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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May 13. 2021

애 낳으려고 나랑 결혼해?

이번생에 결혼은 처음이라 - 2 -

결혼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출산 생각을 진지하게 해봤을리가 만무했다.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최대한 잘, 편하게,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 나에게 출산은 결혼과는 또다른 클래스의 패널티로 느껴진 것도 당연했다. 아이가 주는 행복? 벅참? 인생의 의미? 그런 것들 역시 당시의 나에게는 손에 쉬이 잡히지 않는 동화같은 것일 뿐이었다.


반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B에게 딩크(Double Income No Kid)란 선택지에도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내 주변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여자 친구들도 많고 딩크나 비혼을 꿈꾸는 남자 친구들도 있으니 이걸 단순히 남녀차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싶지는 않다. 남자이기때문에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니 경력 단절이니(이 부분은 참 불공평하지만) 그런 것들을 여자들 만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정상적인 부부라면 책임감과 희생은 똑같이 나눠가져야 하는 것이니까. 어디까지나 가치관의 차이였던 것이다.



"나는 결혼은 하더라도 애는 안 낳고 싶어."



그러니 나의 무심한 그 한 마디가 그에게는 얼마나 청천벽력이었을지.



"근데 우리 둘 닮은 애기가 있으면 진짜 이쁘긴 하겠다, 그치?"



이 무심한 한 마디는 그에게 어쩌면 동앗줄이었을지.

다행히 내가 던진 그 동앗줄은 썩은 동앗줄은 아니었다. 그 시기 즈음 나는 자궁내막증을 진단 받게 되었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난임이나 불임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사람이 참 간사해서, 낳을 생각도 없었는데 못 낳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니 겁이 덜컥 났다. '줬다 뺏는 게 어딨어요!'

게다가 우리의 관계가 진전되고, 몇 차례의 강렬한 싸움 끝에 나는 그의 의중까지 알게 되었다.



"너를 속이는 건 더 나쁜 일이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네가 아이 생각이 없으면 결혼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세상에.

내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를 못견디게 사랑해서 결혼을 약속하는 마당에, 있지도 않은 애 때문에 결혼을 다시 생각한다니!

사실 참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였는데 그 때는 그게 얼마나 서운하던지. 심지어는 그냥 좋은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가 되어줄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것 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생각이 복잡해졌다.

답 없는 로맨티스트였던 나는 결혼은 사랑에 눈이 멀어 결정하는 것이고, 아이는 사랑이 더 커져 이성이 마비되면 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면 나는 사랑이 먼저였으니까. 내 사전에는 아직 결혼도, 아이도 등재된 게 없었으니까. 왜 그 때는 모든 걸 미쳐야 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했을까? 다 희생이고 모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결혼은 상당히 이성적으로 끌고가야 완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데 말이다.


모든 상황이 나를 실체도 없는 내 미래의 아이 앞으로 데려갔다. B가 아니라면 한없이 미뤄뒀을 고민, 갑작스러운 수술이 아니었더라면 "애 낳으라고 나랑 결혼하냐!"는 막돼먹은 자존심부터 앞세워 엎어버렸을지 모르는 고민이었다. 한 친구는 내 이런 고민을 들으며 농담 반 위로 반, 내가 '영웅을 낳을 팔자'라는 말을 건넸다. 


무엇보다 정말 나는 B가 좋았다. 내가 혹여 서운해하더라도 나와 본인을 속이고 싶어하진 않는 B가 이해가 되었다. B 이전의 나였다면 무조건 자존심부터 앞세웠을텐데, 부단히 B를 변호해주고 있는 내 마음도 싫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어떻게든 되겠지'를 삶의 태도로 가진 나는 묘하게 B의 보수적인 태도에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답 없는 나를 잡아주기를 은연 중에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에게 B보다 좋은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그 때의 내 마음이 그랬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도 B 때문에 억지로 아이 결심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B의 탓이나 아이의 탓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만큼 최악인 결정은 없으니까 말이다. 내 의지여야 했고, 내 선택이어야 했다. 결정을 한다면 그 이후엔 그 누구의 탓도 하지 않게 완벽히 스스로를 설득해내야 했다.


그렇게 내 생에 첫 저울질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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