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부엉씨 Jun 23. 2022

국립나주박물관 [두 전사의 만남]

2022년 6월 전시

나주를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의 광주 바로 옆이나 마찬가지여서 광주를 잠시 들렀다 가게 되었는데, 덕분에 광주도 처음 가보게 됐다. 그 유명한 나주 곰탕을 꼭 먹어보고 싶었으나 4박 5일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보니 더 움직이기도 귀찮고 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아마 가을쯤 한 번 더 올 것 같으니 그때 먹으면 되지 뭐...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목적지인 국립나주박물관이 나주 도심에서 너무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아마 신촌리, 반남 등 마한 토착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들 근처에 짓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중요한 고고학 발굴지 근처에 바로 박물관이 들어서는 일 자체는 의미가 있어 보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 입장에서는 다소 야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요일이라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택시를 타기로 한다. 나주역에서 박물관까지는 15,000원~20,000원 정도 보면 될 것 같다.

국립나주박물관은 야트막하고 곡면이 있는 흙색 건물이었다. 갑자기 비가 오기도 했고 뭐가 그리 급한지 건물을 제대로 돌아볼 생각도 못 하고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려서 유심히 보진 못했지만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도록 잘 만든 건물이라고 한다. 옥상에 정원도 있다고... 자세한 감상은 다음 기회에.

나주박물관 방문의 주 목적인 [두 전사의 만남] 전시로 먼저 들어갔다. [두 전사의 만남] 전시는 전남 지역 두 삼국시대 고분의 발굴 성과, 특히 해당 고분에서 출토된 갑주에 대한 연구 및 복원 성과를 전시하는 전시하는 자리다.


올해 7월 3일까지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 투구는 옆으로 마주 보게 하고 갑옷 편은 세로로 배열해서 '두 전사의 만남'을 표현한 흑백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다. 멋있게 잘 만든 것 같다.

두 고분 모두 해안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인지 전시실 입구에 파도가 친다.

이 전시의 메인 소재인 갑주가 발견된 "신안 배널리 고분"과 "고흥 야막 고분"이다.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서 발견된 비슷한 시대의 고분인데다 갑주가 발견되었다는 공통점까지 있으니 이를 엮어서 전시하는 것. 두 고분 중 신안 배널리 고분은 국립나주박물관이, 고흥 야막 고분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각각 발굴 및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이에 전시는 두 기관이 공동 개최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먼저 신안 배널리 고분. 특이하게 '안좌도'라는 섬에 만들어진 고분이다. 무덤이 모두 세 개 있는데 이 중 가장 외곽에 있고 크기가 작은 3호분에서 갑주가 출토되었다.


이곳이 삼국시대 연안항로에서 주요 거점으로 추정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 항로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이유로 이곳에 묻히게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섬에 묻힌 것도 그렇지만 거기까지 가서 발굴을 한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부장품 출토 당시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묘사해뒀다. 칼 여러 점과 창, 도끼, 화살촉 등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처음 무덤을 열었을 때의 모습을 바탕으로 매장 당시의 모습도 추정하고 그런 연구가 진행되는 듯한데  이런 거 볼 때마다 무령왕릉 생각이 난다 ㅎㅎ


출토된 갑주는 옆에 따로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갑주라는 말이 갑(갑옷)+주(투구)라고 하더라고? 이래서 한자를 배워야... 아무튼 출토된 갑주의 제작 방식과 특징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다. 그러나 비전문가 입장에서 머릿속에 팍팍 꽂히는 느낌은 아니었다. 출토된 상태도 나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오 옛날 갑옷~ 멋있다~'는 느낌으로 감상하면 충분할 듯.

다음은 고흥 야막 고분. 고흥군 풍양면 야막리에 있는 무덤이며, 무덤 조성 당시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높아서 무덤이 좀 더 바닷가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안 배널리 고분과는 달리 무덤이 한 기다.

고흥 야막 고분에서 출토된 부장품들. 갑옷이 삼각형 모양 등 여러 도형 모양으로 조각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조각들을 가죽끈으로 연결해서 하나의 갑옷으로 만들었다. 이를 혁철기법이라고 한다.


두 무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출토품을 그대로 제시하는 여기까지가 1부다. 2부로 넘어가는 길에 꽤 잘 만든 영상이 하나 나온다.

과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두 전사가 우연이 거듭된 끝에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낭만 있는 이야기를 잘 그려낸 것 같다.

이후엔 연구자, 보존과학자의 연구 과정 및 성과를 소개한다. 스케치를 비롯한 조사 자료를 직접 볼 수 있다. 이런 자료들을 볼 때마다 참 경외감이 든다. 학자든 큐레이터든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이렇게 노력과 열정을 다 하는 모습을 보면 배울 점도 많아 보이고 반성도 많이 되고. 저는 당신들을 추앙합니다...

두 갑주를 복원하는 모습이 여러개의 영상으로 전해진다. 처음에 갑옷 조각을 본떠 만들고 거기 구멍을 뚫어 가죽끈으로 연결한 뒤 옻칠을 하는 과정까지 모두 나오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재밌다.


한 쪽 편에는 갑옷 조각을 연결할 때 쓰인 가죽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마지막 부분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갑주 복원품. 왼쪽이 신안 배널리, 오른쪽이 고흥 야막 갑주다. 앞에서 살펴본 과정을 거쳐 전문적인 손길로 복원된 물건이니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논란이 되곤 하는 소위 '고증'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다.


전시만 놓고 보면 앞에서 '두 전사' 가지고 나름 스토리를 빌드업한 것이 있으니 나름 감동도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갑주 복원품을 마지막으로 길지 않은 전시가 끝난다. 나가는 길에는 귀여운 기념품을 가져갈 수 있다.


사실 이 전시의 규모가 크거나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걸 보겠다는 목적으로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오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다. 따라서 어지간한 각오가 없는 사람에게 막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나 개인적으로는 마침 남부지방을 여행 중이었다는 점, 그리고 원래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점 등이 이 전시를 찾게 만들었다.


전시 자체는 재밌었다. 두 전사를 둘러싼 이야기는 그 실체가 막 풍부하거나 하진 않지만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고 지금도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이렇게 유의미한 고고학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더 뭘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궁금증이 커졌다.


생애 처음으로 나주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는 것도 뜻깊었다. 위에서 무슨 공수표 남발하듯이 '다음에 또 온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다음에 진짜 올 일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그 '일'은 바로...

아직 시일이 많이 남긴 했지만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박물관 속 기타] 행사다. 모브닝의 공연이 10월 나주에서 열린다 . 모브닝은 옛날에 "그날의 우리는 오늘과 같을 수 있을까"를 시작으로 쭉 좋아해왔던 그룹인 만큼 꼭 보러 오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때 와서도 택시를 탈 것 같은 불행한 예감이 들지만 그런데 쓸려고 돈 버는 거니 어쩔 수 없다 ^_ㅠ...


나주 외에도 청주(6월 18일, 에이프릴세컨드), 춘천(7월 30일, 김사월), 부여(8월 27일, 안녕하신가영), 경주(9월 24일, 너드커넥션) 등등 국립중앙박물관 지방 분원에서 행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인스타그램(@nmf_kora)을 확인하기 바람.


아무튼 짧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두 전사의 만남] 보고 상설전시도 돌아봤는데 잘 해놨더라고, 그건 또 나중에 포스팅 쓰는 걸로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유의 시간: 부처를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