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꼰대 언니 Nov 09. 2022

라떼는 말야...

꼰대언니, 30년 경력자가 2030대 후배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한달 뒤는 내가 대졸신입으로 삼성그룹에 입사한지 만 30년 되는 날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언론사 시험, 공사 입사 면접, 대기업 대졸 공채 등 여러 시험을 치렀지만, 나는 항상 1차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어느 기업이든 여대졸에 대한 자리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특채나 소수의 공채 외에는 여성을 위한 자리가 적었다. 

유일하게 내가 합격한 곳은 삼성그룹의 여성전문직 공채였다. 

1992년 삼성그룹의 여성전문직 공채로 입사할 당시 나에게는 54명의 입사동기들이 있었다. 재기 발랄하고 총기가 넘치는 동기들이었다.


그룹 입문 교육 한달 후, 각자 계열사로 파견 실습을 일주일 나가는 시간이 있었다. 

일주일 후 돌아온 동기들이 실습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는 곧 눈물바다가 되었다.


여성 전문직이라는 그럴싸한 이름과는 다른 현실이 실습을 통해서 살벌하게 드러났다.

각자 파견된 회사에서 커피를 타고, 회의실 책상을 걸레로 훔치고, 몇살이냐 이쁘다 등 직장동료가 아닌 관상용 열대어 같은 대상으로서 대하는 상사와 동료들에게 자존심과 자긍심을 다친 후 였다. 


그때만 해도 사무실에서 여성인력은 ‘예외없이’ 유니폼을 착용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대학 졸업 후 같은 선상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색색가지 넥타이를 맨 신입남자사원과 유니폼을 입은 신입여자사원은 사무실에서 확연히 다른 존재였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13년 12월 어느날, 유수의 일간지에 '삼성그룹 공채 출신 여성 임원들의 약진''삼성 여성임원 승진 역대 최다 15명' 등등의 타이틀이 대서 특필되고 있었다.

1992년과 1993년 첫 그룹 공채를 통하여 입사한 여성임원들이 기사의 주인공이었다.


출산 후 복귀 한지 며칠 안 되는 날 회사에서 사원증을 갱신한다며 찍은 사진 속 파란 바탕 화면에 갇힌 나는 유니폼에서는 벗어나 자유복을 입고 있지만,

붓기가 덜 빠진 부은 얼굴과 질끈 묶은 머리에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은 모습이다. 나의 부끄러움과는 무관하게 대문짝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내 사진과 승진 기사는 여러 매체에 반복적으로 게재되고 있었다. 내 사진 옆에는 파란바탕 속 지친 얼굴들이 나란히 하고 있다. 그들의 얼굴은 피로감이 압도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삼성 신임 여성임원들 얼굴 좀 봐! 살벌한데!”


그렇게 내가 20년 근속 후 임원이 되었을 때, 아직까지 삼성을 다니는 입사동기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나의 54명의 동기들은 어떻게 회사라는 조직에서 사라졌을까?

그들의 숨은 눈물이 하수구에 흘러 넘치는 듯 느껴진다.


이제 30년간 듣고 느낀 이야기를 기억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글을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그동안 쓰여진 눈물 만큼은 아껴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자유의 불나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