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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대 언니 Feb 07. 2020

'기생충'이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유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모두들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봉감독 말대로 "로컬 영화축제", 우리에게는 남의 나라 영화축제인 아카데미에 한국인 모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작년 아카데미 외국여 영화상 예비후보로 오른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올해의 "기생충"

공교롭게도 한국사회가 유독 민감한 빈부의 격차를 그린 영화들이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더 좋았다.

이창동 감독이 주는 서정적인 영화의 전개와 보일이라는 고양이와 갑자기 사라져 버린 해미에게 부여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움이 전형적인 문송합니다의 나에게 오래도록 남는 여운을 주었기 때문이다.


기생충의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롤러코스터가 흥미로왔지만 왠지 불편하다.

내가 보기에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세팅인 탓에 공감이  안되기 때문이다.


우선  공간의 비현실감이다.

집안의 아무도 모르는 비밀 벙커라는 공간은 모두가 어릴때 한번 쯤은 가져보는 환타지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라푼젤' 동화부터 '안네의 일기'까지 이런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공간안에서 갇힌 자의 환상이 지배했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시대 인가. 일찌기 '1984'에서 조지오웰이 그린 빅브라더로 대비되는 절대존재는 개인의 모든 삶을 전지적 관점에서 꿰뚫어 볼수 있다.

사방의 CCTV, 블랙박스, 휴대폰, 스마트 TV와 5G가 지배하는 네트워크 안에 고스란히 개인의 삶을  드러내놓는 개인에게 기생충의 공간은 어딘지 이 세상 같지가 않다.


두번째 비현실적인 부분은 실로 현실과 백만 광년은 거리가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가족의 끈끈함이다.

가장의 잇따른 부도와 아들의 삼수에도 대학진학 실패, 운동선수 출신의 우악스러운 아내, 하는 일없이 빈둥대는 딸.

이들은 하나의 팀이 되어 서로의 작전을 짜주고 서로를 채워주고 커버해준다. 반지하 방에서도 가족은 모두 식탁 테이블에 모여앉아 미래를 이야기하고, 기사식당에서 가족 식사로 작전을 짜고, 마침내 전원 취업이 성공하자 기다렸다는 듯 주인이 비운 집에서 맥주와 양주를 따며 축배를 든다.

쫓겨난 전임 가정부 문광과 지하에 숨어있는 남편도 마찬가지다.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아래 함께 춤을 추는 두사람은 지극히 서로를 사랑하는 듯 보인다. 

 마치 타자를 자신처럼 품고 희생하는 가족간의 정에서 비롯된 욕망이 빚어낸 커다란 파국이 영화의 축이다.


현실은 어떤가.

가족의 끈은 휴대폰과 개인화로 끊어진지 오래다. 네가족이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즐기며 밥을 먹은지가 언제였던다. 그것은 아이폰이 도입되기 전,  2008년 이전이다.


가난은 가족을 더욱 각자의 감옥으로 몬다.

비정규직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엄마는 그렇게 밤늦게까지 업무 혹은 노동에 시달리느라 아이들에게서 멀어지고. 아이들은 부모가 자리를 비운 자리에서 더욱 휴대폰과 게임에 몰두한다.

그렇게 가족에게 한자리에서 모이는 저녁 식사나 아침식사는 멀어져 간다.

(물론 부유한 가족도 각자의 이유로 개인화로 접어들지만.)


버닝에서처럼 집을 나간 엄마, 재판중인 아버지, 비빌 데 없는 청춘 종수가 나에게 더욱 공감이 되는 이유다.


그래도 올해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좋은 소식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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