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나의 신념을 보호하고 싶지 않다
살다 보면 빈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웬만하면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 빈말이 있는가 하면 나의 작은 신념 조각을 꺾어야 나올 수 있는 빈말도 있다. 고양이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고양이를 도시에서 쫓아내고 싶은 사람이 만났을 때 서로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하여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는 척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어려울 것 같다. 빈말이라는 게 결국 상대방과 적당한 대화의 온도와 수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면 누구에게나 그 허용 범위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명절에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서도 각자 굽힐 수 없는 정치 얘기를 하면서 싸우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한테 빈말이라도 듣기 좋은 소리를 잘 못하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나의 삶에 대해 바라는 방향이 있다는 건 알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보겠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삶의 여러 가지 선택의 순간에서 엄마는 늘 걱정했고 불안해했으며 때로는 반대했다. 회사를 그만뒀을 때는 그래도 프리랜서보다는 월급 받는 직장인이 낫지 않겠느냐고, 여행을 가거나 자취를 한다고 했을 땐 그러다 돈은 언제 모으려고 그러냐고, 20대에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결혼을 왜 그렇게 빨리 하느냐고 염려했다.
난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할수록 내 선택을 강행하는 아이였다. 내가 살아내야만 하는 인생에 대한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은 감사히 듣되 허락을 구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이왕이면 엄마가 걱정이나 반대보다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어머나, 그런데 결혼했더니 생후 30여 년 만에 처음 만난 어른인 시아버지가 나의 삶에 ‘이래라 저래라’를 시전하려고 하셨다. 이해한다, 아직 며느리인 나를 딸만큼은 잘 모르신다는 증거다.
“너희도 이제 아이를 낳아야지. 내년에는 너희 사이에 개 말고 애가 있었으면…… 흠흠, 알지?”
결혼한 지 6년차. 우리가 늘 데리고 다니는 반려견 대신 아이를 보고 싶다는 시아버지의 바람은 점점 언급하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다. 1, 2년차까지는 설마 하는 마음에 봐줬다는 뜻이다. 이런 시아버지의 간섭은 ‘과일 좀 깎아보렴’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앞으로 20년 이상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는, 너의 삶을 180도 바꾸는 선택을 하면 어떻겠니?’의 레벨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럼 그럴까요?’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이미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할 거였으면 진작 낳았을 것이다. 아니, 누가 하라고 한다고 마지못해서라도 그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내 삶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아이는 안 낳을 거예요.”
단호하게 대답해본들 이미 100번은 들은 말이라서 이제 놀라지도 않으신다.
“너희가 아이를 낳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면 더 좋지 않겠어?”
“많은 사람의 행복이요? 제가 행복한 게 더 중요하죠.”
만날 때마다 시아버지와 내가 이 문제로 입씨름을 하니 옆에서 시어머니가 슬쩍 날 거들어주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시어머니 주변에도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인 지인이 있었는데, 어른들 앞에서는 그냥 낳겠다고 말하고는 ‘나중에 그냥 안 생긴다고 거짓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단다. 어른 앞에서만이라도 ‘네네’ 하고 넘어가면 그 순간은 평화롭다는 뜻이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이게 현명한 해결책으로 보일 것이고, 내 주변에도 실제로 이런 답변으로 그냥 시간을 끌고 있다는 친구도 있다.
어쩌면 ‘착한 거짓말’일 수도 있는 빈말, 잠시나마 시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거짓말. 그쪽이 마음이 편한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내 신념에 거짓말이라는 보호막을 쳐서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진 않았다. 내 삶과 나의 선택을 누군가에게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 변명은 단발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몇 년 동안 몇 번이나 더 같은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더 나아가면, 시아버지 말씀을 따르는 착한 며느리도 아니면서 그런 척하느라 또 다른 기대치를 짊어지고 투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불편한 심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를 낳는 건 시아버지보다는 나의 삶에 있어 훨씬 더 중대한 문제다. 부모님들은 아이를 낳는 삶을 살았기에, 또 그 삶에 행복한 영역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그걸 추천하고 싶어 하시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내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선택에 대해 나도 나름대로의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많은 것을 저울질해본 뒤 신중하게 결론을 내렸다. 나에게 이토록 진지한 문제를 남의 기분에 맞춰주기 위해 손바닥 뒤집듯이 휘두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라고 말 한마디면 편해질 걸 굳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내 신념을 들이미는 독특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예전에 채식을 했을 때도 고기를 먹는 사람들 앞에서 ‘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고는 당연히 말하지 않았다. 때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한다’고 간단히 얼버무리기도 했다. 나 개인에게 중요할 뿐인 이유를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언급하여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또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하는 게 나를 상처 입히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각자가 믿는 선택을 하고, 서로를 존중하면 되었다.
그러나 아기를 낳는 문제는 다르다. 아이는 ‘내가’ 낳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겪어야 하는 삶을 남의 기분을 위해, 무엇보다 장손이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아버지의 가부장적 가치관과 타협하여 ‘네네, 물론 낳아야죠’ 하고 말하기는 싫었다. 남편이 아버지 말대로 장손으로서 대를 잇는 게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나랑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여자아이는 이렇게, 남자아이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는 시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이 편견의 울타리 안에 도화지처럼 무해한 생명을 들여놓고 키우는 일이 한층 더 까마득하게 느껴질 뿐이다.
살면서 항상 내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사적으로 가깝지 않은 이들과 각자가 선택해온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서로의 히스토리를 알 수 없기에 말을 아끼는 게 나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관계의 거리와 상관없이 자신이 믿는 신념을 드러내거나 또 밀어붙이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된다는 것을 그 가치관의 거리를 성큼 좁혀 다가갈 수 있는 일이라고 우리는 쉽게 믿어버리는 것 같다.
결혼을 통해 밀려드는 약속한 적 없는 강요 앞에서 많은 여성들이 당황하며 주춤한다. 때론 어른에게 예의바르게 굴고 싶은 착한 마음이 튀어나와 마음에 없는 소리를 자꾸 하게 한다. 그러고 나면 모임이 끝난 뒤에 왠지 찜찜하다. 결혼이 요구하는 의무와 둥글게 타협해가며 내가 아무렇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내 기분이 나빠지는 건 싫다. 난 불합리한 말들에 나를 고스란히 노출시키지 않기로, 나를 지키기로 정했다.
결혼은 일회성이 아니라 내 삶에서 지속된다. 사실은 ‘그냥 한 번만 참으면’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다. 내가 얼떨결에 허용한 내가 아닌 나의 약속과 가치관이 내 삶 전반에 미세한 불순물처럼 섞여 흐르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어쨌거나 '한 번만 참더라도' 기분은 나빠진다.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 밥을 잘 챙겨 먹여야 한다’든가 ‘명절에 와서 며느리가 음식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도 시아버지를 또 만나 웃으며 대화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싫어요.”
어디서 읽었더라, 참으면 미워하게 된다. 때로는 거절이 나를 지켜준다. 내가 나를 지켜야 관계도 유지된다. 내가 시아버지의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요구를 대놓고 거절하는 건 오히려 내가 이 관계를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믿거나 말거나.
참, 그럴 거면 왜 결혼했느냐는 질문이 나올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선택한 배우자와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일구어 나가기 위해서 결혼했다. 그와 내 각각의 삶을 결혼 안에서 버무리기 위해서가 아닐 뿐 아니라, 며느리가 되기 위해서, 엄마가 되기 위해서 결혼한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