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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nie Nov 07. 2021

누군가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린다는 것

작업실 안에서만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앞서 발행한 브런치북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




앞서 말했던 N잡 중에서 '강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높다. 공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맡아주고 있다. 정기적으로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월세를 밀리지 않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보통 공방 안에서는 일주일간의 시간표를 미리 짜두고 수업을 진행했다. 그림 수업과 천연비누를 만드는 수업은 동시에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두 가지 수업이기 때문에 일은 두 배로 하고, 수강생이 적을 때는 체력이 금방 고갈되는 힘든 날도 찾아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수업 들을 홍보해야 하는 것인데, 매일매일 SNS를 운영하는 것이 때로는 벅차기도 했다.


그렇게 눈앞에 주어진 것만 하는 데에도 지쳤을 때 출강 제의가 들어왔다. 공방을 오픈할 때만 해도 이 안에서만 돈을 버는 것인 줄 알았는데, 외부 활동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설레었다. 게다가 새로운 공간에서 내 일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보통 출강은 백화점이나 마트의 문화센터, 도서관의 문화 프로그램 등에서 진행했다. 내 경우에는 SNS를 통해 연락이 왔지만 해당 업체에 직접적으로 이력서를 넣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오픈하고자 하는 수업의 종류가 출강 장소에서 기획한 것과 잘 맞으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외부에서 하는 출강은 어떤 점이 좋을까?

가장 크게 다가온 장점은 '이력'이 쌓인다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마트 등은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대형 기관이기 때문에 이력서에 기록을 남기기 좋다. 그런 이력은 다음에 찾아올 강의 제안에 유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외부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대부분 수강인원이 가득 차 대기인원까지 있었다. 문화센터 수강생분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저렴하게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접근이 쉽다. 작업실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내게는 또 다른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했다. 양쪽 모두 좋은 결과를 안겨주니 서로 윈-윈이다!



모든 게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그림을 그리면서 천연비누를 만드는 내게는 두 가지 강의 제안이 동시에 들어오곤 했다. 예를 들면, 월요일에는 그림 수업, 수요일에는 천연 제품 제작 관련 수업의 일정이 잡혔다.


그림 수업은 첫날 재료들을 나눠드리면 나머지 수업 시간에 짐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천연 제품을 만드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준비물이 필요해 가는 길부터 애를 먹었다. 차가 없었던 나는 캐리어 두 개를 가득 채워 택시를 이용하는 일이 많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라면 재료를 들고 들어가는 것조차 큰 걸림돌이었다. 공방을 운영하는 것에 이동 수단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외부 수업이 잦아지면서 체력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차 사고 싶다!)


출강의 경우 강의료의 책정 기준이 업체마다 다르다. 수강료를 기준으로 수수료의 형태로 책정이 되는가 하면, 시간당 강사료로 강의료를 지급받을 수도 있다. 문화센터의 경우가 수수료로 수업을 진행하는 일이 많은데, 인원 모집이 더디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수업을 진행했던 이유는 내 경력과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였다.


비용적인 부분에서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계약된 기간 동안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그 동안은 최선을 다해 수업에 임해야 한다. 나름의 자영업을 하면서 아마추어로 남고 싶지도 않고, 다음의 기회를 기약한다면 말이다.



강의에도 성수기가 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방을 운영해 보니 언제 일이 바쁘고, 언제 쉴 수 있는지 패턴이 잡혔다. 경험상 봄, 가을에 공예 수업의 인기가 많았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관련 수업의 인기도가 높다. 이 사실에도 어떤 패턴이 있었는데, 여름과 겨울에는 아이들의 방학 때문에 엄마들이 취미활동을 즐기기가 쉽지 않으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봄, 가을의 강의가 만석률이 높았다.


반대로 완벽한 워라밸을 꿈꾸던 나에게는 이것도 좋은 소식으로 들렸다. 나는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만들어, 그 시기에 맞춰 1~2주 정도 휴가를 갈 수 있었다. 수입은 없지만 가족, 친구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나는 출강을 진행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분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을 듣고 각자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좋은 기억으로 매 학기 마나 따로 찾아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다만,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좋은 분들을 만나더라도 이 업무가 정말 맞지 않을 수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낯선 두려움과 부담이 있어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수강생 인원은 6명~20명 내외로 다양하다.) 약 2시간의 강의를 위해 며칠 동안 수업내용을 입에 배도록 연습하기도 했다. 강의에 나가면 모두가 나를 '선생님'으로 불러주시기 때문에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


만약 스스로 강의 업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내가 만든 작품을 판매하거나 다른 콘텐츠를 이용해 수입을 올리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사람들을 대면하지 않고도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강의를 진행했던 이유는 수입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내 시간을 들여 당장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컸다. (공방 월세는 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매번 설문지를 받았는데 남겨주신 응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불을 지폈다. 커다란 부담감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반복되더라도 이런 경험들이 다음 한 걸음을 내달 수 있게 해주었다. 참으로 감사하고 따뜻한 시간들이었다.






이메일 slonie@naver.com

인스타그램 @workroom921 / @by_slo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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