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루미 Dec 27. 2021

-25.5도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오롯이 느낀다는 것

서울 체감 -20도 '강력 한파'…서쪽 곳곳 대설 | 연합뉴스TV (yonhapnewstv.co.kr)

성탄절에 찾아온 북극발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12월 하순으로는 지난 2010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춥습니다.

아침 기온은 어제보다 더 떨어져 강원도 철원군 임남면은 영하 25.4도를 기록했습니다.

뉴스에서 말한 대로 지난 주말부터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고, 그중에서도 전국에서 가장 추운 곳이 철원이라고 한다. (지도 찾아보니 임남면은 우리 집이랑 거리가 꽤 멀고 화천과 가까운 곳이더라) 덕분에 우리 엄마, 시어머니 모두 집이 춥지는 않은지, 동파되지 않게 준비는 잘했는지 연락 주셨다.


우선, 동파방지 준비는 잘했다. 물을 한 방울씩만 나오도록 틀어뒀고, 수도계량기 위에는 안 입는 옷을, 세탁기 위에는 이불을 덮어뒀고, 세탁기 수전 역시 꽁꽁 싸매 뒀다. 그리고 나는 집이 따뜻하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우리 집은 너무 춥다.


우리 집이 추운 이유는 물리적으로 날씨가 너무 춥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보일러 때문이다. 우리 집은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교체했기 때문에 기능상의 문제는 전혀 없다. 오히려 금방 따뜻해지고 빵빵하게 틀어두면 더울 정도.


하지만, 온수만 사용할 때는 몰랐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난방을 가동하면서 기름이 하루아침에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감정 개복치인 나는 기름이 매일매일 줄어드는 것, 기름을 넣으려면 주유소에 전화해서 정유차가 와야한다는 것, 기름이 한 드럼에 22만 원이라는 사실로 인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구두쇠처럼 보일러를 아껴서 틀게 되었다.

이사 오기 전에 우리 집은, 친구들이 놀러 오면 찜질방 같다고 보일러를 끄라고 할 정도로 따뜻했는데.. 이 집이 추운 이유는 신용카드는 막 쓰게 돼도 체크카드의 잔액이 줄면 스트레스받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리고 우리 집은 32평이고, 방별로 보일러를 제어할 수 있는 밸브가 없다. 일과시간엔 나 혼자 집에서 있고, 일을 하는 동안은 거실에 있는 식탁에만 앉아있기 때문에, 난방이 필요 없는 방까지 보일러 가동함으로 인해서 기름이 닳는다는 그 사실이 꽤나 스트레스다.


남편은 우리가 따듯하게 지낼 정도로는 돈을 버니, 제발 스트레스받지 말고 보일러를 틀라고 사정하지만 잘 안된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아끼고 항상 절약만 하느냐? 그건 또 아니고, 지금도 아이맥 사고 싶어서 기웃거리고 있다.

나도 나 스스로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되는데, 이 포인트에서 우리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 집에 가면 보일러를 틀어뒀다고 하시는데도, 발이 너무 시려서 항상 앞꿈치로 걸어 다녔다.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이해되지 않던 할머니의 모습을 내게서 발견하고, 그냥 할머니를 닮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시골로 이사 오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오롯이 느낀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내가 말했던가?

12월이 되면서 좋아하던 러닝도 못하고, 집도 너무 춥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을 역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고 있다. 기념으로 오늘은 보일러를 조금 더 따뜻하게 틀어봐야겠다.


눈은 잘 안보이지만, 대충 얼마나 추운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사진.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에는 색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