 대개 채색화라는 점에서 전시 서문의 서술은 약간 새삼스러운 느낌이 든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채색화에 대해 돌아본다는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이야 물자가 풍족하고 기술이 발달해서 채색화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옛날에는 색을 내는 안료를 구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묵화와 비교해서 채색화라는 양식에 자체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좀 더 해주든지 미술사조 측면에서 시대적으로 좀 더 설명이나 구분을 딱딱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소주제 구성에서도 기법 측면과 내용 측면이 혼재되어 있어서 받아들이기에 약간 어색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아무튼 그래도 눈은 즐거웠던 시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걸 보는 일은 늘 즐겁다.


특별 전시를 본 뒤 상설전시를 돌아보고 순천으로 이동했다. 자세한 일정은 국립진주박물관 상설전시 포스팅이나 이후 일정을 다루는 포스팅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이번 여행 포스팅 순서는 좀 뒤죽박죽일 것 같지만 최대한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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