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
남는 건 사진뿐이야
사진 찍을 때마다 우린 이렇게 말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삶의 순간순간을 회상케 하는 매개체로 사진만큼 정확하고, 충실한 게 또 없다. 그래서 나는 사진 찍자는 말에 항상 어색함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나름 애써 활짝 미소를 지으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약 40년간 일하시는 내내 '시'를 쓰셨다. 가끔 서울로 올라오셔서 상을 타시는 걸로 봐서는 대중성 있는 작품들도 있는 것 같은데, 슬쩍 시집을 들여다보면 대체적으로 개인적인 경험과 소회를 시적으로 표현하여 풀어쓴 내용이 많았다. 심지어 본인만 알아챌 수 있는 '다빈치 코드'스러운 시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즉, '시'라는 것은 아버지 나름의 개인적인 삶의 기록 방법인 셈이다. 마치 우리가 사진을 찍듯이 말이다.
그렇게 40년가량 아버지께서 쓰셨던 시들은 비로소 몇 권의 책이 되었고, 지금 아버지의 서재에 나란히 꽂혀있다. 나는 아버지가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시로 당신의 인생을 기록했다는 점이 정말, 아주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시'라는 것이 비록 사진처럼 생생한 이미지 기록은 될 수 없지만, 한 줄 한 줄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문학적으로 풀어내며 삶을 기록하는 아주 독특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더 멋진 점은 그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며, 변화된 일상을 선사하는 이타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나는 그 아이러니함이 좋다. 나의 삶에 약간의 창의성을 담아 기록했을 뿐인데, 타인의 삶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니. 시라는 것은 다시 봐도 참 멋지다. 그리고 이걸 오랜 시간 해오신 아버지가 멋지고,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좋았던 순간, 사진을 찍는 것을 넘어 일상의 다채로운 감정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곡차곡 담아낸다면, 우리 스스로의 인생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일기, 시, 노래, 그림 등 어떤 방식이든지 말이다.
나는 문인인 아버지를 바라보며 컸고, 문학의 아름다움을 계속 동경하며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글쓰기는 매번 어렵다고 느껴지는 일이지만, 나를 돌아보는 가장 진솔한 방법이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미뤄왔지만, 앞으로의 일상을 글로 남겨가겠다고 다짐했다. 생각해보니 이 결심까지 참 오래도 걸린 것 같다.
삶의 아름다움은 아름답지 않은 순간조차도 가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좋았던 순간만을 기억하고, 기록하려고 애쓴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절로 켜게 되는, 즐거움과 환희의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삶이 항상 멋진 순간들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자괴감, 상실감, 엄청난 후회의 순간들... 하지만 이런 모습들도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조각하는 감정의 단편들이고, 모두 기록할 가치가 있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조차도, 그날의 무료함과 공허함을 기록할 수 있지 않은가. 오늘 하루를 돌아보자. 시간이 지나면 더욱 큰 가치가 될만한 것들이 분명 일상에 산재되어 있다.
기록하자. 당신의 소중한 일상을.
사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단 한 줄의 캘리그래피도 좋고, 의식의 흐름대로 쓴 장문의 글도 좋다. 자기 전에 녹음한 한 마디 음성파일이라도 좋다. 딱히 문학성이 없어도 되고, 서툰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도 상관없다. 사실 자기 인생을 기록하겠다는데 그 어떤 타인이 뭐라고 할 수 있겠나. 뭐든지 좋으니 기록하자. 단, 스스로를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이면 더욱 좋겠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사유화된 추억의 흔적으로 끝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마음가짐으로 당신에게 삶의 매 순간순간 돌아올 것이다. 심지어 운이 좋다면, 누군가에게 큰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는 행복한 경험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장병훈 시인이 내 삶에 해낸 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