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다
2018년 여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무려 2:0으로 이긴 새벽에 나는 내 몸통만 한 배낭을 메고서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1800km에 달하는 까미노를 걷기 위해서.
왜 그런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어? 한국에서 까미노를 걷기로 결심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듣던 질문이다. 왠지 거창한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사실 그런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이 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궁금해졌고, 충분한 시간도 있으니 떠날 수 있었다.
애초에 그 길을 다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가다가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그래도 뭐 괜찮지, 그러면 유럽 기차여행을 해야겠다.'라고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걸음을 내디뎠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첫날부터 찾아왔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해 여름 프랑스길과 포르투갈길 두 번의 까미노를 완주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한 사람의 세계를 시각화한다면 다면체가 아닐까. 그리고 최초의 세계가 가장 최소의 면을 가진 사면체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각 면을 조각내면서 살아가는 거다. 둥근 '구'의 형태를 만들어가면서. 그 단단한 면을 가장 많이 조각낼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은 "넌 왜 걷고 있어?"라는 질문 대신에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힘든 점은 무엇인지, 지금 행복한지를 궁금해했다. 우리는 하루종일 이야기 나누며 웃고 마시고 걸었다. 그 여정 속에서 그들의 순수한 사랑과 배려에 나는 자주 눈물이 났다.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굳게 믿고 살았는데, 우리는 함께이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뜨겁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에 이렇게 적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우리는 마치 단단히 묶여있는 것 같았어. 서로의 눈물을 기꺼이 이해하고, 커다란 불 앞에 나란히 서서 축축한 것과 차가운 것을 쫓아냈지. 삶, 이라고 내뱉고는 피식 웃어. 그거 뭐 별거 있나. 그냥 사는 거지, 함께 말이야.
지금까지 살면서 내게 가장 영향을 미쳤던 경험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고민 없이 까미노라고 대답할 것이다. 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나 그들에게 자극을 받고 새로운 깨달음과 용기를 얻으며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달리 했다. 언젠가 다시 한번 꼭 그 길 위에 설 테다. 순수한 사랑과 배려를 나누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