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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Jun 08. 2019

'가족 단톡방'에 초대한다고 가족이 되나요

가족이 되는 데도 시간과 거리가 필요하다

내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대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급속도로 스마트폰을 쓰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우리는 ‘남은 문자 개수’에 연연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단톡방은 신나는 수다의 장이었다. 


그 단톡방이 어느새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가 된 것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업무 시간에는 매신저를 통해 빠르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으나, 퇴근 후에도 단톡방의 알람은 울렸다. 별 시답지 않은 농담이 올라와도 눈치가 보이니 누군가는 리액션을 해야 했다. ‘몰래 단톡방 나오는 법’을 검색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많은 단톡방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는 탓에 최근에는 이에 대한 스트레스와 해결책을 논의하는 사람들도 많다. 직장 자체적으로 퇴근 후 메시지 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런데 ‘공적인 업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적인 자유’도 없는 단톡방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결혼했다고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시부모님을 만나 뵐 일은 거의 없었다. 당연히 연락처조차 몰랐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시어머니에게 종종 카톡이 왔다. 별다른 용건이 아니어도 휴대폰 화면에 ‘시어머니’라는 이름이 뜨면 괜한 긴장감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이웃집 이모도 아니고, 직장 상사도 아니고,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닌 어른. 서로 만난 지 채 두어 달도 되지 않았는데 나에 대한 기대치를 한가득 안고 계신 어른. 아직 잘 모르지만 앞으로 쭉 알고 지내야 하는 어른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결혼하고 처음 한두 해 동안 나는 좀처럼 시부모님과 가족이 되지 못했다. 가족은커녕, 동네 단골 가게 사장님보다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과는 2년 동안 서로를 탐색하고 사랑하다 결혼했으나 그의 부모님과 나는 여태까지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새로운 부모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내게 시어머니의 친밀한 카톡과 잦은 연락은 내 마음을 더 부담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문장으로 먹고사는 일을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의 범위는 너무 적었다. 휴대폰 액정에 시부모님 이름이 뜰 때마다 괜히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어쨌든 사회화가 되어 있으니 어른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겠으나, 며느리에게 기대되는 덕목은 그보다 친밀한 지점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몇 번의 전화 통화 후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머니, 저는 주기적으로 연락드리거나 오랫동안 통화하는 게 좀 부담스러워요.”


가끔 한 번씩 안부도 전하고 소소하게 수다를 떨고 싶은 시어머니의 소박한 바람을 거절하는 것은 미안하고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아들이 하면 쉬운 일을 왜 며느리가 해야 하는지도 답답했다. 그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쨌든 결혼을 통해 ‘부모님 아닌 어른과의 주기적 연락’이라는 미션을 평생 안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요인을 나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며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시부모님과의 연락’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결혼생활의 질을 바꾸어 놓았다. 


단톡방은 왜 감옥이 되었을까  


결혼한 친구들은 대부분 '시가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 특히 아이가 있는 경우엔 일일이 아이 사진을 전송하기 번거로워 아예 단톡방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 단톡방은 '오지랖의 장'이 되기 일쑤다. 아이 옷을 너무 춥게 입혔다, 분유는 안 좋다더라, 아이가 혼자라 심심해 보이는데 둘째는 언제 낳니 등. 혹은 아침마다 전송되는 '예쁜 풍경'과 '좋은 말씀'에 일일이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친구들도 있었다. 


단톡방에 초대된다는 것은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많은 시부모님은 새로 가족이 된 며느리가 반갑고 예뻐서 딸을 대하듯이 자꾸만 말을 걸고 싶어 하시는 것이리라. 자식들과 일상을 나누고 때로는 정보도 나누고 싶은 그 마음을 며느리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궁금한 건 정작 직계 자식들은 왜 그리도 부모님의 카톡에 대답을 잘 안 하느냐는 점이다. 최대한 새 메시지 읽는 것을 미루다가 결국 꼼지락거리며 무슨 대답이라도 남기는 것은 며느리의 몫이다. 


하지만 사실 많은 며느리들이 시부모님의 끊임없는 연락에 대꾸할 말이 별로 없다. 친정 엄마 대하듯 말대꾸를 할 수도 없고, 매번 화려한 리액션을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만큼 친하거나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치르고 나니 그 부담스러운 일을 감당할 만큼 갑자기 남편의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모락모락 차오를 리도 없다. 


단톡방에 알림이 뜰 때마다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가족 단톡방의 역할 중 하나가 '집안 행사에 소환'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시부모님이 단톡방을 통해 아들과 며느리에게 직접적으로 행사 참여를 통보하면 며느리 입장에선 직접적으로 거절하기 어렵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며느리가 마땅히 그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는 데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시부모님을 상대로 이모티콘 없는 거절 멘트를 날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걸 알기에, 일부러 아들 대신 며느리에게 가족 행사 참여를 통보하시는 시부모님도 있다. 


천천히, 차근차근 하면 어떨까요 


결혼 후 친정 식구들의 단톡방에 남편을 소환하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시가 단톡방에 나를 초대하고 싶어 하셨지만, 다행히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나는 시부모님과 수시로 시시콜콜한 연락을 나누지 않아도 되었고, 모든 시가 행사에 대한 정보는 남편을 통해 전달 받았다.


일정을 전해 듣고 내 스케줄을 확인하거나, 참석하기 싫은 행사에 대해서는 거절했다. 즉각 대답할 필요가 없으므로 생각할 시간이 생기고, 거절하는 데에도 부담이 적다. 물론 친정 행사에 대한 남편의 참여 여부를 조율하는 것은 내 몫이다. 나는 엄마와 얘기한 뒤 ‘남편과 의논하겠다’고 말하고, 남편의 일정과 참여 의사를 확인한다.


나는 내가 남편의 가족에 속하게 되었다고도, 반대로 그가 우리 가족이 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가족에 속해 있고 동시에 두 사람이서 새 가족을 이루었다. 우리는 결혼을 통해 더욱 독립적인 성인이 되었고,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하며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지겠다는 결심을 한 셈이다. 그러니 굳이 ‘다른 부모님’ 밑으로 들어가 또 다른 자식 노릇을 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렇게 시부모님과 선을 긋는 듯한 결혼생활이 매정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결혼 4년차인 지금은 오히려 시부모님을 대하는 것이 훨씬 편해졌다. 내가 시부모님과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초반의 거리감 덕분이었다. 시부모님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니 내 마음이 준비된 때에 먼저 가벼운 마음으로 연락을 드릴 수 있었다. 시부모님의 존재가 ‘부담감’으로 연결되지 않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져 오히려 편했다. 


가족의 과도기에 머물러 있는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시부모님의 노력 덕분에 나도 ‘며느리’라는 내키지 않는 역할보다는 나다운 모습으로 시부모님께 다가가는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오히려 그 느릿한 과정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결혼 문화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꽤 많이 논의 드렸고, 시부모님도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해 주시거나, 또 부모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셨다. 


가족이 되는 것을 강요받는다 해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딱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데에도 충분한 시간과 솔직한 소통이 필요했다. 이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차근차근 가족이 되는 데 있어 단톡방이 좋은 소통의 창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건 지나치게 빠르고, 일방적이며, 너무 잦다.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맞이해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적당한 시간과 거리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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