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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부엉씨 Aug 22. 2022

국립고궁박물관 전시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feat. 라이엇게임즈

병원 갈 일이 있어 반차를 쓴 김에 이번 달에 보려고 했던 전시를 보기로 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의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전시다.


주 초에 물난리가 난 것이 무색하게 갑자기 날씨가 맑고 선선해졌다. 그래도 지하철 천장에 구멍이 나있는 등 전날의 어지러운 분위기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광화문 광장이 새로 열었다더니 이렇게 되었나 보다. 평소 걷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이 동네가 내 생활권도 아니라서 바뀐 광장의 모습에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잔디밭 앞에서 어떤 외국인분이 춤추는 영상을 찍고 있어서 신기했다.

이번 전시는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떠나야만 했다가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다시 돌아오게 된 환수 문화재를 다룬다. 올해 7월 7일부터 9월 2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나라 밖 우리 문화재"에서는 국외 문화유산의 현황을 제시하고 다양한 반출 경위 및 반환, 환수 경로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부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겸재정선화첩"이었다. 옛날에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가 한국에 왔다가 수집해 갔었던 물건이라고 한다. 지난 2005년 영구대여 형식으로 경북 칠곡에 있는 왜관수도원에 돌아왔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위탁관리하고 있다.


화첩이 돌아오게 된 경위가 꽤 감동적이다. 사실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입장에선 애초에 불법적으로 반출된 물건도 아니니 굳이 돌려줘야 할 이유도 없고, 유명 경매 회사로부터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으니 경매에 부치라'는 제안도 받았다고 하지만 한국 학자 및 종교인의 끈질긴 노력에 아무런 대가 없이 반환한다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그림을 보면 진경산수화의 대가가 그린 것이라 그런지 역시 "금강내산전도" 같은 산수화를 멋있게 잘 그렸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바람이 매섭게 부는 날 길을 나선 나귀 탄 나그네의 모습"(풍우기려도)이 가장 좋았다. 거센 바람에 나뭇잎과 가지가 날리는 모습, 그리고 몸을 웅크리고 그 나무를 지나고 있는 나그네의 모습에서 생동감과 입체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좀 힘들어가지고 나그네 모습에 약간 감정이입된 것도 있고... 

왼쪽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거북이는 "효종 추상존호 금보"다. 6.25 전쟁의 난리통에 도난당했다가 한 경매에서 거래가 되었으나 자신이 구입한 물건이 도난품, 그러니까 장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재미교포 소장자가 한국에 기증했다. 정말 양심적인 분이다.


오른쪽 사진에서는 국새 네 점이 천장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상하는 데에 있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국새랑 어보의 차이점을 찾아보니 국새는 실무용을 쓰던 도장이고 어보는 의례용으로 모셔 놓는 도장이라고 한다. 

2부 "다시 돌아오기까지"에서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환수 문화유산의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리그오브레전드(LOL, 롤)로 유명한 라이엇게임즈(이하 라이엇)가 환수에 힘을 보탠 문화유산이었다. 요즘은 롤을 잘 안 하지만 한때 많이 하기도 했고 원체 게임을 좋아하는 데다, 기업 사회 공헌 활동 사례로서도 상당히 성공적이고 인상적인 경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번 전시에는 라이엇이 환수 과정에서 도움을 준 문화유산이 세 개 출품되었다. 각각 (위 사진 왼쪽부터)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 "중화궁인" 등이다. 최근 라이엇이 환수한 "보록"(임금의 도장 보관함)의 경우 아직 공개는 안 된듯하고 준비가 되면 사진 가장 오른쪽의 "인장함" 자리에 전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라이엇이 문화유산 관련 사회공헌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딱 10년째라고 한다. 왜 외국 게임 회사가 문화유산 관련 지원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건지 처음에는 의아한 생각도 있었고, '저러다 말겠지'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라이엇은 10년이라는 시간으로 그러한 의구심을 불식시켰다. 


그 시간 동안 꾸준히 활동을 모색하고, 자금을 대려면 회사 차원에서 일치된 뜻과 강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텐데 커뮤니케이션 업무하는 사람 입장에서 내부 의사결정이나 실무 프로세스가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히스토리가 너무너무 궁금하고,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직접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전시에 나온 환수 문화유산의 여정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벽면에 정해진 부분을 터치하면 환수 과정을 시각적으로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데 퀄리티가 아주 좋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ㅎㅎ...

계속해서 다양한 환수 문화유산의 이야기를 좇아가다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올해 초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를 칠하다] 전시에서 봤던 "나전국화, 넝쿨무늬자합"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당시에는 자세히 살펴보기 어렵게 진열되어 있었던 까닭에 아쉬웠던 것에 비해 이번엔 아주 보기 좋게 눈높이에 전시되어 있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튼 전 세계에 단 세 점만 남아 있다는 고려 시대 나전칠기 자합을 6개월여 만에 다시 만나게 되니 뭔가 행운이 따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2부 막바지에 전시되어 있는 "강노 초상"의 경우 초상화 자체보다도 진주 강씨 5대 초상화가 전한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 이 초상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으면 참 멋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가 열렸더라.

마지막 3부는 따로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고 관련 영상이 재생되는 형태다. "해학반도도", "청자상감포도동자무늬표주박모양주자" 등이 주요 소재다. 나는 이 두 문화유산이 실물로 전시되는 것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고 대표 사례로 소개되는 정도였다.


해외에 있는 문화유산을 단순히 환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홍보 등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게끔 관리 및 보존에 힘을 보태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한다는 취지였다. 사실 도난이나 도굴처럼 불법적으로 반출된 것이 아니라면 반환을 강제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고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테니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접근 방식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몇 가지. 역시 라이엇 담당자님의 인터뷰를 가장 열심히 봤다. 결국 '문화'라는 키워드에 착안해서 시작하게 되었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우리가 게임을 하면서 문화유산을 지키는구나'라는 식의 자부심을 느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

내친김에 라이엇에서 만든 공식 영상도 첨부한다.

넉넉잡아 30분 정도면 다 볼 만큼 전시 규모가 크지는 않고 볼거리가 아주 많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전시품 하나하나의 면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전시품이 우리나라를 떠나고 돌아오게 된 이유와 과정, 그리고 그 뒤에 놓인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주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라고 본다. 


9월까지 진행되니 우리 문화유산에 관련해서 또 하나의 토킹 포인트를 얻어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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