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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Sep 11. 2020

내게는 너무 멀고도 험한 - 운전면허의 길 2

기능시험, 실패의 쓴 맛 - 나쁜 완벽주의는 피해망상으로 이어진다


학과 이수, 필기시험 같은 책상 놀음을 마치고 드디어 운전대를 직접 잡아 볼 시간이 왔다. 4시간의 기능 교육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학원 부지 안에 조그맣게 조성된 운전 코스에서 수강생들은 언덕길도 넘어보고 신호도 건너보고 주차도 했다가 속도도 높여본다. 학원 등록 전부터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강사님들에 대한 각종 괴담들도 다행히 나에겐 큰 해당사항이 없었다. 말수가 정말 많고 입이 거친 강사님이 한 분 계시긴 했는데, 운전할 때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만 빼면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사님들은 내가 언덕만 잘 넘어도, 차선만 지켜도 잘한다고 치켜세워주셨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간단히 칭찬받은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또 몸을 움직여서 칭찬받은 건 얼마만인지!


‘그래. 내가 카트라이더에서는 한 번도 이긴 적이 없고, 범퍼카 타고 혼자 벽에 박는 바보라도... 의외로 운전에는 소질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있을지도 모르는 소질을 발견하기엔 교육 4시간은 너무 짧았고, 무엇보다 주차가 너무 어려웠다. 공식대로만 하면 된다는데 그 공식이 왜 할 때마다 자꾸 달라지는지, 선생님마다 설명은 왜 다 다른지,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수도 없이 떠서 가족, 친구들한테 물어도 보고 자료도 찾아보는데 또 그 답변들도 전부 다 천차만별이다. 또 다들 ‘사실 감으로 하는 거지’라는 뒷말을 붙여버리는데 그 ‘감’이 잡힐 리가 있나.


수업을 받는 동안에는 조수석에 탄 강사님들이 다만 한 두 마디라도 거들어주니 어찌어찌 방향을 수정해가며 문제없이 주차를 해냈지만, 문제는 시험이었다. 내게는 아직도 전설의 동물처럼 여겨지는 ‘주차 감’이라는 것을 전혀 잡지 못한 채, 온갖 스승들에게 얻어 온 공식을 짬뽕시켜 어떻게든 주차 공간으로 차 엉덩이를 한 번에 밀어 넣기 위해 필사의 힘을 다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물 흐르듯 화단을 타고 올라가는 바람에 현장에 서서 지켜보던 시험관들에게 저지(?)당하고 대기실로 연행됐다. 수치스러움과 무더위로 얼굴은 시뻘게지고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그렇게 나는 기능시험에서 한 차례 낙방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기능 시험 합격률이 3-40퍼센트 대라는 공식 자료가 무색하게도 내 주변에는 한 번에 붙은 것은 물론 100점으로 통과한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한 번 떨어지고서부터 뒤늦게 참고하고자 찾아본 여러 ‘기능 시험 꿀팁’ 영상 댓글에는 나처럼 재수합격, 삼수합격을 노리는 동지들이 와글와글 많았지만, 그 동지들에게 ‘그 정도 감도 없으면 운전하지 말라’고 공격하는 글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사실 아무런 가치도, 근거도 없는 말들이라는 것, 그저 상대방을 밟는 방식으로 자신의 우월감 혹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단순한 말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약해진 마음이 다치기엔 충분한 말들이기도 했다. 내가 어쩌면 심각하게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한 번의 실패를 겪었던 이 시점부터 현재까지, 운전을 배우면서 내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겪어 온 학문, 배움의 과정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못하면 남들에게 말도 안 되는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 내 생명은 물론 나의 동승자, 생판 모르는 남의 생명까지 걸려있다는 것. 그래서 여기저기 난무하는 그 원색적인 비난들이 큰 필터링 없이 마음에 와 닿아 생채기를 낼 수 있었다.


한쪽에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면서 한쪽에서는 ‘소질이 없으면 시작도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치부되는 것.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처음부터 완벽히 잘 해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천천히 배워나가면 되지 뭐’라고 편히 마음먹고 제대로 차근차근 배우면 되는 일인 것을.


내 안의 완벽주의는 피해망상으로 곧잘 이어져버린다는 것을, 나는 운전을 통해 알게 되었다.


머릿속이 쓸데없는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지 않도록 막아야만 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스스로에게 반드시 있다고 믿어줘야 했다. 그리고 일단 행동해야 했다. 몸과 마음속의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서 다음 시험 날짜를 잡고, 왜 실패한 건지 계속 생각했다. 처음에는 죽었다 깨나도 이유를 모르겠던 게 신기하게도 계속 복기하다 보니 알 것도 같았다. 또, 실패의 이유를 굳이 찾지 않더라도 성공 방법을 새로 찾아내면 됐다. 두 번째 시험날이 다가왔고, 첫 번째 시험과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이 밀려왔다. 세상에. 입사 이래 이렇게 떨어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게다가 실패의 기억은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멋모르고 차에 올랐던 첫 번째와는 다르게 두 번째의 나는 ‘불합격입니다’ 그 멘트의 맛을 알고 있었다.


통제실에서 내 이름이 불리고, 나는 샛노란 시험 차량에 몸을 실었다. 첫 시험에서도 그랬듯이 초반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타는 듯한 더위와 쨍한 햇볕 탓에 정신은 혼미해졌으나 큰 어려움 없이 마의 T자 주차 존까지 진입했다. 최대한 왼쪽으로 차체를 붙이며 진입하고, 핸들을 살짝 돌려 직진했다가, 반대 방향으로 완전히 꺾어서 차 엉덩이를 주차장에 부드럽게 밀어 넣는... 그 순간. ‘탈선입니다’ 멘트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등골이 서늘했다. 사이드미러를 확인해보니 도저히 이대로는 각이 안 나오는 상황. 그렇다고 각도를 수정할 줄 아느냐 하면... 그런 고급 기술 따위 전혀 알지 못했다. ‘망했다’ 생각이 든 순간부터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전진 후진만 반복했다. 뒤이어 ‘점수 미달 불합격입니다’ 멘트가 울려 퍼지고, 나는 전과 같이 주변에 서 있던 시험관에게 운전석을 내주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운전석에 앉은 시험관은 다름 아닌 수다스러웠던 그 강사님이었다. 강사님은 신기하게도 대번에 마스크까지 낀 내 얼굴을 알아보았고, ‘연습 땐 잘만 하더니 왜 그러냐’는 핀잔과 함께 ‘사선으로 조금 더 들어간 다음에 후진을 시작했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어차피 선 한 번 밟아도 안 떨어진다’, ‘보니까 대충 해도 주차 존만 빠져나오면 붙겠구먼...’, ‘몇 번씩 떨어지는 사람들 수두룩하다’, ‘다음에 잘하면 된다’ 등의 선한 사족을 잔뜩 붙이셨다. 30초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말이다. 교육 시간에 내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었던 그 사족들은, 그 순간 나에게는 꼭 필요한 영양분으로 다가왔다. 기분 나쁜 데자뷔를 겪으며, 나는 다시 다음 시험을 예약하고 정확히 일주일 뒤 다시 대기실 의자에 앉았다.


나는 불편하고 조그만 의자에 몸을 쪼그리고 앉아서 ‘이렇게 영원히 되풀이되는 건 아닐까...’, ‘그럼 이 학원에 한 달에 10만 원씩 꼬박꼬박 내게 되는 건가?’ 같은 쓸모없는 생각과 동시에 ‘필라테스 학원 반값 정도네...’, ‘그냥 노랑 차 드라이빙하는 게임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와 같은 밑도 끝도 없는 긍정적이고도 자조적인 생각도 해보았다. 세 번째 시험날 역시 찌는 듯이 더웠고 마스크 안에 계속 습기가 차서 불쾌했다. 곧이어 이름이 불리고, 나는 다시 노란 차에 올랐다. 의자를 조정하고, 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고, 언덕을 오르고, 신호를 건너고 하는 일들을 다시 차곡차곡 해냈다. 그리고 드디어 공포의 주차 코스. 말 많은 강사님의 사족들을 곱씹으며 차분하게 핸들을 꺾고 전진 후진을 반복했다. 결과는 허무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영원히 기능시험만 볼 거라는 공포가 무색하리만큼 간단히 주차를 마치고, 주차 코스를 빠져나와 나머지 코스를 감점 없이 완주했다.


‘불합격입니다’ 소리가 심장을 조였던 그만큼, ‘합격입니다’ 소리는 짜릿한 쾌감이 있었다. 한 번에 합격한 숱한 사람들은 아마 느껴보지 못했을 감정.(사실 굳이 느낄 필요가 없는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합격’은 나에겐 그간 살아오면서 받아 든 여러 가지 ‘합격’들 사이에서 꽤나 높은 순위에 올랐다. 이제는 정말 도로로 나갈 차례! 합격의 기쁨이 끝나기가 무섭게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그 기쁨을 갈아치웠지만, 그래도 한 걸음 내디뎠다는 성취감에 마음이 한결 몽실몽실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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