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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미 Jan 03. 2023

2022년 회고

주말 동안 서울 시누집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시누가 아파트에서 열리는 장터에서 닭강정도, 핫바도 사 주고, 31일엔 케이크에 초도 같이 불고, 시누가 매생이굴떡국도, 소꼬리찜도, 낙지볶음도 해주고, 하얏트 테판에서 맛있는 밥도 먹고, 집에 오는 길엔 어머니께서 인형도 사주시고, 용돈도 주셨다. 행복한 연말 연초였다.


그리고 31일,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연락을 받고 센치해져서 인스타스토리에 올리려다가 참았던 2022년 회고를 본격적으로 해본다.


2022년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8월엔 새 생명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고, 11월엔 시아버님을 잃었다.

내 뱃속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는데, 나와 가까운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적은 인생에서 처음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기다리던 아버님께 임신소식을 알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를 직접 보셨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리고 그러지 못했던 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평생의 한이 되겠지만, 장례식장에서 나를 만나는 모든 아버님의 지인분들이 '할아버지 된다고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라고 하셨으니 그만큼 기뻐하셨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걱정이 많은 나는 흔히 말하는 안정기가 될 때까지 시댁에 알리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 시누가 혹시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함께 슬퍼하는 게 맞다고 빨리 알리라고 해서, 병원에서 아기집을 보고 온 날 양가에 영상통화로 알렸다. 아마도 이건 내가 2022년에 가장 잘 한 일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1월엔 이사를 했다.

철원 내에서의 이사였지만, 이제 걸어서 15분이면 터미널을 갈 수 있고, 고작 20개지만 배민으로 배달을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지어진 지 10년밖에 안된 방이 세 개 있는 아파트라 참 좋다.

한국역사상 우리 세대가 부모보다 가난하게 사는 첫 세대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대학시절에는 '엄마아빠보다 큰 집을 내가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취업을 하고는 당연히 서울에 계속 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아파트를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다.

비록 위치가 철원이긴 하지만, 지금은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아파트를 사진 못했지만 살고 있긴 한 것이다. 이걸 운이 좋은 거라고 해야 할지 약간 망설여지지만, 햇빛이 잘 들어오는 날 거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행복하다고 느낀 날이 분명히 있었으니 나는 행복한걸로 한다.

이곳에서 2024년 12월까지는 있어야 하니, 조금 더 정을 붙이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창의 반밖에 못 가리던 커튼을 대신해서 커튼도 주문했다. 우리 아기와 함께 살 첫 집이니 앞으로 이 집이 더 소중하고, 아마도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집이 아닐까. 더 소중하게 아껴야지.


3월엔 수술을 했다.

태어나서 수술은 처음이라, 수술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언제가 하면 되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그 시기를 정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정기검진 갈 때마다 불안한 것도 싫었고, 부인과 질환이었기 때문에 임신 후에 호르몬변화로 혹시나 급작스럽게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지 걱정 되었다.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는 수술하기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022년 초에 수술을 결정했는데 정말 잘한 것 같다.

고작 복강경 수술이었지만, 아무래도 몸에 칼을 대면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해서 많이 망설였는데, 수술 후에 급격히 체력이 잠시 떨어졌던 체력은 금방 회복을 했고, 수술하고 나서도 통증이 거의 없었다. 회복실에서부터 너무 멀쩡해서, 남편이 수술하고 온 게 맞나 생각했을 정도. 회사가 휴가가 많은 편이고, 2주 동안 휴가를 쓸 수 있게 배려해줘서 푹 쉬고 복귀할 수 있었다.


4월부터는 캠핑을 열심히 다녔다.

철원에서 주말에 할 게 없기도 했고, 겨울 내내 주말에 집에만 있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철원이나 포천캠핑장만 다니긴 했지만, 매 캠핑이 행복의 연속이었다.

캠핑장비 사느라 돈은 많이 잃었지만, 남편과 나 둘이서 평생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아이와 함께 캠핑을 하게되면, 우리 둘이 했던 캠핑의 추억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줘야지.


6월에는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아버님이 연초부터 올해 제주도 여행을 가야 한다고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말씀하셨다. 대놓고 휴가를 쓰라고 말씀하셨을 정도. 아버님께서 모으신 돈으로 돈 한푼 안쓰고 아버님 주도하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 제주도 여행이 되어버렸다.

시댁에 가면 아버님께서는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밖에 계시기 때문에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하는데, 제주도에서는 내내 붙어있다 보니 이야기를 많이 했다. 숙소에서 내가 마음샌드와 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고 커피를 내려달라고 하셔서, 같이 커피를 마셨던 장면과, 제주 공항에서 이번 여행에서 뭐가 제일 좋았냐고 여쭤봤을 때, 우리와 함께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고 대답하셨던 장면은 제주도 여행 중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로 남아있다.

그리고 여행영상을 만들려고 카메라를 들고 가서, 3분짜리 영상을 만들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참 잘한 일이다 싶다. 앞으로도 시간이 될 때마다 영상을 많이 남겨둬야지.


7월에는 헬스를 등록했다.

테니스는 21년부터 꾸준히 하고 있었고, 헬스도 같이 하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었다. 근육이 생기는 느낌이 좋아서 단백질도 열심히 사 먹었고, 거의 매일 운동하면서 삶에 생기가 있어졌다고나 할까.

8월 말에 임신한 것을 알게 되면서 테니스도 헬스도 캠핑도 못하고 있지만, 다시 테니스와 헬스와 캠핑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방금 애플워치가 알려줬는데, 지난 21주 동안 평균 운동시간이 줄었다고 알려줬다. 귀신같다.)


9월에는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했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미니멀라이프는 내 인생의 목표였는데, 드디어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쁘다. 앞으로도 삶의 태도로 평생 가져갈 것이다.


11월에는 상을 치렀다.

시댁에서 2주 정도 지내고 철원으로 돌아왔는데, 남편이 그렇게 오래 휴가를 쓴 것도, 그렇게 오랜 기간 시댁에 머무른 것도 처음이었다. 그 시간 동안 어머니와 많이 가까워졌다. 역시 관계는 함께 한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맞나 보다.


11월 말에는 잔나비 콘서트를 갔다.

남편은 잔나비를 정말 좋아한다. 대구에서 철원으로 오는 내내 잔나비음악만 들을 정도로. 남편이 콘서트장에서 라이브를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알고 10월에 미리 티켓팅을 해뒀다. 콘서트장에서 슬로건도 샀는데, 남편이 콘서트 보는 내내,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많이 좋아해서 나도 좋았다. 그리고 나도 잔나비가 약간은 더 좋아졌다.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게 되는 것은 큰 기쁨이다.


12월에는 아빠의 은퇴파티를 위해 대구에 다녀왔다.

아빠는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은퇴한 후, 그 회사 계열사에서 몇 년째 일을 하고 계시는데(심지어 소속이 달라졌을 뿐 같은 곳으로 출근함) 올해 연말이 진짜 은퇴여서, 맛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순금을 선물했다. '지난 37년간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달려오신 아빠의 새로운 인생을 응원합니다!'라고 썼는데, 아빠가 회사 사정으로 일단 4월까지 계약을 연장했다고 해서 약간 분위기가 식었지만.. 좋은 일이니까 일 년 후에 다시 은퇴파티를 하기로 했다. (아빠가 38년으로 순금 다시 주냐고 물었는데 음..)


12월 말에는 남편을 지오피로 보냈다.

많이 슬펐지만, 24시간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꽉 채울 수 있어 즐겁다. 앞으로 오롯이 나 혼자 보낼 시간들도 기대된다.


올해의 영화 / 탑건: 매버릭

올해의 드라마 / 원 데이 앳 어 타임 (넷플릭스는 시즌4를 내놓아라)

올해의 여행 / 제주도

올해의 외식 / 아이가 생긴것을 알고 간 민통선한우촌

올해의 캠핑 / 8.13-8.15 두루웰캠핑장

올해의 콘서트 / 잔나비

올해의 물건 / 로지텍 MX KE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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