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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에 헤네랄리페 정원에서>

세르반테스는 행복한 소시민으로 살고 싶었을까?

by 김영숙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세르반테스가 있다.’라고 할 만큼 스페인 사람들은 자국 출신 작가 세르반테스를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페인을 여행하는 자유 여행객들은 세르반테스의 대표작인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풍차를 보기 위해 콘 수에 그라에 들르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솔직히 청소년기 의무감으로 세계문학전집 읽기를 통해 그 당시 내가 읽었던 돈키호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고 ‘이 사람 왜 이래?’하는 생각이 많았기 때문에 그저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문학 작품의 하나로 읽었을 뿐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마드리드 플라자 데 에스파냐 광장을 걷다 보니 로시난테에 올라 있는 돈키호테와 당나귀를 타고 그를 따르는 산초 판사의 동상이 보였고 그 뒤로 세르반테스의 동상도 보였다. 그리고 추가로 알게 된 사실은 마드리드 시내에서 왕가 혹은 그리스 신화 이야기 속 등장인물 외 인물 동상이 세워진 것은 스페인 국회 앞 세르반데스 동상이 최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출생지에서는 매년 세르반테스 기념문학상 시상식이 열리는데 여기에는 스페인 국왕도 참석한다고 하니 스페인에서 세르반테스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 볼 수 있었고 그렇다면 세르반테스를 좀 더 알아보고 그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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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마드리드에서 하루 정도 여유 시간이 있어 콘수에그라를 가볼까 생각했는데 우연히 만난 한국인 가족 여행객이 콘 수에 그라는 교통이 불편하여 렌터카가 아니면 가기 힘들 거라고 정보를 주었다. 그래서 콘 수에그라는 포기하고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도시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 가서 돈키호테를 집필할 당시 세르반테스 머물렀었다는 세르반테스 박물관에 가 보기로 하였다.


마드리드에서 렌페로 40여분 정도 이동하면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 도착하게 된다. 세르반테스 박물관 앞에도 어김없이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이 여행객을 맞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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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는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일곱째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는 변호사, 아버지는 외과 의사 겸 이발사여서 무척 가난했고 이곳저곳 이사를 다녀야 해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한다. 세르반테스 박물관 안 남성의 방에는 저울과 이발사 의자 같은 전시물이 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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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는 22세 때 이탈리아 추기경을 따라 로마로 건너가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으나 전쟁 부상으로 왼손 장애를 입었고 설상가상으로 해적에게 잡혀 몸값을 마련하지 못해 알제리에서 5년간이나 노예로 생활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성 삼위일체 수도회의 도움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와 마드리드에 돌아올 수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이후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별 인기를 얻지도 못해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중세 가정집을 재현한 박물관은 세르반테스가 비교적 윤택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꾸며져 있었으나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정말 안 풀리는 인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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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수입이 없으니 세르반테스는 생계를 위해 그라나다에서 세금 징수원이라는 직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세금 징수원 일을 하던 중 책임자의 잘못으로 나랏돈을 빼돌렸다는 누명을 쓰고 1597년 세비야 인근 감옥에 수감되게 된다. 억울한 옥살이였지만 글을 쓰던 사람이었으니 그는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상상했을까? 짧은 감옥 생활을 청산하고 출옥한 후 몇 년을 글에 매달린 끝에 1605년 <라만차의 기발한 신사 돈키호테>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는 데 이때 그의 나이는 쉰여덟이었다.


이 책은 많은 인기를 얻게 되는 데 안타깝게도 형편이 어려웠던 세르반테스가 헐값에 판권을 넘기는 바람에 치솟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세르반테스의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정말 인기를 얻어 웃어야 하는데 출판사만 배 불려 준 꼴이니 안 돼도 이렇게 안 되는 인생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돈키호테의 인기가 높아지자 짝퉁이 나오게 되고 이에 화가 난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2부를 완성하며 1616년 지병 악화로 마드리드의 수도원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의 나이 예순아홉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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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던 세르반테스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자신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으며 읽히고 그의 흔적을 찾아 스페인 시골 마을까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을.


세르반테스의 삶을 살펴보며 생각한다. 아마도 세르반테스는 당시에 힘들고 어려운 자신의 상황을 떨쳐내기 위해 돈키호테 같이 무모하게 도전하고 끊임없이 용기를 내는 인물을 상상해 낸 것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작가가 탄생되기 위해서는 고달프고 힘든 삶의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고 세르반테스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세르반테스는 위대함을 포기하고 우리 같은 행복한 소시민으로 살고 싶었을까? 아니면 미래에 유명한 작품을 남기기 위해 돈키호테처럼 현실을 떨치고 기사가 되어 어려움에 도전하는 삶을 택할까? 한편으로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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