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월간 <생활성서> 11월호 "살자는 말" 특집에 수록된 글을 게재한 글입니다.
2018년 5월 8일, 어머니가 자살했다. 그녀는 옥상에서 뛰어내려 척추가 부서져 사망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어 하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침묵해야 했다. 장례식장에선 아무도 우리 가족을 대놓고 비난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자살은 무책임하고 부끄러운 죽음이며 도덕적으로 비윤리적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을 알 수 없는 죄책감을 안은 채 5년 동안의 긴 침묵으로 들어갔다.
그 침묵의 시간 동안 나는 질문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뛰어내리기 직전 무슨 생각을 했나? 그녀는 정말로 자신의 결단으로 죽음을 택한 것이 맞나? 그것은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극단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감행한 선택은 아닌가? 그 고통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나? 그것은 정신 질환으로 인한 충동적 선택은 아니었나? 그 질문들과 함께 나는 혼란스러웠고, 아팠고,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여성의 수치심에서 기인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 이상 더 명확한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내가 사회적 시선에 동조하여 침묵하는 한 그녀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었다. 그대로 그녀를 사라지게 만들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모든 침묵과 은폐의 시간을 거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의 죽음이 수치심에서 시작한다면, 나는 그녀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그 과정을 알아내고 이해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깥세상으로 꺼내놓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삶과 죽음의 전 과정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은 『태어나는 말들』이란 제목으로 브런치에 연재되었다. 내가 그 글을 쓴 것은 한 여성의 67년의 생애가 자살이라는 사건 때문에 몰이해 속에 송두리째 잊히는 것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었다. 타인에게 어떤 위로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한 것일 뿐이었다. 거부하고 증언할 것, 그리고 공개된 자리에서 자살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
증언하는 사람이 과연 타인에게 위안이나 희망을 줄 수 있는지,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만 내가 겪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전부일 뿐이다. 나는 죽음에 대해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자이고, 삶의 희망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어찌해서 여전히 살고 있는지 그 현재를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사랑하는 존재의 삶과 죽음의 전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길 희망한다. 그것이 불가능한 시도임에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그 질문의 뿌리에는 사랑이 있다. 나의 사랑은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생전의 어머니는 나를 사랑했지만, 나는 ‘충분히’ 그녀를 사랑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산을 좋아해 나를 데리고 아차산, 용마산, 도봉산, 관악산, 수락산, 북한산 등지를 다녔다. 등산에 관해서라면 어머니는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눈 쌓인 산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 아이젠은 어떻게 착용하는지, 어디로 가면 경사로가 아닌 둘레길로 갈 수 있는지, 산짐승을 만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든 것을 아는 그녀는 야생의 늑대처럼 나를 이끌고 다녔다. 산은 어머니를 짓누르던 남편과 아들의 존재에서 벗어나 그녀가 여자이며, 인간임을 알게 해주었다. 산이 어머니를 품어주었다고 생각했으나, 어머니가 그 산을 힘껏 껴안지 않았던들 어머니는 진작에 삶의 슬픔과 분노에 타오르고 말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 산에서 한 남성을 만나 외도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산은 그녀의 뚜렷한 욕망의 실체를 깨닫게 해준 장소였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나는 산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 산의 울창한 나무들이, 그 나무들이 드리우는 깊은 그늘이,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모두 내가 헤아려 보지 못한 모성과 여성의 세계와 같았다. 그 산이 품은 여성성과 자연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를 이해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글로써 어머니 삶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며 의문의 죽음에 질문함으로써 그녀에 대한 사랑을 복원시켜 나갔다.
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다만 개인적인 슬픔을 말하되 내가 본 것과 느낀 것에 충실해지자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그 사적인 슬픔을 기록함으로써 나는 비로소 슬픔의 구덩이에서 한 걸음 거리 두기를 시작했을 뿐이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내밀한 슬픔이 공개된 매체를 통해 타인의 슬픔과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연결된 고통에 대하여, 자살에 대하여, 자살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망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사람이 사려 깊고 활발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조금은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양지에서 자살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섬세한 언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슬픔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선천적인 불구처럼 다가오지만, 그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는 현재를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삶에 대한 행복, 희망, 비전을 본다기보다 오로지 살아 있음에 대하여 명확히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다만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죽음의 뿌리를 응시할 뿐이다. 응시하면서 나는 삶을 해석한다. 내 삶에 일어난 슬픔의 폭격을 나의 눈, 나의 심장이 느낀 방식으로 기록하고 해석하지 못한다면 나는 한 발도 삶의 곁으로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그 응시와 해석에 대한 의지는 나를 키운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폐허 위에서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던 조약돌 같은 눈빛을 기억했다. 그 단단하고 말간 눈빛은 나에게 삶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언어를 통해 당신을 기억하는 일로써 삶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글로써 당신의 삶을 기억하는 동안 나는 당신의 눈빛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당신이 동그란 결혼반지를 팔아 나를 대학에 보낸 그 마음이 나를 자살 생존자에서 한 발 더 걸어가게 했다. 나는 지금 당신의 그 눈으로 살아 있는 아픈 존재들을 바라본다. 죽음을 응시하는 데에서 그칠 게 아니라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 나에게 삶과 죽음을 준 그 사랑에 대하여 기록함으로써 당신의 사라짐을 살아있음 속으로 불러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을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