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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 농장에서 마르게리타 한 판

피자 만들기 수업에서의 이야기들

by 지나

이번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위해 소렌토에 있는 숙소에묵었다. 오후 5시면 해가 져서 저녁 시간 때 좀 무료하기도 해서 인근 농장에서 피자 만드는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오늘 나의 동행자는 넷플릭스에서 흑백요리사를 보고, 이번엔 커서 요리사가 되겠다는 11살 둘째이다.


이 수업의 시작은 픽업이다. 소렌토 시내로 농장 차가 픽업을 온다. 차가 없는 사람들에게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그 밴을 타고 가보니 이곳은 자차로 절대 없는 곳이었다. 우리가 농장으로 간 시간은 오후 6시로 이미 컴컴해진 시간이었는데 처음엔 산 위로 올라가는 것 같다가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비포장도로로 들어갔다. 차가 들썩들썩 움직일 정도로 고르지 않은 길이었는데 운전을 하신 농장주인아저씨는 '이래서 내가 픽업을 합니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단순히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운전을 떠나 오프로드의 길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이곳에 절대 운전해 올 수 없다. 이렇게 접근성 떨어지는 농장은 이러한 피자 만들기 프로그램으로 고객들을 '모시고 오는' 시스템을 장착한 것이다. 내가 다녀온 11월 주말 기준, 이 농장은 피자 만들기 클래스를 매일 3회씩 운영하고 있었다. 농장주는 운전을 하면서 나 라면 초면에 절대 묻지 않을 많은 것들을 물어서 나는 같은 수업을 들을 사람들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들의 가족구성이 어떻게 되는지까지 다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온 다섯 명의 가족이었고 우리 막내보다도 어린 딸이 있었다. 미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 참 반갑다. 내 마흔몇 년의 삶에서 한국 다음으로 오래 살았던 곳. 그곳에서는 내가 이방인이었지만 여기서 이태리에서 만난 그들은 나와 같이 이방인이다.





그렇게 도착한 농장은 예상했던 대로 너무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 개의 가로등과 조명이 농장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피자를 만드는 키친으로 들어갔다. 농장주는 우리에게 농장에서 직접 만든 주스와 화장실을 안내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농장주인의 딸이 나타났다.


까만 머리를 위로 높이 묶고 나온 그녀의 딸은 18살의 소녀였다. 목소리에 박력이 있었고 말투에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 클래스를 상당히 많이 해본 경험에서 나오는, 거의 자동에 가까운 대사로 피자 만들기를 가르쳐주었다. 이곳에서 피자를 만들게 되면서 처음으로 맥주로 만든 이스트를 보았다. 그녀는 이태리 피자는 이 맥주로 만든 이스트가 최고라고 했다. 내가 여태껏 봤던 이스트는 모두 가루였는데 이것은 마치 초콜릿 조각 같았다. 이것을 작게 자른 조각 하나를 밀가루(type 00) 반죽에 넣으면 되었다. 소녀는 도우의 숙성시간 때문에 우리가 만드는 반죽으로 오늘 먹을 피자를 만들 수는 없으며, 우리가 지금 만드는 반죽은 농장의 동물들이 먹게 될 것이라고 했다.


8개 피자를 만들기 위한 레시피. 맨 밑의 a lot of love에 주목


이 소녀의 역할은 피자 만드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감각으로 사진도 상당히 많이 찍어주었다. 관광객에게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어주는 것은 항상 땡큐다. 특히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도우를 피자모양으로 동그랗게 펼쳐 허공 위로 던져 다시 받는 퍼포먼스를 시도할 때 소녀는 휴대폰을 앞 뒤로 움직이며 동시에 응원도 해주며 생동감 있는 영상을 찍어주었다. 우리는 피자 중에서 가장 간단한 마르게리타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이 농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토마토소스도 농장에서 나온 토마토로 만들었고 모차렐라 치즈는 농장의 젖소에게서 나온 치즈로 자신의 엄마가 오늘 아침에 만든 것이라고 했다. 미리 만들어진 도우 위에 토마토소스,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올리브유를 살짝 뿌리면 이 피자 만들기는 끝이다.


피자를 화덕에 구울 때가 되니 소녀의 부모님, 즉 농장주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나타나는 타이밍이나 자신의 몫을 매끄럽게 해내는 모습을 보며 이 프로그램이 수백 차례 진행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화덕에서 굽는 시간은 1분 정도이다. 옆에서 물으니 화덕이 아니라면 오븐을 최대 온도로 올리고 10, 15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피자 도우를 만지느라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었던 손을 닦고 오니 테이블의 세팅이 끝났다. 각자 마르게리타 한 판에, 농장에서 나온 레드와인이 유리병에 담겨 있었고 아이들을 위한 생과일주스도 함께 있었다. 함께 수업을 들은 미국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을 마시며 먹고 있는데 수업 중간에 보였던 까만 고양이가 다시 나타났다. 우리가 뭘 먹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조금 있다가 4개월 된 골든리트리버도 나타났다. 그다음에 이 집의 막내딸이자 늦둥이인 2살 딸이 또 다른 강아지와 함께 나타났다. 아이들과 동물들은 분위기를 더 즐겁게 만든다.


우리가 식사하는 중간에 소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해주었는데, 지금 사는 곳에서 멀리 대학을 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미국과는 달리 여기 이탈리아는 자신의 가족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그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여기 집에서 가까운 나폴리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었지만 대학에서 기필코 한 학기 정도는 미국의 보스턴 같은 곳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어보고 싶다고 하며 화덕을 정리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우리 아빠가 가게 해줘야 할 텐데!'라고 해서 우리를 웃게 했다. 미국가족의 한 분이 '한 학기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요? 딸을 보내줘요'라고 딸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딸을 옆에 두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은 딸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 에너지 넘치는 딸은 가족들과 패밀리 비즈니스를 하며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는 것에서 가끔은 벗어나는 것을 꿈꿀 것이란 생각이 든다.


피자를 다 먹으니 농장에서 직접 만든 살라미를 내어주고 이탈리아인들이 디저트로 마시는 리몬첼로가 나왔다. 제주도 하면 감귤이 떠오르듯이 소렌토는 레몬이다. 이곳의 레몬은 보통 레몬보다 크기가 더 크고 향이 상당히 짙다. 이 레몬껍질을 알코올에 우려서 만든 진한 술이 리몬첼로다. 소녀의 할머니가 만든 리몬첼로는 알코올 도수가 35도였는데 이날 처음으로 둘째에게 리몬첼로 한 입을 시도하게 해 주었다. 아이의 모습을 잘 관찰해 보았는데 기분이 업 되었는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를 닮았나 보다. 옆의 미국가족 아주머니에게 '아이가 술을 먹으니 요즘 통 안 추던 춤을 추네요'라고 했더니 아들을 쳐다보며 'boy. never stop dancing'이라고 하셨다.


아이야. 춤추는 것을 멈추지 마렴.




소녀는 마지막 이 훈훈한 분위기도 놓치지 않고 판매되는 농장의 제품을 설명해 주고 농장을 서포트할 수 있는 작은 모금통까지도 알려주었다. 나는 토마토소스를 샀고 미국 가족은 술을 샀다. 소녀의 아버지가 운전해 주는 돌아가는 밴 안에서 미국가족 아주머니는 우리 아들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나중에 진짜 우리 아들이 요리사가 되면 자신이 기억하고 싶다고. 아이들의 꿈은 수십 번, 수백 번 바뀐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름을 물어봐줘서 고마웠다.


나와 아들의 첫 피자만들기 at Sorrento, Italy


화덕 안에서 구워지는 아들과 나의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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