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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톨이 Jul 26. 2016

마리 양의 Bucket list #2

유기견 코카 마리의 죽기 전 꼭 해봐야 할 것들

사진은 찍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나만의 방을 하나 만드는 것

 버킷 리스트 no.1 바다 보기 그리고 가족사진 찍기


마리는 바다를 본 적이 있을까? 누군가의 가족으로 가족사진에서 웃어본 적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아니라면 마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마리의 버킷 리스트 1번을 '바다 보기 그리고 가족사진 찍기'로 정했다. 그 길로 가방과 우리 가족이 먹을 간식을 싸서 안면도를 향해 액셀을 밟았다. 집에서 멀지 않아 차를 오래 못 타는 마리에겐 딱일 것 같아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내 곧 안면도에 도착했고, 넓은 안면도의 백사장에 마리를 내려놓고 목줄을 풀었다. 


태양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를 그녀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닷물의 차가움과 소금을 머금은 바다만의 특유의 내음은 그녀의 잠들어 있는 감각을 깨웠다. 바다. 끝이 보이지 않지만 어디선가는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 그 파도를 네발로 자유롭게 걷는 그녀. 파도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고, 타고 넘어가 보기도 하고, 바다를 맛보고 그 짠맛에 고개를 가로 젓기도 하는 꽤나 분주한 그녀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나의 딸에게 바다는 어떤 존재일까? 눈이라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감각을 상실해버린 그녀에게 바다는 무서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한 번은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바다를 느껴보게 해주고 싶었다. 그 차가움을, 그 신비로움을. 자유롭게 경험해보게 하고 싶었다. 목줄에 매여서가 아니고, 누군가가 힘으로 이끄는 방향이 아니고, 그녀가 가고 싶은 곳으로, 냄새가, 바람이, 파도가 이끄는 대로 자유롭게 다녀보게 하고 싶었다. 언젠가 그녀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꿈을 꿀 때 바다가 꿈에 나오고 바다가 선사하는 자유를, 시원함을, 아름다움을 다시 꺼내 볼 수만 있다면 나도 그녀도 행복할 것 같았다. 바다에 오길 잘했다.

어느새 동생과 함께 달리고 있는 그녀를 보았다. 웬만하여서는 뛰지 않는 양반집 규수인 그녀도 이 넓은 바다 앞에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을 바닥의 감촉, 모래의 까끌함과 진흙의 부드러운 그리고 질척거림. 발에 차이는 갯벌의 친구들. 치명적인 그녀의 베이지색 털을 흩뜨려 뜨리는 바람의 청량감까지. 아무리 얌전 빼기 좋아하는 새침한 그녀라도 이런 유혹에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바다에 오길 잘했다.


사진은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사진이란 누군가의 마음에 영원한 전세를 놓는 것이다.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도록. 잠깐이라도 그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 '생각나니? 우리 행복했잖아?'라고 물을 수 있는 우리만의 비밀 아지트. 그것이 사진이라고 믿는다. 그녀와 우리 가족의 아지트를 마련하기 위해 파도 위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기를 얹었다. 타이머를 맞추고 파도 위를 첨벙첨벙 뛰어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가족이 되고, 우리 가족의 아지트가 영원히 임대된다.


마리는 우리의 가족이다. 평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우리의 딸이다. 마리와의 영원한 헤어짐을 조금씩 준비하느라 무겁고 습기 가득 찬 마음에 조금은 햇살이 내린다. 이렇게 우리의 아지트를 마련했으니 언제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바다에 오길 잘했다. 정말이지 오길 잘했다.

우리만의 아지트

바다에 다시 가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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