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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작 Dec 25. 2016

반짝이는 집



5년 전쯤의 일이다. 

당시 여행 프로그램의 담당 작가였던 나는 매주 지방으로 2박 3일을 출장 다니고 있었다. 

그날은 어느 섬에서 촬영을 마치고 부둣가 근처 읍내에서 아이템을 찾아 돌아다니던 때였다.

 하늘은 먹물이 묻은 붓을 담근 듯 진한 회색빛으로 대낮인데도 어둑했고, 주룩주룩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세상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듯한 장마.


한산한 읍내, 고만고만한 풍경에 아이템 찾기를 포기할까 생각하던 그때였다. 그 집을 발견한 건. 

반짝반짝 무지개 빛으로 빛나는 집 한 채. 

처음에는 웅덩이에 고인 물 표면이 반짝이듯 담벼락에 은박으로 처리한 것이 저렇게 빛나는 걸까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설수록 믿기지 않는 모습. 그 집은 콘크리트로 담을 쌓은 집으로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녹슨 대문은 반 정도 열려있었고, 그 너머로는 물에 젖은 상자 같은 판잣집이 보였다. 거의 무너져가는 회색 담벼락, 그 위에는 빼곡하게 깨진 유리조각들과 인형의 머리들, CD들, 그 외에 비닐 소재의 폼폼같이 반짝이는 물건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그리고 담벼락에 넝쿨을 엮듯 검정 줄을 여러 개 늘어놨는데, 그 줄에는 은박지, 반짝이 가루를 뒤집어쓴 변신로봇 같은 것들이 묶여있었다. 

기묘한 콜라주 같은 담벼락, 어쩐지 차가운 손이 닿는 듯 오싹한 기분이었다. 


담당피디와 내가 발을 못 떼고 담장 앞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판잣집 안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백발에 키가 작은 어르신이었는데, 부은 듯 푸석푸석하고 어두운 안색이 어딘가 편찮아 보이는 느낌이었다. 

어르신은 우리를 보더니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방송국에서 나왔냐고 물었다. 

피디가 든 방송용 카메라가 눈에 띄었나보다. 우리는 00 여행 프로그램인데 주변을 둘러보다가 신기해서 구경하고 있었다며 인사를 드렸고, 할아버지는 반색을 하며 들어오라고 적극적으로 권하셨다. 

피디와 나는 우물쭈물하며 머뭇거리다가 할아버지를 따라 집 안에 들어섰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둘 다 20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막 3,4년 차였던 때라 어리숙했던 것 같다. 

판잣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엌 겸 거실인 아담한 공간이 나왔는데 곳곳에 신문, 책, 인형들이나 장식품 같은 것들이 쌓여 있어 앉을자리를 찾아 물건을 적당히 한쪽으로 밀어야 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자리에 앉자 목말랐던 사람이 물을 마시듯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매일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 라디오로 전파를 보내고, 텔레비전으로 영상을 보내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북한이 지금 이 밑까지 땅굴을 파고 왔으며 이렇게 사람들을 보낸다. 

이야기하는 도중 몇 번을 아니라고 말씀드렸지만, 할아버지는 우리의 말은 듣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주파수가 맞지 않은 라디오의 소리처럼 계속 듣다 보니 어쩐지 목 뒤가 서늘해지는 느낌. 

누군가 쫓아오듯 쏟아지듯  말이 이어지는데, 급히 “장난감이 많네요~”라며 이야기를 치고 들어갔다.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별 뜻 없이 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는 사람들도 가져다주고 자기도 여기저기서 많이 모아 온다고 대답을 하시며 쓰윽 주변의 장난감들을 둘러보셨다. 그 순간 아. 이게 할아버지의 병사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감들을 훑어볼 때 풀어지던 어르신의 눈동자. 그리고 그때 집에 가득하던 위화감도 긴장감도 사라져 버렸다. 그곳은 그저 고물들이 쌓여있는 오래된 공간, 버려졌던 장난감들과 반짝이는 물건들이 충성스러운 기사가 되어 주인을 지키는 한 어르신의 집이었다.   

 그 집에 한 15분 정도 있었을까. 그곳을 나선 후 다시 빗속을 걸으며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쩐지 물에 젖은 동화책을 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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