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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소연 Jun 27. 2024

글쓰는 사람의 딜레마 (2)

<비밀의 언덕>에 대한 단상

나는 일찍이 넥타이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로, 왜 우리 아버지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땀내 나는 티셔츠에 올이 나간 바지와 닳아 빠진 운동화를 신고 맥주짝 소주짝을 짊어지는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20대 초중반까지 넥타이를 맨 남성들에게 급격하게 끌리곤 했다. 그러나 그 환상은 20, 30대를 통과해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두 깨지게 되었다.

내 가족, 특히 어머니를 중심으로 쓴 책의 출간을 준비하면서 나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오만 원짜리 지폐를 던지고 집을 나가버렸다. 내 꿈속에서 어머니는 늘 집을 떠나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간의 꿈에서 어머니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나에게 질투와 선망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등장하다가, 최근에는 나에게 돈을 던지며 모욕감을 안겨준 다음 집을 떠나는 사람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 지폐를 집어 들고 어머니를 뒤쫓아 갔으나, 그녀는 이미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 생생한 모욕감과 분노 속에서 깨어 나야 했다. 그리고 가족을 팔아 글을 써서 상금을 챙긴 위인이라는 무거운 마음은 더욱 가중되기 시작했다.

<비밀의 언덕>에서 명은 역시 가족에 대한 글을 써서 대회에서 큰 상을 수상하게 된다. 명은은이 이렇게 상을 받게 된 데에는 그녀의 주도면밀함이 밑바탕이 되었다. 바로 그녀의 라이벌이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혜진 자매의 글쓰기의 태도를 벤치 마킹한 것이기 때문이다. 혜진 자매는 매춘부의 딸이자 각기 다른 아버지를 둔 딸들로, 자신의 출신 성분을 글 속에서 과감없이 드러내며 공동 창작을 한다. 혜진 자매가 글을 쓰는 원칙은 “나를 키워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내 출신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명은은 자신의 출신이 부끄럽다. 어른들이 원하는 정답들을 정확히 알고, 배경지식이 될 만한 서적들을 리서치하여 그럴듯한 글을 써낸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명은은 혜진 자매의 글을 훔쳐보면서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안다. 자기 글이 “가짜”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은에게 부끄러움과 수치감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명은은 이러한 도덕적 가책보다 상을 받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더 큰 목적이기에, 일단 혜진 자매의 글쓰기 스타일을 차용한다. 다음 글쓰기 대회에서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자기 가족에 대한 모든 치부를 글로 쓴다. 그리고 그 글은 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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