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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Apr 30. 2021

여성 징병제로 우리는 더 평등해질까

20만 명이 동의한 청원에 대하여

얼마 전 웹툰 <이두나!>를 보다가 댓글이 맥락과 상관없이 엉망이기에 의아한 마음에 살펴보니 일명 평점 테러를 당한 상태였다. 알고 보니 웹툰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가 떡볶이를 먹는 장면에 ‘허버허버’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남혐’으로 지목되어 남초 커뮤니티에서 테러를 당한 모양이었다. 이 사회는 이제 혐오를 상징하는 대표 단어를 맥락과 상관없이 지정하여 그 단어를 입에 올리면 어떻게든 단죄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형상이 또 일관적이지는 않다.


얼마 전 한 편의점에서 알바생을 모집하며 ‘오또케 오또케’ 하는 사람(여성)과 페미니스트는 뽑지 않겠다고 공고한 일이 있었다. 댓글은 ‘충분히 이해되는데?’ ‘나 같아도 안 뽑겠다’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들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고 페미니스트를 배제하겠다 선언하는 행위가 그들이 늘 당연하게 지니고 있던 부당한 권력의 발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는 각종 혐오가 담긴 단어는 당연히 쓰지 않아야 한다고 여기지만, 지금의 대결 구도는 다소 막무가내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허버허버’가 지금까지의 여혐 단어와 맥락을 달리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게 남성들에게만 쓰이는 표현인지와 별개로(실제로 웹툰에서는 여성이 먹는 장면을 표현했고) 이 표현이 남성들의 삶에 미치는 피해가 없거나 매우 적기 때문이다. 여혐의 대표적인 단어로 여겨졌던 ‘된장녀’나 ‘김치녀’ 같은 단어는 실제로 여성의 자유로운 소비나 표현을 위축시켰다. ‘오또케 오또케’도 마찬가지로 여성이 어떤 일을 제대로 해결하거나 수습하지 못한다는 실질적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하여 여성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애쓰게 만든다. 웹툰에 평점 테러를 가한 남성들이 ‘허버허버’ 먹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밥 먹을 때마다 주위 시선을 신경 쓰는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 와중에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이 남혐의 피해자이고 약자라는 주장에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열심히 힘을 실어주는 추세다. 여성 징병제를 실행하자고 주장하는 청원에는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문제는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 자체가 아니라, 해당 청원과 그 동의의 맥락에는 남성에게 가해진 '징벌적 성격'의 병역 의무를 여성에게도 지게 하자는 보복성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마치 허버허버라는 단어가 남성을 향한 공격으로 기능하기보다는 그들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수집된 근거처럼 보이듯이.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이 어느 때보다 힘들다고 평가되는 지금의 사회에서 가뜩이나 사회 진출을 늦추는 남성들의 군 의무를 여성들이 나누어 져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이해가 되지만, 청년들의 삶이 나아지게 하는 논의에 여성 징병제가 얼마나 주된 의미를 갖는지는 의문이다. 사실상 여성이 군대를 가는 것 자체가 남성의 인권이나 권리 향상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렇게 가라는 군대 갔으니까 이제는 비로소’ 여성들의 차별 불식과 권리 향상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재의 여성 징병제 청원은 사실상 '군대도 안 가는 주제에 인권을 요구하기 시작한' 여성들을 향한 괘씸죄 부여의 성격이 강해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여성들 역시 여성 징병제에 동의하고 있다. 다만 여성들의 찬성에는 군 의무를 동등하게 지는 것으로 기존의 사회적 차별을 불식하고 모든 차별에 대해 ‘그럼 여자도 군대 가라’로 대응하는 일부 남성들에게 그 마지막 빌미를 없애겠다는 마음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그 이후는 어떨까? 여성 징병제는 우리 사회를 얼마나 더 평등하게, 또 얼마나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성에게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래’ 하는 식으로 여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쉽게 듣게 된다. 군대는 갈 때는 징벌일지 몰라도 병역 의무를 마친 뒤에는 여성 및 면제자에 대한 우월감의 기반이 되어 남성 중심의 직장 문화를 형성해왔다. 그 동질감 때문인지 군대에 다녀온 남성들은 여성 징병제가 논의되기 전에도, 군대가 ‘좋아지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진 않았다. 군대에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혀를 차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실은 징병 제도뿐 아니라 군 내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문제들 역시 해결되어 나가야 할, 아니 진작 해결하려 노력했어야 하는 과제이겠으나, ‘내가 고생했으니 쟤들도 고생해야 한다’는 고집 외에 부당한 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의는 언제나 지지부진했다. 애초에 남성 징병에 대한 결정권은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진 정부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단지 여성도 같은 문제를 겪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남성들을 똘똘 뭉치게 하고 있다. 조직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조직 바깥에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이 더 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조직 구성원의 삶이 좀 더 윤택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결과적으로 여성 역시 동등한 군 의무를 지는 것이 일부 논쟁을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군대라는 주제가 여태껏 너무나 많은 성 평등에 대한 논의를 아무런 토론의 여지 없이 짓뭉개왔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성 평등에 대한 많은 발화가 있었으나 사실상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대답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요구하기 전에 군대나 다녀와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병역 의무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는 것은 마땅하고 존중할 만한 일이지만, 그게 우리 사회 전체를 군대에 다녀왔느냐, 안 다녀왔느냐로 이분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지표는 아닐 것이다.      


단지 페미니즘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 징병에 ‘꽂혀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여성이 동등한 군 의무를 진 다음에 사회는 그만큼 더 평등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성들 중에는 남녀 차이를 인정하는 굉장히 합리적인 발상이라고 자부하며 '군대에서 신체적으로 불리한 여성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근거를 대기도 한다. 하지만 혹여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하여 군 내에서 남녀의 포지션이 어느 정도 나뉘게 된다면, 만약 생리적 특성으로 인한 일부 어려움을 인정한다면, 그때는 또 ‘군대에서 꿀 빨고 온 주제에’ 하는 말이 안 나올까? 그에 더해 만약 출산을 면제 자격으로 인정한다면, 출산이 정말 개인이 아닌 국가를 위한 일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그러면 언젠가는 가임기 여성의 출산 지도를 그리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우려 때문에 여성 징병제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징병제가 여성을 포함해야 하느냐에 대한 단계적인 논의에 앞서 여성 징병제가 마치 남녀 평등을 위해 꼭 필요한 첫 걸음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논의 전체를 흐린다고 본다. 게다가 그 덕분에 정치인들이 이때다 싶어 편승하고 있다는 게 더 기막힌 일이다. 군 복무자를 국가 유공자로 대우하여 예우하겠다는 김병기 의원의 발의는 오래 전에 위헌 판결로 종식된 군가산제 논의를 다시 끌고 와 과거와 똑같은 남녀 갈등에 불을 붙이고 있다. 당시 헌재는 '제대군인에 대해 여러가지 사회정책적 지원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공동체의 다른 집단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할 균등한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며 '군 가산점제도는 아무런 재정적 뒷받침없이 제대군인을 지원하려 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여성과 장애인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정했다.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한들 균등한 기회를 박탈하고 여성과 장애인의 파이를 빼앗아 남성에게 돌리겠다는 취지의 주장을 다시 들고 올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가장 화력이 보장되는 안정된 카드를 꺼내들면서도 공평성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억울하면 여자도 군대 가면 된다'의 우격다짐식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게 남초 커뮤니티가 아니라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말이다.


결국 지금 여성 징병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원하는  전체 파이를 리자는 것이나 기존 제도에 대한 합당한 개선이 아니기 때문에, '남자만 당할  없지' 단순한 욕구에 따라 정치인들로서는 도리어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 들어주기' 여론을 얻을  있는 방안이 되어버린 것이다. 20, 30 청년들이 이토록 국방에 최우선의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정말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 청년들에게 필요한 지원과 사회적 제도에서 우선으로 논의해야 하는  정말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인가. 나는 무엇보다 여성 징병제  이후가 궁금하다. 우리는 정말 보다 평등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향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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