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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Dec 31. 2020

내가 다시 임신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이를 갖기 전에는 마지막인줄 몰랐던 것들이 아이를 가진 후, 낳은 후에서야 마지막인줄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이미 다 지나가 과거가 되어버린 일이지만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만약 다시 임신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의 몸을 좀 더 예뻐해줬을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알게된 것은, 그 몸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몸을 그렇게 예뻐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닥 예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뚱뚱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돌 처럼 마르고 늘씬한 몸매도 아니었고

운동을 늘상 좋아라하긴 했지만 바디프로필을 찍을 만큼 탄탄한 몸도 아니었다.

남들 다 갖고 있는 신체 콤플렉스 한두 개쯤 갖고 있는, 그냥 평범한 몸이었다.


임신과 출산을 겪고 나면 몸이 많이 바뀐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잘 아는 사실이었다.

하나의 생명이 내 몸을 통해서 세상에 온다는데 내 몸 하나 조금 미워지는 것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살이 찌는 것 쯤이야, 출산 후 꾸준한 자기관리를 통해 빼면 될 거라고 생각했고,

수술 흉터 남는 것 쯤이야, 어차피 속옷 안에 가려져 보여질 일도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기를 낳고 보니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가혹했다.

'몸이 바뀐다'는 것은 살이 찌는 것이나 수술 흉터 얘기가 아니었다.

아기를 갖기 전 내 몸과의 완전한 작별이라는 뜻이었다.


*


임신 기간 동안 나는 유난히도 밝고 행복했다.

몸이 눈에 띄게 퉁퉁해져가도 행복할 수 있었던 건 '낳고 나면 다 돌아올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낳고 나서 더, 더 우울했다.

배신 당한 것만 같았다.

낳고 나서 마주한 나의 몸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온몸이 퉁퉁 부었다. 손과 발, 팔과 다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었고, 얼굴도 부어 너무 못생겨졌다.

나는 왜 아기를 낳기 전 보다 낳고 나서 더 붓는다는 걸 몰랐던 걸까? 무거운 아기가 뱃속에서 혈관을 눌러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만삭 때가 가장 많이 붓는 때라고 생각했고, 아기를 낳고 나면 무거운 것이 빠져나갔으니 붓기도 당연히 그에 맞게 줄어드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낳고 나서 마주한 현실은 사상 최대의 붓기, '태어난 이래 가장 못생긴 나'였다.


배는 더 충격이었다.

자기관리 50년 동안 안 한 아저씨 배도 이것 보다는 예쁠 것이었다.

분명 아기는 나왔는데 내 배는 8개월 즈음의 크기에 머물러 있었다.

더 별로인 건, 그렇게 배가 불러있는 채로 추욱 쳐졌다는 것이다.

차라리 만삭 때 배가 훨씬 예뻤다. 그때는 탄력이라도 있었으니까.

바람 빠진 풍선 처럼 축 늘어진 배는 정말 참담했다.

색깔은 전체적으로 거무튀튀했고, 가운데에는 짙고 구불구불한 임신선이 한층 더 초라해진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가슴은 임신 기간 동안 너무 커져서 멜론 두 개를 얹고 다니는 느낌이었고,

유륜은 빅파이 거뜬히 후려치고 초코파이를 넘보는 크기가 됐다.

아기를 낳고 젖이 돌고 나니 알게된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젖을 빼주고 나면 그렇게 커진 가슴이 볼륨감만 싹 빠지고 축 처진다는 사실이었다.

모유수유가 끝나면 더이상 젖이 돌 필요가 없으니 축 처진 그대로가 나의 가슴이 되는 것이었다.

가슴이 엄청 커졌었다보니 가슴 주변 살들은 다 늘어나있고,

더이상 유선은 발달하지 않고 퇴화하니 늘어진 살과 함께 축 쳐져버리는 것이다.

모유수유에 대한 조언을 주던 어떤 전문가에게 내가 '가슴이 덜 쳐지게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물으니

'그런 건 없고, 나중에 정 보기 싫으면 축소 수술을 하라'고 말했다. (그 말을 그렇게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웃으면서 하냐 잔인한 사람...)





이런 상황이 되고난 후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몸이 참 예뻤었다.


아기를 갖기 전, 아니 임신 초에라도, 몸의 변화가 너무 극심하게 시작되기 이전에라도

이 몸이 마지막인줄 내가 알았더라면.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홀대하지 않았을텐데.

참 예뻤던 내 몸을 한 번 더 쳐다보며 작별인사라도 해줬을텐데.


평생 내 것이라고만 믿었던 내 몸과

이렇게 예고도 없이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할지 정말 몰랐다.

현재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은 새로운 모습의 몸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내가 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어쩔 도리는 없다.

이 새 몸을 하루 빨리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수 밖에.


혹자는 '임신 출산을 겪은 모든 여성이 다 축 쳐진 몸으로 사는 거 아니지 않냐, 꾸준히 운동하고 살 빼고 관리해서 예전보다도 더 예쁜 몸으로 가꾸면 되지 않냐'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이 상황에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나의 통탄함은 평생, 아니 적어도 젊은 날 동안에는 거울 앞에 서면 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나의 몸, 그래서 한 번도 제대로 아껴준 적 없었던 몸,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려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내 예전 몸에 대한 것이다.


물론 이미 바뀌어버린 몸은 앞으로도 바뀔 수 있을 것이고, 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어보려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슬픈 것은 임신 전 내 몸에 대한 향수이다.



나에게는 이미 다 지나가 과거가 되어버린 일이지만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 당신의 몸이

삶에서 가장 젊고 예쁜 몸이라고.


당신이 임신을 계획했다면, 그리고 새 생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면

당신의 눈에 너무도 익숙한 그 몸은 언젠가 예고도 없이 시나브로 사라져버릴테니

사라지기 전에 충분히 예뻐하고 감상하고 만져주고 눈에 담아두라고.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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