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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ry Jan 28. 2020

내 인생을 바꾼 이야기

인생에는 돌아올 수 없는 공연이 있다.

공연 기획자를 하던 형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유명 호텔에서 클럽형 파티를 처음 만들면서 돈을 휩쓸었던 경험을 가진 형이었다. 그 형은 공연 기획자로 많은 성공을 거뒀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얘기는 이거였다.


"내가 OO이란 해외 아티스트를 진짜 좋아했는데, 개런티가 너무 비싸서 한국엔 아무도 못 데리고 오더라고. 게다가 국내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아서 부르면 무조건 적자가 날 건 확실했어."

"그런데 진짜 나는 그 아티스트를 너무 한국에 불러오고 싶었어. 그래서 다가오는 내 생일에 맞춰서 나한테 선물을 주자 생각하고, 200명도 못 들어오는 작은 공연장에 그 아티스트를 불러서 공연을 시켰어."


형은 잠시 회상하듯 얘기를 멈추더니,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공연은 대박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않았지만, 좁은 공간이 꽉 차서 분위기는 너무 좋았거든. 하지만 결국 몇 천만 원 적자가 났었지. 그래도 행복했어. 뭔가 꿈을 하나 이룬 것 같았거든. 내가 원하는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게."

"그 아티스트도 공연이 끝나고는 엄청 만족하면서 나한테 인사를 해줬어. 비싼 개런티도, 짜증날만큼 까다로웠던 공연 조건들도 그 순간에는 다 잊히는 것 같았지."


형은 뭔가 생각하듯 잠깐 얘기를 멈추고, 이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며칠 후에 걔 소식을 들었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걸. 한국에서 내가 억지로 만든 공연이 걔의 마지막 공연이었어."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로 무슨 공연이든 내가 보고 싶다고 조금이라도 생각이 들면 무조건 보러 가게 됐어. 그게 한국이던, 해외던. 인생에서 지나면 돌아올 수 없는 공연이 있다는 거를 알게 됐거든."


이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더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줬다.




2016년의 어느 여름날, 나는 사무실에 찌들어서 정신 놓고 일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쌓여갔지만, 일단 마무리를 하고 집에서 편안하게 쉬자는 생각에 힘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내가 좋아하는 유명 아티스트가 Ultra Korea라는 EDM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는 날이었다. 페스티벌은 오후 2시 시작이었고, 그 아티스트는 밤 9시 30분에 마지막으로 출연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공연을 보러 가기에는 너무 피곤했고, 시간은 이미 저녁 8시였다.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기던 중, 문득 형 생각이 났다. 지나면 돌아올 수 없는 공연이 있다는 그 말도. 그래서 고민은 집어던지고, 택시를 타고 페스티벌로 향했다. 표는 현장에서 끊었고, 홀로 시끄러운 공연장 앞쪽까지 나아갔다. 잠시 후 공연은 시작되었고, 나에게 그 공연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정말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그 아티스트의 이름은 Avicii다. 안타깝게도 그는 인생을 오래 살지 못했다. 내가 공연을 본 2년 후에, 조용하게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소식을 새벽에 잠이 깨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때의 충격과 아쉬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의 공연을 2년 전에 봐서 그나마 후회하지 않겠구나, 생각하면서 떠난 그를 추모할 수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인생에는 지나면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무언가를 떠나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사람들과의 공연에서. 게으름에, 어색함에, 익숙지 않음에. 그리고 나의 무지에.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수 없는 이 순간을, 후회 없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So live a life you will remember."라는 Avicii의 The Nights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오늘 밤은 2016년의 그 날처럼 사무실을 나서야겠다. 그리고 새로운 내일을 맞이해야지.

Avicii, The 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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