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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Jan 17. 2024

Caffe Americano

동네 카페 하나를 만났다.

동네 카페 하나를 만났다.

동네에 아는 사람은 없지만 왠지 친구 한 명 알아둔 느낌이랄까.


아디제 강을 왼쪽에 끼고 약 10분 정도 걷다 보면 나오는 카페로 Gelateria Caffetteria Renon이라는 카페다.


처음 이 카페에 들어가게 된 건 아이들의 젤라또 때문이었다. 할 일도 없고 장도 볼 겸 아기 솔이를 낮잠 재우기 위해 오후에 한 번씩은 나오는데 벌써 컸다고 두 아들들은 안 나갈 궁리를 찾는다. 그런 아이들에게 ‘같이 나가면 젤라또 사줄게’라고 꼬셨다.


이번에는 그 방법이 먹혔고 두 아이들이 따라나가 친정엄마, 나, 유모차에 탄 아기, 아들 둘까지 다섯 명이 산책을 나섰다.


젤라또 맛집이라고 들어가는데 바로 느낌이 왔다.

‘이곳이다!’ ‘내가 좋아할 카페로구나’


젤라또 맛집도 맞는게 아이들도 주말에 간 관광지 시르미오네의 젤라또보다 맛있다고 했다


아직은 에스프레소가 익숙하지 않아서 물을 타서 마시는 아메리카노 - (맞다. 여기도 아메리카노라고 말한다. 카페 아메리카노. Caffe Americano) 이걸 마신다.


엄마도 함께 같은 걸로 시켰다. 작은 케이크 하나와.  


일주일 동안 산 이탈리아에서 지금까지 커피를 세 번 나가서 사 마셨는데 한 번은 시험 삼아 이케아에서 카푸치노를 마셨고 시르미오네에서는 뜨거운 물을 타서 카페 아메리카노를 줬다면 이곳 레논 카페에서는 에스프레소를 조금 큰 컵에 주고 뜨거운 물을 따로 줬다.


적당히 원하는 만큼 희석할 수 있어서 난 꽤 좋았다.

그런데 아주 뜨겁지 않아서 이야기하면서 마시니 금방 식었다.

이건 나보다 열흘 더 이태리아 산 남편이 한 말인데 이탈리아는 바로 마실 수 있는 온도의 커피를 내어준다고 했다.  


막내가 깨서 분유를 타서 우유를 먹였고 두 아이들은 할머니 핸드폰을 가지고 뭔가를 했다.


나는 남은 커피가 차가워질까 봐 우유를 먹이는 도중에 엄마에게 내 커피를 먹여달라고 했다. 누가 봤으면 삼 대의 모녀가 서로가 서로를 먹여주고 있는 재밌는 광경이었을 거다.


해가 중간중간 들어오는데 눈부셔서 짜증난다기보다는 구름 사이로 빼꼼 나온 햇살 샤워받은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이태리 베이비 - 솔. 오후 햇살에 선글라스 쓰고 우유마시다


솔이에게 우유를 먹이며 사람들을 관찰해 보니 미국이나 한국처럼 카페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만약 한국에 이런 카페가 있었다면 분명 분위기 좋은 카페로 사람들이 득실득실하고 나마저도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서 일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없다.

옆 테이블의 두 부부도 아이스크림으로 된 후식을 먹고는 바로 떠났다. 한 남자는 커피 하나 시키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한 아저씨는 커피를 시키고 나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커피는 커피. 일은 일인가?

아니면 이곳 동네가 이런 걸까?  

커피가 뜨겁게 나오지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같이 계속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아니기에 커피만 마시는 목적을 달성하고 나가는 걸까?

일주일차 산 나는 이런저런 궁금함이 생겼다.

남편에게 회사 가서 현지인에게 물어봐달라고 했는데 답이 궁금해진다.


와서 일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가 아니라는 것에 살짝 실망을 한 것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 불안감을 잠시 누그려 뜨려 주기도 했다.


왜 시간만 나면 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왜 그게 default가 되었지?

커피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왜 나에게 허락할 생각을 하지 못할까?

커피만 마시며 생각하고 창밖을 보는 게 노력해야 하는 게 됐을까?


항상 노트북을 휴대하고 시간 날 때마다 꺼내서 뭔가를 해야 안정을 하던(?) 나를 여기 이탈리아에서 다시 돌아본다.  


카페 아메리카노 2.40유로, 젤라토 1.60 유로, 케이크 한 조각 6유로. 총 14유로로 다섯명이 기분 좋은 휴식을 가졌다. 마지막에 계산해야 할 금액을 이탈리아로 못 알아 들어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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