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에서 후아나에게 마음을 빼앗기다.
프라도 미술관은 마드리드에서 꼭 가보고 싶은 미술관이었고 국제 교사증 할인이 되니 나는 부담 없이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 두 번이나 방문하는 호사(?)를 누렸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3시간 가이드를 눌러놓고 천천히, 느긋하고 여유 있게 둘러보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았으나 미술관에서 3시간 이상 그림을 보고 듣고 느끼는 일은 정말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좋은 것은 프라도는 사진을 못 찍게 되어 있으니 사진 생각 없이 최대한 눈으로, 마음으로 담을 수 있는 만큼 담아 갈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프라도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은 광녀 후아나였다.
<나는 사랑에 목말라 미쳐버린 광녀 후아나>
저는 태어날 때부터 유복한 환경의 금수저였어요. 저는 모자랄 것 없는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통해 교양 있고 지성 있는 여성으로 성장하였고, 이베리아어, 프랑스어, 라틴어에도 능통하게 되었지요. 어머니는 힘든 삶을 개척하고 왕위에 올랐지만 저는 태어나 보니 아버지는 아라곤의 페르난도, 어머니는 깊은 신심과 빠른 정치적 판단으로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고 레콩키스타를 완성한 불굴의 여왕이자 아버지를 능가하는 실력자였지요. 저는 평화를 이룩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업적 속에서 걱정 없이 자랐답니다. 이러한 저의 행복은 언제나 유지될 줄 알았죠.
그러나 이 시대 왕가 자손들의 운명이란 최고의 교육을 받고 온실 속에서 키워져 평온하고 유복한 시절을 보내지만 나라의 운명이 복잡해질 때는 정략결혼으로 나라의 위치를 공고히 해야 하는 정치적 도구일 뿐이었죠.
그래도 위로는 후안 오빠, 이사벨 언니가 있으니 저는 정치적 소용돌이와 무관한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반도를 유린하자 스페인과 합스부르크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죠. 중앙집권을 통해 강대국이 된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두 왕국은 혼인을 추진하였어요. 예, 제가 바로 그 혼인의 대상이었습니다. 저는 결혼에 대한 준비도 결혼 생각도 없었는데 어느덧 결혼이라는 무거운 운명 앞에 서게 된 것이죠. 제가 결혼할 사람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펠리페였어요.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1495년, 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펠리페와 약혼을 하였답니다. 왕자님이 잘 생겼다는 소식을 소문으로 들었지만 우리는 너무 멀리 있어 만날 수도 없었고 실제로 제가 펠리페 왕자님을 만난 건 결혼식 전날이었어요.
천만다행으로 펠리페 왕자님은 정말 잘 생겼고 저는 그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었어요. 물론 그도 제게 빠진 줄 알았죠. 늙거나 추남이어도 결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잘 생긴 왕자님과 혼인이라니, 저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 성직자들에게 결혼식을 최대한 빠른 시일로 잡아주길 부탁하였답니다. 그래서 약혼한 다음 해인 1496년 10월 20일 벨기에 리드에서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지요.
저는 왕자님과 결혼하여 계속 행복한 삶이 이어질 줄 알았어요. 흔히 말하는 동화 속의 해피엔딩 말이죠. 그러나 왕자님은 결혼 후에 저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여러 정부와 어울리는 등, 저의 심기를 건드렸고 오로지 남편만을 바라보던 저의 가슴은 나날이 타들어 갔어요. 물론 왕가의 정략결혼에 사랑이 어울리지 않았지만 카톨릭에 의지해 신실한 삶을 살 왔던 저의 삶에서 남편의 이런 태도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저는 점점 남편에게 집착하며 나날이 집착과 의심과 질투로 저의 삶은 지옥의 삶으로 빠져들어 갔어요.
간신히 고통스러운 삶을 지탱해가고 있던 저에게 또다시 불행이 닦였어요. 1497년 오빠인 후안 왕자가 사망하고 다음 해 언니 이사벨이 아들을 낳다가 사망 그리고 언니의 어린 아들 미겔(Miguel) 왕자가 사망하고 그 든든하던 어머니마저 1504년 돌아가시자 저는 갑자기 에스파냐왕국의 왕위 계승 1순위가 되어 버리고 말았답니다.
카스티야와 레온의 여왕, 아라곤 여왕, 나폴리 여왕, 시칠리아 여왕, 부르고뉴 공작부인으로 모든 권력은 다 나에게 있었으나 정작 내가 바라던 사랑은 가질 수 없었고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권력과 질투에 미쳐버린 고통 속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실제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저를 미쳤다고 외면하는 사람들 속에서 왕국 통치는 아버지 페르난도 2세와 남편 펠리페 그리고 아들 카를 5세가 하였으며 저는 간신히 명목상 여왕의 자리만을 유지하고 있었죠.
그러한 모든 권력은 오히려 저에게 독이었어요, 아버지도, 남편도 심지어 아들까지도 저를 권력에서 밀어내야 되는 대상으로 보았지요.
권력도 가지지 못한 채 광기에 휩싸인 저를 누가 받아주겠어요? 처음에는 저를 받아주던 주변 사람들도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슬슬 피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저의 광증은 점점 심해졌고 결혼 생활이 7년 정도 지나서는 저는 고통에 못 이겨 점점 포악해지고 고통스러운 삶을 탈피하기 위해 주술이나 마법을 신봉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요. 정치와 정략과 술수와 계산이 판을 치는 궁궐에서 사랑 하나만을 바라보던 저는 미쳐버리기 시작했어요.
궁궐에서 저의 별명은 '광녀 후아나'입니다. 누가 나를 미쳐버리게 한 것일까요? 내 사랑을 온전히 쏟아부은 모든 사랑의 근원이며 내가 바라본 오직 한 사람, 남편 펠리페 1세가 1506년 사망했답니다. 저의 광증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어요. 남편을 살리기 위해 남편의 관을 끌고 전국 각지의 수도원을 찾아다녔어요.
오늘은 우연히 들른 수도원은 오로지 수녀들만 있는 곳이라고 하네요. 남편을 여자들이 득실 거리는 이곳에 둘 수는 없어요. 그라나다로 가야 하는데 할 수 없이 수도원을 나와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것 같아요. 바람은 차갑게 불고 남편의 관은 내 앞에 누워 있는데, 주변의 누구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요. 그저 의무적으로 나를 수행하고 있을 뿐.
광녀라는 별칭으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나는 이 저녁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찬바람 부는 추운 저녁, 들판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저의 소망은 남편을 온전히 어머니가 편히 잠들어 있는 그라나다 대 성당 옆 왕실 예배당에 모시고 가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왜요? 저는..... 미쳤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