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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Oct 31. 2023

내 인생의 축소판 모유수유

바른 엄마. 바른 사람 콤플렉스  

   문뜩 모유수유가 내 인생에서 마주했던 문제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내 인생을 항상 따라다녔던 '바른 사람 콤플렉스'가 모유수유와 굉장히 닮았다.


   이를 설명하려면 제대로 쉬지 못하는 성격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부터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것이 끝날 때까지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꼈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 시험 기간 때, 난 정신적으로 집중이 되지 않아도 신체적으로라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집중 안되니까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좀 놀다 들어와서 빡세게 공부하자' 하는 맘 편한 소리를 하는 구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의 꼬임에 몇 번 넘어갔지만 결국 가서도 안절부절못함에 '차라리도서관에 있을걸' 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더 화나는 것은 시험을 봐보면 그 맘 편한 구 남자 친구, 즉 현 남편과 내 점수는 비슷했다 (부글부글).


   모유수유를 잘하고 아기와 교감을 하고 사랑으로 아기를 키우는 이미지는 여러모로 '바른 엄마'의 표본으로 느껴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지금도 하루에 두어 번은 모유수유를 하는데 두어 번밖에 안돼서 그런지정말 그 시간에는 아기에 대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효율성이 샘솓는다. 내 가슴을 손으로 감싼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고 보드라운 발을 종종 만지고 사랑스러운 말도 건넨다. 그 과정에서 비싼 분유도 안 들이고 고퀄 영양의 모유를 건넨다. 아기는 평온하게 쌕쌕 먹는다. 이렇게 아기를 키운다면 내가 생각하는 바른 엄마의 표본에 꼭 들어맞는다. 꼭 그래야만 바른 엄마는 아니라는 것은 안다. 시험을 잘 봐야 좋은 학생이 아닌 것처럼. 그러나 나는 내가 생각하는 (아니면 사회가 말하는) 바른 사람의 표본에 나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괴로움으로 가득 차게 하는 저주를 받은 것 같다.


모유수유 할때 보이는 네 목 :)




   산후조리원에서 나와서 산후도우미님이 오시고 나면서 내가 방에서 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수유텀을 놓치기 시작했다. 아기의 엄청난 먹성 때문에 분유 보충을 슬슬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젖량은 줄어들었다. 분명히 출산 전에는 굉장히 쿨하게 '모유가 안 나오면 그냥 분유수유 할 것이다'라고 선언했으면서 이제와선 또 모유를 많이 못 먹이게 되었다고 마음이 괴롭다. 그런데 그렇다고 또 엄청 열심히 완모를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한 사실이다. 이쯤이면 그냥 맘 편히 완분을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방에서 쉬는 동안 나 대신 산후도우미님께서 분유를 주실 때 '내 팔자 참 좋다' 하고 편하게 자고 쉬어도 될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 때 시험공부 집중 안돼도 엉덩이는 붙이고 있었던 그때처럼 노력하지 않고 방에서 쉬고 있는 내 모습에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좀 노력했으면 완모 했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지금 내가 저 아기한테 모유를 주고 있겠지?'

'힘은 들겠지만 마음은 지금보단 편하지 않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정말 내 머리는 한시를 멈추지 않고 재잘거린다.


   이러다가 어느날 누군가가 모유수유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날이면 이 죄책감은 두 배 더 증폭한다. 며칠 전 소아과에서 의사 선생님이 모유수유를 하냐고 물으셨다.


나: "아 분유랑 혼합해요."

의사 선생님: "왜요?"

나: "젖량이 적어서요"

의사 선생님: "(살짝 웃으시면서) 지금 적으면 나중엔 어떻게 (양을) 맞추려고요? 많이 물려야 양이 늘어요."


   어쩌면 소아청소년과학회 같은 데서 모유수유 권장 코멘트를 하라고 교육을 받으셨는지 모르겠다만 모유수유 안 하는 엄마들, 아니면 못하는 엄마들, 아니면 나처럼 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엄마들에겐 그다지 편하지 않은 말이다. 우리도 물릴수록 양이 는다는 것도 알고 모유수유가 좋은 건 너무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모유수유가 좋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엄마의 삶도 중요하다'라는 구절을 <프랑스 아이처럼> 책에서 읽고 크게 감명받았다. 좋다는 건 다 안다. 그러나 모유수유를 하지 않고 분유 수유를 해서 엄마의 삶이 조금이라도 편하다면, 행복하다면 그 모유수유를 안 하기로 한 결정도 그만큼 가치 있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었다.


   아마도 지금 같은 추세라면 나도 곧 혼합수유에서 완전 분유로 기울게 될 것이다. 나에겐 이 죄책감을 누그러트리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시간에 나는 일을 더 해야지' '운동을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는데 확실히 밤에 잠을 잘 못자서 그런지 그럴 힘은 나지 않는다. 아마 최근의 죄책감은 이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바른 엄마. 바른 사람 콤플렉스 따윈 없이 방에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큰 아이들이 잘 왔는지도 확인 못할정도로 깊은 잠에 푹 빠지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아주 작은 소리만 나도 벌떡벌떡 깬다.


매번 좀 방탕하게 사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이번 생은 그렇게 살기엔 글른 것 같다.

그러나 마음 한켠은 좀 더 자유로운 방탕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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