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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Jun 20. 2022

치유의 시간: 부처를 만나다

부산박물관 특별전

여행 첫 번째 일정이었던 내 고향 부산. 부산 박물관에서 열리는 [치유의 시간: 부처를 만나다] 전시를 보기 위한 방문이었을 뿐 딱히 오래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해서 최대한 짧게 머물다 가는 계획을 세웠다.

6.1 지방선거일 아침이었다. 조금 일정을 앞당겨 선거 유세 기간에 여행을 떠났다면 뭔가 동네마다 유세하는 것도 구경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에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부산박물관을 온 적은 별로 없다. 제대로 기억이 나는 건 2000년대 초 대영박물관 특별전. 중학생 때인가 그랬는데 학원 빠지고 부모님이랑 갔었던 게 얼마나 좋던지. 지금도 종종 얘기하지만 내가 전시 보는 일에 흥미를 느낀 계기를 찾자면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때 교육이 이렇게 중요하다.

전시실 입구. 이번 전시 주요 전시품 관련된 내용이 영상으로 나오는 가운데 입구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에 연꽃이 살짝 삐져나오도록 붙여져 있는 모습이 괜히 마음에 들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모습을 보게 되어 놀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의 승려장인] 전시(이하 "승장전")에서도 오프닝을 장식했었던 장 줄리앙 푸스의 "손으로부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부산박물관 전시는 약간 승장전의 스핀오프 같은 느낌도 있다.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의식이나 컨셉은 다르지만 전시품 구성이라든지 흐름은 큰 맥락에서 비슷한 편. 승장전을 워낙 재밌게 봤기 때문에 이번 전시도 더 반갑고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미디어아트를 지나치면 불상 몇 점이 등장한다. 가장 왼쪽 사진은 통일신라 시대 "금동보살상"(국보)이다. 전체적으로 풍만한 느낌으로 여유롭고 넉넉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관이나 손에 들고 있었을 기물(정병으로 추정)이 사라져서 좀 아쉽다.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지 정말 궁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지금 남은 모습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오른쪽 사진은 부산대학교 박물관 소장 "열한 개 얼굴의 관음보살상"(금동십일면관음보살좌상)이다. '머리에 얼굴 혈 한 개를 조각'했다고 했는데 멀리서는 얼굴이 잘 보이질 않았다.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형태의 불상이고 온화한 표정도 마음에 들어 인상적이었던 전시품.

이번 전시 대표 유물 중 하나인 "희랑대사 초상 조각"(건칠희랑대사좌상)이다. 워낙 존재감이 상당한 작품이라 그런지 별도의 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합천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는 작품인데 나는 지난 2018년 [대고려전]에서 직접 한 번 본 적이 있다. 다시 만나 매우 반가웠다. 전시 보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어 이거 전에 본 건데'하는 경우가 생기면 괜히 우쭐하다. 무슨 경력 쌓는 것마냥...ㅎㅎ

보면 볼수록 특이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우리 문화유산 중에 불상을 제외하면 이렇게 인물을 조각한 경우가 별로 없지 않나? 승려의 경우도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 진영은 많이 봤는데 이런 조각은 지금껏 잘 못 본 것 같다. 조각의 수준도 상당하다. 너무 사실적이다.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좀 무서워지기도 한다. 이게 '불쾌한 골짜기'라는 건지... 저 온화한 표정을 보고 그런 말 하기 쉽진 않긴 한데...

이후 나오는 공간에서는 또다시 승장전 느낌이 물씬 난다. 다양한 조선시대 불상들이 높이가 다른 단에 배치되어 있는 모습. 승장전 막바지 설치미술가 '빠키'(VAKKI) 작가의 "새로운 길을 걷다"가 떠올랐다.  물론 분위기는 엄청나게 다르지만 ㅎㅎ... 

확실히 불상 하나하나 면면을 살펴보기에는 설치미술 작품이 없는 쪽이 더 나았다. 승장전이 한창 열릴 당시에도 그게 좋냐 싫냐로 관람객들의 의견이 많이들 갈렸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문화유산에 대한 재해석이나 전시 구성 과정에서의 새로운 시도도 상당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둘 다 좋은 걸로 결론을 내린다.

오른쪽 사진은 "서울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다. 내 생애 두 번째 보는 목각탱. 현전하는 조선 후기 목각탱이 8점이라고 하니(6점이라는 말도 있고... 확실친 않다) 그중에 두 점을 본 나는 나름 행운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승장전에서 예천 용문사 목각탱을 처음 봤을 때는 세상에 뭐 이런 게 있나 싶을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 나온 목각탱 역시 예천 용문사 목각탱 조성을 주도한 조각승 단응이 조성을 주도했다.

근데 확실히 목각탱만 보니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앞에 놓여 있을 삼존불도 함께 모셨어야... 언젠가 내가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 전국에 있는 목각탱을 하나씩 다 찾아가면서 보리라 다짐했다.

목각탱을 마지막으로 불교 조각 파트가 끝나고 다음에는 복장물을 자세히 다룬다. 고려부터 조선까지의 불복장 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으나... 내가 아직 불교문화에 더 깊이 빠져들지 못해서 그런지 솔직히 말해서 재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편안한 마음으로 '음 그렇구나~ 끄덕끄덕'하며 넘어갔다.

다음 파트는 불화. 승장전 "화승의 스튜디오"에 나왔던 "불화가 완성되기까지" 영상이 나온다. 재밌는 건 이 영상이 [한국 채색화의 흐름] 전시에서도 나왔다는 것. 볼 때마다 반갑더라.

첫 번째 나오는 불화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다. 고려불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도상. 온화한 표정과 은은한 색감이 좋았다. 이래저래 얘기를 많이 들은 작품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수월관음도가 이거 포함해서 6점 정도라고 하니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기회인 셈. 목각탱도 그렇고 진짜 귀한 문화유산을 잘 모아놓은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수월관음도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던 고려불화가 바로 옆에 있는 나한도였다. 특히 왼쪽 사진에 있는 "석가모니 제자 '원상주' 존자" 그림이 되게 멋있었다. 시쳇말로 '포스 있는' 모습. 표정과 자세에서 생동감이 넘친다.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오른쪽 사진은 석가모니 제자 '가리가' 존자의 그림. 

두 그림 모두 대몽항쟁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어려운 시기를 대하는 두 나한의 상반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동아대 석당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영산회상도. 1565년 작품이다. 붉은 색 바탕에다가 따로 채색을 하지 않는 선묘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붉은색이 강렬하기도 하고 이런 식의 불화는 처음 보는 것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건 지나가다가 찍은 것. 불화 쪽에서 불교조각 쪽을 볼 수 있길래 찍어봤다. 나름 감성샷.

감로왕도(감로도) 두 점. 감로왕도는 49재 등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인 천도의식에 사용된 그림이다. 크기도 큼지막하고 복잡하지만 조화로운 화면 구성에 세부 묘사도 볼거리가 많아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전시실 나가는 길에는 마지막으로 부산 지역 근대 불교미술의 마지막 승려 장인인 완호의 작품이 몇 점 전시되어 있다. 불화도 그리시고 불상도 만드셨나 보더라. 부산에서 진행되는 전시인 만큼 이렇게 지역에서 특별히 조명할 만한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는 모습도 좋아 보였다.

마지막 한 작품이 남았다. 남해 용문사 괘불이다. 전시실에서 나와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볼 수 있다. 다만 원래 괘불 전시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감상하기에 그렇게 썩 좋은 모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자꾸만 승장전이랑 비교하게 돼서 좀 그렇긴 한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면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번 [치유의 시간] 전시도 귀한 문화유산을 알차게 꾸린 전시라는 생각이 든다. 좀처럼 보기 힘든 문화유산을 어렵게 모아 놓았기 때문에 시간을 넉넉히 잡고 감상할만했다.

다만 이게 '치유의 시간'이라는 제목이 딱 어울리는 전시인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불상이나 불화를 보며 소위 '힐링'하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재밌고 공부하는 느낌이 강해서... 그리고 개인적인 느낌을 떠나 치유를 받을 만한 스토리텔링도 딱히 없었다.

전시 설명문도 대부분 작품의 양식과 내용, 특징에 대해 무미건조하게 설명하는 정도로 그치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치유를 얻어 가길 바랐다면 좀 더 그에 어울리는 가이드라인을 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는 사실 세상이 엄청 더 팍팍해져서 '힐링', '위로' 이런 키워드를 피상적으로 제시하는 것만으론 잘 안 먹히거든...

그래도 이만한 불교문화유산을 한자리에서 다시 볼 날이 언제 또 올지 모르기 때문에 부산에 살고 있거나 전시 기간 내에 부산 방문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서 보길 권한다.

전시는 무료이며 7월 10일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본 포스팅 업로드일 기준으로 3주 정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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