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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May 22. 2024

늦은 저녁식사를 먹는 이곳

7시 이전에 저녁을 먹지 않는 이탈리아 사람들

이탈리아에 와서 놀라웠던 사실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내 삶의 패턴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저녁식사가 매우 늦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생 관리를 하며 살고 그러다 보니 ‘일찍’ ‘소식’을 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국룰같이 되어버렸다. 간헐적 단식을 이른 저녁부터 하는 사람들은 오후 5시에 간단히 먹고 일찍 잠든다. 듣기만 해도 건강한 삶 같다.


그러나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지역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의 한 도시인 베로나에 사는 사람들은 늦게 먹는다.

로컬들을 알지 못하는 이곳에 산 지 고작 3주 된 외국인인 나도 그들이 몇 시에 저녁을 먹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로 레스토랑의 영업시간 때문이다.


이곳의 레스토랑의 저녁 타임 오픈 시간은 대부분 7시에서 7시 반이다. 내가 본 곳은 7시 반이 제일 많았다. 그러면 그전의 시간은? 점심 장사를 하고 아주 긴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보통 점심은 3시 정도에 영업을 끝내서 무려 4시간이 넘는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7시 반 전에 배가 고프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 열지를 않는다!


나의 유일한 현지 소식통인 로컬들과 일하는 남편에게 물으니 여기 사람들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간혹 씻기도 하고 치장을 한 후에 저녁식사를 하러 간다고 한다. 시간 계산을 해보면 퇴근이 5:30~6시 정도라고 하면 집에 가서 다시 리프레시하고 옷 입고 나오는 사람은 7시 반 정도면 집 근처 레스토랑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겠구나 했다.


그런데 또 놀라웠던 사실은 이들은 저녁 약속이 있는 레스토랑에 도착하기 바로 전에 미리 술도 팔고 커피도 파는 근처 카페(Caffe)에서 먼저 만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 그렇진 않겠지만 이렇게 카페에서 만나서 커피 한 잔이든 아페롤 같은 식전주를 하면서 약간의 허기를 때우고 레스토랑에 함께 들어가는 게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 2024년 5월 현재기준, 이탈리아인들의 식전주 문화인 아페르티보를 마시는 문화는 매우 일상적이며 오후 7시에 식사하러 가기 전 카페에 앉아 모두 주황색의 아페롤 스프리츠를 다들 마시고 있는 모습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내가 지금도 아이들에게 수도 없이 말하는 것이 ‘밥 먹기 전엔 간식 금지야’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미리 허기를 살짝 때우고 식사를 하러 간다니!!!!




남편과 추론해 본 결과,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식사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 먹기 이상의 사회적 역할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오랫동안 존재해서 그냥 삶이 되어버린 그들만의 식사 문화가 아닐까 한다 (이 부분은 더 알아보고 싶다). 필요한 영양소를 채워야만 한다면 이렇게 비효율 적으로 시간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일을 하던, 학생이던, 아이를 키우던 낮에 다른 사람들과 부대 끼며 일한 사람들은 저녁 이후엔 혼자만의 시간 아니면 가족들과의 조촐한 시간을 간절히 원할 터인데 이렇게 늦게 먹으면 언제 집에 와서 언제 씻고, 쉬고 잔다는 것일까? [2024년 5월 기준: 이탈리아인들 천성이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처럼 간절히 혼자 있는 시간을 원하는 사람은 식사 시간을 제외한 다른 시간을 따로 혼자만의 시간으로 보내지 않을까 한다. 식사는 함께 떠들고 마시는 게 그들의 문화니까!]


자연스럽게 그들이 잠에 드는 시간도 궁금해진다. 특히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의 취침시간이 궁금하다. 왜냐하면 레스토랑에서 많은 경우 저녁식사에 아이들이 동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 막내처럼 유모차 타는 아기들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어느 금요일 밤 남편과 시내를 산책했을 때 9시가 넘었음에도 우리 집 큰 아이들(9세, 11세)보다도 어린아이들이 부모님의 식사에 함께 하고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미국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숏폼 영상으로 미리 알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어른들의 저녁식사를 위해 내니를 고용해서 아이를 집에 두고 재우게 하는 것과 달리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이들을 동행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미국인 아이들보다 적게 잔다는 것인가? 아니면 늦게 자는 것을 상쇄하기 위해 미국인 아이들보다 더 늦게 일어날까? 아니면… 이탈리아인이 유럽인 중에 체구가 조금 작은 게 혹시 잠을 적게 자서..? 등 나 혼자만의 황당무계한 가설도 세워보게 된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적게 자면 안 되는 치명적인 이유들을 수도 없이 들으며 살아왔다. 나조차도 아이에게 ‘너 안 자면 키 안 커서 나중에 후회한다~’ ‘성장호르몬이 나오는 10시 전에는 무조건 자야 해’ 하며 협박 아닌 협박으로 재운 나의 모습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갔다. 밤에 자기 싫어하는 둘째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이탈리아 아이들의 총 수면 시간과 잠에 드는 시간은 꼭 알아봐야겠다. [우리 집 앞에 공원에서 열린 행사들을 관찰해 보면 이들은 12시 전까지 열정적으로 놀고 같이 동행한 어린아이들도 늦게까지 밖에 있는다. 10시쯤 나가보니 우리 8개월 막내보다도 어린 아기를 서서 모유수유하고 있는 엄마도 보았다]


늦게 저녁을 먹는 것과 또 자연스레 연관되는 것은 체중 증가이다. 나는 늦게 먹으면 살찐다는 나름의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들을 보고 그것은 아님을 확인했다. 이들의 대체적인 체형을 보고 난 후에는. 나는 미국에서 11년 정도 살았기에 미국인들의 표 체형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좀 극단적인 체형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내가 살던 곳이 뉴욕이라 더 그럴 수도 있다. 모델같이 아주 깡마르고 시크하게 예쁜 여자들 – 베이글의 탄수화물이 걱정되어 속을 다 파내어 먹는 여자들과 같은- 을 종종 볼 수 있다. 워낙 화려한 도시라 화려한 사람들이 많긴 하다. 그러나 다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으로 ‘비만’이라고 판명할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러나 3주를 지내본 결과, 내가 사는 동네의 이탈리안들은 마름과 비만의 스케일로 보자면 중간에서 약간 마름 쪽으로 치우친다. 그 뜻은 대부분 적당히 날씬한 체형이라는 것이다. 간혹 가다가 좀 덩치가 크고 배 쪽에 지방이 많은 아저씨들을 보긴 했는데 그들은 소수이다. 동물들도 날씬해 보인다. 엄마와 길을 걸으며 ‘심지어 여긴 개도 날씬하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남편과 엄마와 추론해 본 결과 패스트푸드보다 제대로 된 양질의 식사를 좋아하는 이들의 식단 자체가 살이 많이 찌지 않으며 또 오랫동안 식사하면서 수다를 떨기 때문에 (이탈리안들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먹으면서 대부분의 칼로리가 다 소비되는 게 아닐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식사 전에 만나 카페에서 허기를 때우기 특징이 저녁식사 때 허겁지겁 급하게 먹는 것을 막고 오감으로 음미하며 식사를 하도록 돕기 때문에 살이 덜 찌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무엇이 되었든 늦게 먹는 것이 체중 증가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들의 삶을 통해 증명되었다. 먹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살면서 그들의 식습관을 더 관찰해 보고 싶다.


이곳에 오니 확실히 한국보다 좀 더 느슨하게 살아도 되겠다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느낀다. 그러나 아직은 나는 너무나 뼛속까지 한국인 (약 8%는 아메리칸일까?)에, 이탈리안과의 사회적 교류도 없기 때문에 내 집이라는 나의 공간 안에서는 매우 한국인같이 살고 있다. 그래도 기왕 살아보는 거 이들의 삶의 방식에 몸을 맡기고 그들같이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좋은 방식은 내 삶에도 채택해서 살고 싶다.


pizzium 이라는 체인 피자집도 7시에 저녁식사가 오픈한다



*본 글은 제가 매주 쓰고 있는 이메일 베이스의 라이프살롱 매거진​에 Italy Essay로 2월 16일에 작성한글을 현재 알게 된 사실들을 덧붙여(파란 폰트) 올린 글입니다.


*본 글을 썼던 2024년 2월은 제가 이탈리아에 온 지 1달 정도 되었을 때 쓴 글이고 현재 거주 4개월 차가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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