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캠핑장에서 저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사람은 수시로 제 사이트를 당당히 침범하는 사람, 매너타임이 지난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며 욕을 섞어 시끄럽게 대화하는 사람, 지난여름 샤워실에 있는 선풍기를 들고 한쪽 다리를 든 괴상한 자세로 당당히 꼬치를 말리고 있는 아조씨도 아닌 바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캠퍼분들입니다.
저는 평소 성욕(性慾), 물욕(物慾), 식욕(食慾) 그리고 쌍욕(시발) 이렇게 4가지 욕심이 없습니다. 물론 캠핑장에서도 평소와 같이 4가지 욕심을 버리며 자연 속에서 수련에 정진하는 수도승의 마음으로 캠핑에 임하는데, 그중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바로 식욕입니다.
"그럼 아저씨도 캠핑 갈 때 맛있는 것을 해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주로 아이와 둘이 다니기 때문에 아이 입맛에 맞거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인 맵거나 짜지 않은 저자극의 고지방 고단백 고칼로리 삼겹살만을 주로 먹는 편입니다. 몇 번 다른 음식을 먹어보겠다고 요리했는데 아이가 맛이 없다면서 "아빠 그냥 삼겹살이나 구워. 그게 제일 맛있어."라는 말에 야외에서의 괴식 요리 아니 캠핑 요리는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지난번 아들과 함께 캠핑을 갔을 때 어김없이 저희 부자의 메뉴는 시작 라면 - 삼겹살 - 마무리 라면의 패턴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박으로 보이는 옆 텐트에서 오후부터 쉬지 않고 후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음식의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작은 닭갈비로 추정되는 달콤하며 매콤한 향이었습니다. 평소에 닭갈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멀리 춘천에서 이곳 포천까지 온 것으로 추정되는 닭갈비의 향은 그동안 닭갈비에게 무심했던 저를 반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닭갈비에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서울에 올라가서 저녁에 반드시 닭갈비에 소주를 한 잔 마셔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아들과 제가 비건이 아님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우리도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는데, 옆 텐트에 손님이 온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를 파악해 보니 손님이 다행히 저희 텐트까지 향을 맡기 힘든 회를 떠 오신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회의 향은 저희 텐트까지 침범하지 않았고 저와 아들은 사이좋게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부자의 정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얼큰한 향이 이번에는 저의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선하고 탱탱한 활어회로 입을 촉촉하게 적시고 얼큰한 매운탕으로 마무리를 하는 그 광경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매운탕의 향이 이리도 향긋하고 소주를 미친 듯이 부르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평소 회를 먹은 뒤 "매운탕 드릴까요? "라는 질문에 "아니요.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했던 바보 같던 저의 지난 과거가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밀려오는 후회의 쓰나미를 몸과 마음으로 맞은 저는 그릇을 들고 옆 텐트에 수줍게 찾아가 "사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매운탕 한 국자만 주실래요? 쑥갓도 좀 넣어서요."라고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중년의 아저씨이기에 참았습니다. 제가 만일 10살만 어렸어도 아마 그릇 들고 찾아갔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솔로 캠핑을 갔을 때 "아이도 없으니 캠핑장에서 매콤한 음식을 반드시 먹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어머니께 제육볶음을 부탁했습니다. 그동안 캠핑을 다니며 어머니께 한 번도 음식을 준비해 달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어머니께서는 기쁘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니 색시한테 해달라고 하지 왜 나한테 해달라고 그러니?"
어머니의 질문에 저는 눈빛으로 답했습니다. 옆에 어머니와 저의 대화를 듣고 있는 아들도 아빠를 이해한다는 눈빛을 할머니에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해줄게."
아무튼 그렇습니다. 차마 글로 쓸 수는 없지만 (죽어요. 그리고 맞으면 아파요.) 어머니께 부탁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제육볶음을 준비해 솔로 캠핑을 떠났습니다. 집에서 약간 늦게 출발해서 그런지 제가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이미 모든 사이트에는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제 옆 사이트는 아주머니 3분이 오신 듯했습니다.
지나가며 그쪽 사이트를 힐끔 봤는데 LPG 가스통이 가장 먼저 보입니다. 순간 느꼈습니다.
"이 분들 왠지 먹는데 진심일 것 같다."
정말 이 분들 먹는데 진심이셨습니다. 여자 셋이 모이면 많이 시끄러웠을 것이라 많이 생각하시겠지만, 이 분들 정말 조용했습니다. 왜냐고요 쉴 새 없이 맛있는 다양한 음식을 요리해서 드셔서 말 그래도 입이 쉴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말할 시간조차 이 분들에게 사치였겠지요.
처음에 제가 도착해서 텐트를 설치할 때 주꾸미를 드시고 계셨는데, 역시 봄이 제철인 주꾸미라 그런지 저의 코는 물론 오장육부까지 강렬히 공격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초사이어인 모드가 되어 빨리 제육볶음을 먹겠다는 마음으로 전력으로 텐트를 설치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먹기 위해 텐트 설치에 진심으로 혼신의 힘을 쏟아 넣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부랴부랴 제육볶음과 함께 막걸리를 마신다니 어머니께서 함께 준비해 주신 겉절이를 열심히 먹었습니다. 어느 정도 포만감을 느끼며 멍하니 불멍을 즐기고 있는데 옆 사이트의 분들 이번에는 곱창을 굽기 시작했습니다.
고소한 곱창의 향이 점점 제 사이트까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느끼해서 자주 먹지 않는 곱창이 왜 이리 맛있어 보이는 것일까요. 저도 모르게 몽유병 환자처럼 옆 사이트 앞으로 걸어가 한 손으로 콧구멍을 쑤시고, 다른 한 손을 내밀며 "한 입만..." 이럴 뻔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고려해 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불멍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우리 밥 볶아 먹을까? 아까 남은 주꾸미 넣어서 같이 볶아 먹자!"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나쁜 사람들...
양념 주꾸미에 곱창의 조합은 절대 참을 수 없습니다. "누가 간 좀 봐봐."라는 말에 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옆 사이트로 찾아가 당당하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아~~"
제가 간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께서 요리하실 때 옆에서 깝죽대며 얻어먹은 경험이 풍부해 간은 아주 잘 보거든요.
하지만 이 역시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수줍음이 많은 샤이한 중년의 아저씨였고, 제가 느닷없이 옆 사이트로 찾아간다면 아주머니들이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지실 거 같아 참았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첫날을 보낸 뒤 이제 철수하는 일요일 아침입니다. 1박 2일은 역시 짧게만 느껴집니다. 간단히 세수한 뒤 아침 라면을 먹으려 텐트 밖을 나서는데 어떤 강렬한 향이 제 코를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숙취해소와 몸에 좋다는 감자탕의 은은한 향이었습니다.
"와 진짜 미치겠네.."
정말 저 순간 제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침, 공복에 감자탕의 향은 저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정말 코펠을 들고 가 "사모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두 국자만 주시겠습니까? 감자와 뼈도 함께 주시는 미덕을 보여주신다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 강조했듯이 저는 수줍음으로 뭉친 첫사랑에 빠진 소녀 감성 아저씨라 차마 말은 못 하고, 결국 아침 라면 대신 세수도 하지 않고 빠르게 철수한 뒤 집에 가는 길에 감자탕을 먹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감자탕 집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다음 캠핑에서는 저와 비슷한 취향의 음식을 준비하는 캠퍼 분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흥.. 요리 잘하고 맛있는 음식 드시는 분들 보면 부러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