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잡아준 제주 할머니
내가 사는 제주 동쪽 마을은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버스 안이 가장 붐빈다. 해가 지면 바람이 더 거세지는 탓에 서둘러 귀가하려는 마을 사람들과, 하교하는 고등학생들과, 관광객들이 한데 뒤엉켜 탄다.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좀 더 이른 시각에 버스가 붐빈다. 장이 파장하는 오후 2시경에 비닐 꾸러미를 한가득 안은 마을 사람,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버스 앞쪽에 몰려 앉는다. 모두가 아는 사이인 듯 오늘 무얼 샀는지,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 어느 병원에 다녀왔는지 얘기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버스가 정거장에 멈춰 서면 기사가 외친다.
“자아, 천천히— 천천히— 내리세요!”
노인들은 기사의 말대로 아주 천천히 내린다. 그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기사는 침착히 기다리고, 승객들은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들이 좌석에서 일어나 좁은 통로를 지나 계단을 내려와 정류장이 있는 땅바닥에 두 발을 내려놓기까지 지켜보고서야 어쩐지 안도하게 된다.
어제 오후에도 나는 오후 4시경에 버스에 올랐다. 다이소에서 산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서 말이다. 어김없이 버스 안은 앉을자리 하나 없이 붐비고, 통로에도 사람들이 꽉 들어차 서 있었다.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에 나는 기사 운전석 옆쪽에 엉거주춤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사는 내게 박스를 앞유리 선반에 내려놓으라고 말한 뒤, 서 있는 모든 승객들에게 외쳤다.
“자, 꽉 잡으세요!”
그러자 운전석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내밀어 나의 팔을 움켜쥐고 외치는 것이었다.
“꽉 잡았수다!”
버스는 빠른 속도로 달리며 덜커덩거렸다. 그러면 나의 몸도 같이 덜컹대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자신의 손에 힘을 주어 내 몸이 앞뒤로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를 흘깃거리기 시작했다. 바람을 막기 위해 스카프로 머리와 얼굴 전체를 둘러싸고, 보온을 위해 짙은 감색 패딩에 꽃자주색 몸빼바지를 입었다. 소매 사이로 나온 가늘고 그을린 손목에는 실처럼 가는 주름이 패 있었다. 낯선 새의 여린 다리에서 뻗어 나온 듯한 손이 나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그럴 때가 있다. ‘지금 저 사람을 붙잡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 때 말이다. 내가 붙잡지 않으면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기어코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그 사람은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삶의 격랑에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울에서 살 때,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오다 기어코 쓰러지고 만 사람을 부축할 때처럼 말이다. 그런 안쓰러운 몸짓으로 우리는 서로를 스치며 하루를 살아낸다.
물론 버스 안의 나는 할머니가 붙잡아주지 않아도 기둥을 잡으면 되니 그다지 위태로운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붙잡아준 팔의 힘과 온기가 나에게 전해져 올 때, 나는 그 귀하고 순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오래 간직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마치 겨울 볕에 잘 말린 곶감처럼 시간이 갈수록 달큼해지는 그 마음을 나는 이 글 속에 담아 말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