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꼬마기차와 대성당의 엘 트란스 파렌테
스페인 마드리드 여행 정보를 찾다 보면 마드리드에서 가 볼만한 근교 여행지로 세고비아와 톨레도를 많이 추천한다. 두 곳 모두를 가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으니 한 곳만 선택해야 했고 나는 톨레도에 가 보기로 했다.
톨레도는 도시가 요새처럼 높은 지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도시의 삼면이 타호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적을 방어하기에도 좋은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톨레도는 기원전 192년 로마인에게 정복된 뒤 서고트 왕국, 이슬람 제국, 레온왕국,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다. 그래서인지 16세기 카를로스 1세는 톨레도를 왕국의 수도로 유지하려 하였으나 뒤를 이은 펠리프 1세가 1561년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겨 가면서 정치, 경제의 중심지에서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톨레도는 오랜 기간 스페인 왕국의 수도였으므로 198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의 세 종교적 특색이 융합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느낌의 도시라 할 수 있다.
나는 톨레도에 가서 특히 대성당과 엘그레코의 벽화가 있는 산토 도메 성당에 가보고 싶었고 톨레도의 유명한 간식인 마사판을 맛보고 꼬마 기차도 타고 싶었다.
톨레도에 가려면 마드리드의 아토차 역에서 기차를 타거나 플라자 엘립티카 버스 정류장에서 알사 버스를 타면 톨레도까지 1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내 숙소는 아토차 역 주변이어서 기차를 타면 더 편리할 수 있었으나 기차를 타게 되면 톨레도에 내려서 시내까지 다시 버스를 이용해야 하므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특히 톨레도 버스 정류장에서 도보로 잠깐만 걸으면 톨레도 구시가지로 올라가는 무료 에스컬레이터가 있다고 하니 더욱 호기심에 버스를 이용하였다. 역시 버스에서 내려 20여 분쯤 걸으니 에스컬레이터가 보였고 이것을 타고 위로 올라가 5분 정도 걸으니 소코도베르 광장에 도착했다.
소코도베르 광장은 중세부터 가축시장과 같은 마을 시장터였고 종교재판이나 각종 행사가 열렸던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광장 주변은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이동한 느낌이 들 정도로 당시의 건물들이 많이 있었고 관광객들도 분주히 오가고 있어 톨레도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광장 주변을 둘러보면서 조금 걷다 보니 소코트렌(Zoco Tren)이라는 꼬마기차를 탈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톨레도가 언덕 위에 있는 도시이다 보니 톨레도 구시가지 전역을 한 바퀴 도는데 투어 버스보다는 꼬마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해서 생긴 기차 같았다.
꼬마 기차를 타니 이어폰을 나누어 주는데 연결해 보니 한국어 안내도 나왔다. 기차는 알칸타라 다리부터 시작해서 톨레도 구 시가지를 돌아 전망대에 올라 잠시 내려주었다. 전망대에서 톨레도를 내려다보니 타호강에 둘러싸인 성과 교회와 집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여 중세의 소도시에 와 있는 느낌을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꼬마기차에서 내려 걷다 보니 톨레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마사판 가게가 보인다. 옛날 전쟁과 기근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 수녀님들이 사람들에게 만들어 나누어주던 간식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수녀님들이 만들어 팔고 있다고 하여 들러 보았다.
카페는 깔끔하고 소박한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고 진열장에는 마사판을 만드는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었다. 찐득한 카스텔라 같은 느낌의 마사판을 커피와 함께 먹고 있노라니 옆 성당의 신부님들도 옆자리에 앉아 드시는 모습이 관광객뿐만 아니라 스페인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간식 같았다.
마사판으로 당을 충전한 후 톨레도 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 들어서자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어린아이를 어깨에 짊어진 거인의 그림이었다. ‘성 크리스토퍼’ 성인의 모습이다. 전설에 따르면 힘센 이 거인은 자신의 큰 체구를 이용해 사람들을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게 해 주었는데 자신보다 힘이 센 이를 만나면 주인으로 섬겨야겠다고 생각하곤 했단다.
어느 날, 한 소년이 물길을 건너게 해 달라고 청하여 그를 어깨에 올리고 강을 건너는데 한 발씩 내 디딜수록 소년이 점점 더 무거워져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을 지경이 되자 거인은 소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후로 예수를 따르게 된 것이다. 이 거인은 여행자들의 수호성인이라는데 나도 남은 여행을 잘 마치게 해달라고 살며시 빌어 보았다.
톨레도 대성당은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엘 트란스 파렌테로 꼭 가보고 싶은 성당 중 하나였다.
엘 트란스 파렌테(El Transparente)는 스페인어로 ‘투명함’을 의미하는 데 성당 천장에 뚫린 창문으로 자연광이 성당 안으로 비추도록 만듦으로써 신자들이 성당에서 신성한 빛이 성체에 집중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치는 1729년에서 1732년 사이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나르시소 토메와 그의 가족이 제작한 작품으로 주제단 뒤쪽에 자연광을 끌어들이기 위해 창문을 뚫고 이를 둘러싸는 화려한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한 것이다.
대성당을 방문하기 전에는 ‘그래 종교는 어떤 식으로든 신자들의 신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별짓을 다하는구나.’하고 약간 회의적인 느낌이 컸었다. 그러나 약간 어두컴컴한 대성당 안을 걷다 보면 성화 밑 촛불만이 간간히 밝혀져 있는 성당 어느 즈음에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화려한 성화와 쏟아지는 자연광에 절로 성스러운 생각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인이 아닌 관광객에게도 감탄을 자아내며 성스러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하물며 가톨릭 신자라면 얼마나 신심이 두터워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