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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Aug 16. 2022

국립중앙박물관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아스테카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아즈텍'(또는 아스테카)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것은 어렸을 때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라는 게임의 확장팩인 '컨쿼러'(Conquerors, 정복자)를 접하면서였다. 당시 플레이가 가능한 문명으로 아즈텍이 추가되면서 싱글 캠페인에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즈텍 침략 과정을 다룬 '몬테수마' 캠페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캠페인 자체야 난이도를 가장 쉽게 설정하거나 치트키(...)를 써서 깨나갔기 때문에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정체 모를 침략자들에 당황하면서 점점 나라가 기울어가는 불안한 분위기가 그때도 상당히 묘하게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히스토리 채널 등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관련 내용을 종종 접했으나 솔직히 말해 아즈텍이 내 관심사 리스트의 상단에 올랐던 적은 없다.

그래도 이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전시가 시작한 이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고, 단순히 이국적인 경험을 넘어 여러 생각할 점도 많이 얻을 수 있을 듯했다. 마침 전시 기간도 8월 말까지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천천히 보고 왔다.

박물관 정문 쪽에서는 이번 전시와 연계하여 현대미술품이 전시되고 있다. 멕시코 예술가 하비에르 마린의 "귀중한 돌, 찰치우이테스"라는 작품이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멕시코 역사에서 보이는 정복과 피정복, 가해자와 희생자 사이의 갈등과 평화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는 읽어보면 되는 것 같고, 일단 두 개의 큼지막한 도넛 모양이 박물관을 배경으로 놓인 모습 자체가 꽤 볼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전시를 보고 난 뒤 나가는 길에 감상해 보는 것을 추천.

상설전시실 내의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입구로 들어가면 전시 서문, 그리고 전근대시기까지 중남미에 존재했던 주요 문명 및 국가를 간단히 설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아스테카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는 서문의 메시지가 꽤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지금까지 아즈텍 문명과 관련해서 대중적으로 이야기되는 내용은 대부분 인신공양이나 멸망 과정에 치우쳐있다. 이런 단면을 넘어 그들의 문화와 세계관에 대해 보다 종합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 중 하나인 듯하다.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되면서 처음 만나는 전시품은 "태양의 돌"이라는 물건이다. 아스테카 사람들의 신화와 세계관이 새겨져 있는 무려 25톤의 석판이다. 이번 전시에 나와 있는 것은 3D 프린터로 만든 재현품으로, 원본은 무게 때문에 애초에 해외 전시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전시 초입으로서 상당히 잘 구성된 공간이었다. 태양의 돌과 그 좌우 스크린에 아스테카 신화를 설명하는 영상을 틀어주는데 화려하고 재미있어서 그 자리에서 세 번인가 연달아 봤다. 내용은 아스테카의 태양 신화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시대구분이었다.

다만, 저 '태양의 돌' 앞 쪽에도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될만한 유물 몇 점이 놓여 있으나 영상이 계속해서 나오는 탓에 자세히 관람하기가 힘들어서 조금 아쉬웠다. 영상 재생이 끝나고 보려 해도 다음 영상 재생까지 30초밖에 없어서... 동선을 왜 그렇게 해놔야 했는지 의아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아스테카 사람들의 삶과 환경에 대해 다루는 공간이 나온다. 여기서도 그렇고 전시 전체적으로 고문서가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은 크고 작은 조각품들이다.

개인적으로 되게 재밌었던 것이 위 사진에 나오는 동물 조각들이었다. '아 이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과 정말 많이 달랐구나'하는 느낌을 딱 받는 부분이랄까. 특히 메뚜기(2번)와 물벼룩(4번) 같은 곤충 조각이 눈길을 끌었다.

'어린 옥수수의 신 실로넨'(왼쪽)이나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 등 아스테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던 '하드코어 예술'과는 좀 거리가 먼,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조각품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기괴하고 잔인한 전시품들도 전시 후반부에 실컷 볼 수 있었지만, '이런 모습도 있구나'하는 정도의 감상만 해도 전시의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어이없게 터지는 부분도 있었다. 황당한 상황, 그것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 ppt로 대강 만든 것 같은 말풍선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인상적인 감동을 연출했다. 

이외에도 아스테카 사람들의 가정, 사회, 문화 등에 대해 간단히 볼 수 있는 전시품들을 지나치며 다음 파트로 넘어가게 된다.

아스테카 사회의 군사제도 및 대외정책을 조명하는 파트다. 정복활동을 통해 주변국으로부터 공물을 수취하고, 이 과정에서 전사 계급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내용이다. 

붉은색 벽 색깔이 눈에 띄는데 아마 앞 부분의 초록색 벽도 그렇고 멕시코 국기에서 따온 색깔이 아닌가 싶다.

전사 계급과 관련된 상징물이나 조형물, 무기류 등이 주로 소개된다. 왼쪽 사진은  "코요테 또는 어린 늑대"를 표현한 조각이다. 우리 땅콩이가 생각나는 귀여운 모습이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근데 땅콩이는 코요테도 아니고 늑대도 아닌데... 근데 너 미용은 좀 해야겠다...

전사의 한 계급이었던 독수리 전사. 멋있음과 멋있지 않음 그 사이 어딘가의 모습으로 손에는 뭔가 창이나 방패 같은 장비를 쥐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 파트에서는 아스테카의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테노치티틀란은 현재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의 전신이기도 하다. 당시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도시였다고 하는데 아스테카 사람들이 어떻게 이 수상도시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그리고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었는지 등을 간단하게 보여준다.

정교하고 화려한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체적인 형상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볼 수 있을법한 것들인데 세부적인 표현이나 장식이 이렇게 이국적인 것을 보면 새삼 신기하다. 공예품을 지나가면 고문서를 통해 아스테카인들의 문자, 의학 등 지식체계를 알아볼 수 있는 부분도 나온다.

여기까지는 사실 전시가 되게 교과서적인 톤으로 진행된다. 호들갑 떨지 않고 담담하게 아스테카의 사회, 문화, 생활, 정치 등을 조금씩 조금씩 조명해나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국적이고 독특한 전시품의 생김새에 지루할 틈은 없었다.

전시의 마지막 파트는 테노치티틀란의 신성 구역과 템플로 마요르를 다루고 있다. 전시실 가운데에 모형이 만들어져 있는데 비치된 태블릿으로 비추어 보면 색깔이 입혀진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뭔가 체험하는 느낌이라 좋고 박물관 입장에서는 모형에 직접 채색하는 것보다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좋은 것 아닌가 싶은 부분이었다.

템플로 마요르는 신성 구역 중심에 있었던 대신전이다. 아스테카를 정복한 스페인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78년 발굴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많은 전시품들이 템플로 마요르 및 그 주변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한다.

'바람의 신 에에카틀' 조각이다. 재밌게 생겨서 찍어왔다. 아스테카 사람들의 미적 감각은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다.

피라미드 형태의 템플로 마요르에 담긴 아스테카 신화를 표현한 영상이 나온다. 관람객 눈앞에 실제로 계단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실제로 템플로 마요르에 다가가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밋밋하지 않게 영상으로 스토리텔링을 해줘서 좋았다. 

뭔가 교과서에 나오는 서술을 본 것 같은 이전까지의 분위기가 환기도 되고 전시의 클라이맥스로 가는 빌드업 효과가 상당한 듯. 전시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아스테카 문명의 종교의식과 희생제의를 다룬다. 오해도 많고 논란도 많지만 결국 이것을 빼놓고는 아스테카 문명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전시는 아스테카 문명의 이러한 희생제의에 대해, 세상의 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희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스테카 신화에서 신들이 스스로를 희생해 태양이 되었으니, 이 태양을 움직이고 지속시키려면 인간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왼쪽 사진은 "비의 신 틀랄록을 묘사한 제단 착몰"이다. 누워 있는 사람의 형상이 그릇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저 그릇에 동물과 인간의 피와 심장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은 "전쟁과 재생의 신 시페 토텍"으로 '인간의 살가죽을 입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우리 기준에서는 엽기적인 이 모습이 전쟁뿐만 아니라 '재생'도 상징하는 이유는 아스테카 사람들이 살가죽을 벗기는 일을 옥수수가 싹을 틔우기 위해 씨앗의 껍질을 벗는 것과 같이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 얼굴 모양이 장식된 칼(왼쪽)과 금으로 만든 인간의 심장의 모습이 재밌었다.

비의 신 틀랄록을 그린 항아리. 틀랄록은 엄청 중요한 신이라서 이번 전시에서도 언급이 많이 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전시품 하나만 사진을 올린다. 뭔가 일관되게 눈과 입이 강조된 모습이 중국 청동기의 도철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진정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석상이 나온다. 죽음을 맞이한 모든 사람은 지하세계에서 믹틀란테쿠틀리와 마주친다고 하니 우리에겐 저승사자나 염라대왕 같은 존재인가 보다.

정말 독특하고 신기한 모습이었다. 저 표정과 제스쳐는 반갑다는 것인지, 깜짝 놀란 것인지, 장난을 치고 싶은 건지 확실히 구분하기 힘들었다. 겉으로 드러난 갈비뼈 아래에 튀어나온 것은 간과 쓸개로 아스테카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긴 기관인가 보다.

발견 당시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부서진 상태였기 때문에 발굴에 5개월, 복원에 거의 일 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정말 귀한 발걸음을 해준 셈이다.

그 뒤로 해골 이야기를 좀 하다가 전시는 끝난다. 텍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아스테카와 관련된 오해, 그리고 왜곡된 시선을 최대한 해소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원래 내가 전시 리뷰할 때 해설 텍스트를 그대로 옮겨 오는 경우는 잘 없는데 이건 전시를 관통하는 일종의 주제의식이라서 가져오는 게 나아 보였다.

한동안 우리나라 역사 관련 전시만 쭉 찾아보다 모처럼 새롭고 이국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중남미 쪽 유물은 국중박 세계문화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정말 귀한 기회였다.

전시 구성도 좋았다. 신경 써서 만든 것이 느껴지는 영상 자료가 무척 인상 깊었고, 아스테카 문명의 광범위한 사회, 경제, 문화적 특징에서 테노치티틀란, 그리고 신성구역과 템플로 마요르로 옮겨가는 동선도 전시의 몰입감을 높이는 요소였다.

내용적으로 박물관 측이 인신공양과 같은 요소가 아니라 아스테카의 다양한 모습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려고 시도한 데에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인식이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인식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잔인한 인신공양 행위를 일삼은 아스테카인들은 모두 정신 나간 야만인들이다'는 식의 이야기이고, 이것이 한 두발 더 나아가면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스테카 정복은 착한 정복이었다'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 단지 '아스테카는 미친 문명이었다'라고 정리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식인과 인신공양은 나쁜 일이다'라는 정도의 결론이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교훈이겠냐는 것이다. 

물론 아스테카에서 행해진 희생제의와 종교의식은 '잔혹하고 엽기적이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세계관의 문제이지 그 문화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특별히 악랄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횡단보도 신호등의 빨간불에서는 서고 파란불에서는 걷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 나름의 상식과 규범 안에서 행동했을 뿐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그들의 행위나 문화를 비난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보는 편이 보다 영양가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 역시 영상 자료를 활용해 아스테카인들의 신화 등을 소개하고 있긴 하지만 아스테카와 시대적, 지리적으로 인접한 문명과의 비교라든지 중남미 문명의 전체적인 발전과정 및 특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다 떠나서, 좀처럼 볼 기회가 없는 이국적인 문명의 모습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 될 전시다. 아스테카를 오해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조금이나마 그 오해를 풀 계기가 될 것이고 그런 오해가 없었던 사람이라면 세계사에 대한 시각을 넓혀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8월 말까지 진행되니 끝나기 전에 꼭 한 번쯤은 관람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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