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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유 Nov 19. 2021

빠져버린 아들의 엄지발톱을 바라보며

찬유가 처음으로 다친 날.





평소와 아무 다를 것 없던 하루였어.


나는 잠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옷방에 들어갔고, 그 방 문만 열리면 신나게 따라들어오는 너는 그날도 나를 따라 들어왔어.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많은 방이라 주로 너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좋아라하는 너를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꼭 조금은 물건들을 만지며 놀 수 있게 해주었지. 너는 옷을 갈아입는 내 바로 옆에서 놀고 있었어.


그러다가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네 아빠의 커다란 카메라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고, 너는 약간의 놀라는 순간이 지나더니 ‘으앙-‘ 울음을 터뜨렸어.


아… 발을 찧었구나… 발을 찧었어.


즉시 카메라를 들어올렸는데 너무 무거웠어. 풀프레임 DSLR 카메라에 기다란 줌렌즈까지 달려있는 녀석이었어. 대충 봐도 2키로는 될 것 같았어. 너의 발을 쳐다보니 왼발 엄지발톱에 검붉은 색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더니 몇 분 이내에 엄지발톱 전체가 검게 변해버렸어.


나는 바로 너를 안고 소아과로 갔고, 골절이 의심된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응급실로 향했어. 엑스레이를 찍고 그 결과를 들을 때 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갔는지 몰라. 정말 너무 다행히, 골절이 아니라고 했어. 아기의 발가락 뼈는 아직 자라는 중이라 원래 뼈들이 조각조각 떨어져 있는 형태이고, 엑스레이 상 보이지 않는 미세 골절이 있을 수 있어도 그런 것들은 몇 주 지나면 알아서 붙는다고 하더라. 아… 그 말을 듣고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녹아내리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씩씩한 너는 다친 당일 저녁 응급실에서 집에 오면서부터 활기를 되찾았어. 다친 발로 디디고 서는 것도 전혀 문제 없이 해냈고 아파하지도 않았어.


그후로 며칠이 지나고 검게 된 네 엄지발톱 밑으로 피와 함께 진물이 터져나오고, 피가 빠지고 나서는 다시 발톱 색깔이 돌아왔어. 발톱이 한 번 빠지고 다시 날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릴 적 축구하며 발톱 여러 번 빠져봤다는 네 아빠는 의연했는데 엄마는 발톱이 빠져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가 없더라. 나도 겪어보지 못한 아픔을 너한테 주는 것 같아서…


다친 지 보름 하고도 이틀이 더 지난 날 아침, 네가 발을 만지작거리더니 손을 입으로 가져가기에 평소 처럼 밴드를 뜯어 입에 넣는 줄 알았는데 잽싸게 뺏어서 보니 다름 아닌 네 엄지발톱이었어. 네 엄지 발톱… 네 작고 통통한 발에 붙어있어야 할 엄지발톱이 통째로 내 손 위에 놓여있었어. 그가 떨어져 나온 자리에는 새로 자라나고 있는 발톱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어.



나는... 그 발톱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어. 네가 기특하고 짠했고, 새 발톱이 잘 자라주고 있는 것에 고마웠고, 떨어져나온 발톱을 아무렇지 않은 듯 입에 넣어본 네가 사랑스러웠고, 상처 받은 녀석이 떠나주었으니 상처를 모르는 새 발톱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 자라주기를 바랐고, 다시는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





아들아, 네가 태어나 처음 다친 날 엄마는 많이도 울었다.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내가 너무 무능해서, 그것 하나 피하게 해주지 못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워서… 나 때문에 네가 다친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너무 미웠어.


네가 다치고 온 날 밤, 네 아빠랑 나는 바로 그 방에 안전문을 설치했어. 진작 이렇게 할 걸 싶더라. 그러면서도 있잖아, 언제 까지 너를 이 안전문으로 지켜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 조만간 너는 쑥쑥 커서 안전문 따위 손쉽게 열고 들어갈 수 있게 되겠지. 네가 좀 더 큰다면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도 혼자서 건너 다닐 거야. 더, 더 큰다면 엄마, 아빠 처럼 세계여행을 한다고 할 지도 몰라.


내 아이를 다치게 할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소망이겠지만 가능하지는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 널 다치게 한 그 카메라는 평소에 너의 가장 예쁜 모습들을 많이 담아준 고마운 카메라거든. 나는 너에게 위험한 물건들을 모두 없애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무엇이 너에게 위험할지 판단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없어서는 안 될 자가용 자동차가 우리를 큰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사람을 믿지 않고는 절대 살아갈 수 없지만 사람 한테 받는 상처 만큼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 또한 없거든. 무엇이 도움이고 무엇이 위험인지는 엄마도 다 모르겠어.



네 아빠는 속상해하는 엄마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너무 죄책감 갖지 말라’고 말해줘. 정말 그럴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네가 다치는 걸 난 막을 수 없었을까?


그건 몰라도 어떤 계기로든 나는 깨달아야 했겠지. 네가 다친 것은 내가 안전문을 설치해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언젠가 네가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했어야 했어’ 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걸.


아빠랑 엄마가 전 세계를 돌아다닐 때 그런 생각을 했거든. 어딜 가든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시는 큰 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나는 그 손이 분명 너도 지켜주고 계시리라 믿어. 카메라가 발가락 끝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졌다면 골절이었을 확률이 훨씬 더 크대. 너를 눈동자 처럼 지키고 있는 그 손이 분명 카메라를 발끝에만 톡 닿도록 밀어주셨을 거야.


그러니 아이가 다치고 아픈 것에 지나치게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고, 아이가 다칠까 하는 두려움에 세상을 탐색하려는 시도를 가로막지 말며, 내가 이십 수 년 간 무탈하게 살아가듯 나의 아이도 분명 그럴 것이라고 믿으면 되는 거겠지. 아이가 내 몸에 생긴 것부터 단 한 순간도 나의 의지로 된 것이 없이 그저 이루어졌듯, 아이를 키우고 지키는 것 또한 결국 결정적 순간에는 나의 몫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빠져버린 네 엄지발톱을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겸손해진다. 엄마는 그저 평생 너의 발을 어루만지며 마음 다해 기도하며 살아갈게.


너의 생애 동안 부디 너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아픔만 허락되기를.




2021.11.19

찬유 생후 358일

3주 전 네가 다쳤던 그날을 떠올리며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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