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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대 언니 Oct 08. 2019

축덕의 단상

축구를 좋아한다. 프리미어 리그를 즐겨본다.

축구를 보면서 내가 매 경기를 뛰는 선수들처럼 조직 생활에 집중했다면 아마 조금은 다른 현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장에서는 골을 넣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모든 대우가 달라진다.

박지성인 듯 다른 선수들 보다 평균 3km를 더 뛰고 결정적 장면을 여러 번 만들었어도

그날 하일라이트의 얼굴은  빌빌 있는듯 없는듯 투명인간이었다가 얻어 걸린 듯 골을 네트에 꽂은 선수다.


조직과 유사하다.

과정을 중시한다고 말을 할지 언정 정말 과정을 중시하는 회사를 본적이 없다.

그저 결과로서 이야기할 뿐이다.

과정을 중시하면서 모든 의사결정을 수평적인 수렴을 마치고 일을 진행하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자 보다는 결과를 향해 브레이크없는 벤츠처럼 질주하는 자에게 조직은 관대하다.


 교도소 재소자 집단에게서 사이코패스의 비율이 20%가 넘어 일반인 집단의 3%보다 높다고 한다.

CEO 중에서 사이코 패스 비율이 15%가 넘는다고 한다.

남과 공감하는 이들 보다 타인의 감정을 적당히 밟고

목표 중심의 과업 중심의 인물들이 살벌한 CEO 사다리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나는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팀 리더에게는 약점일 수 있다. 조직은 브레이크 없는 벤츠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루카쿠를 좋아한다

https://www.insight.co.kr/news/162767

2018 월드컵 당시 조국인 벨기에 팀과 아프리카팀의 경기에서 심판이 자신의 소속인 벨기에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렸음에도 제대로 하라고 눈을 가리키는 충직함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조직에서 조직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인원에 대해 조직은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텐데 나는 그를 응원한다..

의협심과 그에 따른 내부고발 WHITSLE BLOWING은 개인의 선택이다.

루카쿠는 팀에게 주어진 행운의 첫골 기회를 날려버릴 각오로 양심선언을 했다.

스노든이나 대한항공의 박창준 사무장처럼 개인의 양심선언이 사회를 바꾸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된다.

스노든은 미국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있다.

박사무장은 양심선언 후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되고 보통 신입에게 주어지는 화장실 청소등의 허드렛일이 주어졌다.

나에게 주어질 불이익을 충분히 예상하고 본인의 의지로 강행한 양심선언이다.

비록 자리를 내줬지만,

 나의 신념을 지켰다는 만족감은 누가 앗아갈 수 없는 영원한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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