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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n 27. 2024

글쓰는 사람의 딜레마 (1)

<비밀의 언덕>에 대한 단상

작년 12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브런치북 대상을 받았다. 그 이후 나는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았지만, 정작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을 때 그들은 크게 기뻐하지도, 축하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가족을 비롯해 나와 20년 이상 알고 지내온 지인들은 나이 마흔 넘어 수상한 내 근황을 알렸을 때,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들이 그렇게 반응한 것은 내가 재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한평생 글의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온 인간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영화 <비밀의 언덕>

영화 <비밀의 언덕>을 무심코 vod로 플레이 하고, 주인공 명은의 부모님이 젓갈을 파는 상인으로 나오는 장면부터 나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의 부모님 역시 재래시장 입구에서 도매 상인으로 30년 넘게 장사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명은이의 어머니는 억척스럽다.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돈을 버는 것 이외에 타인에게 연민과 동정을 베풀거나, 환경보호를 위해 분리수거를 하거나, 자신에게 교양이란 것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쓸 여력이 없으며, 그딴 것은 중요하지 않은 여성이다. 아버지는 한량으로 가게에 누워 자면서 딱히 하는 게 없는 일인이지만, 명은이가 상을 타면 고깃집에 데려가 고기를 사줘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아는 위인이다. 이러한 물질적 토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는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 될 문제다. 글을 쓰는 열두 살 명은의 눈에는 부모님이 너무도 속물적이고 교양이 없으며 자신의 세계를 전혀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소외감이 문제다. 그래서 부모님을 부끄러워한다. 명은은 학교에서 젓갈 상인의 딸임을 숨기며 영민함과 주도면밀함, 사회성을 발휘해 반장의 자리를 거머쥔다. 그 후에는 넥타이를 매는 회사원의 딸임을 연기한다. 아이들과 선생님도 그녀의 연기에 대체로 속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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