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호수 편
우리는 물(water)의 여러 형태에 대해 어려서부터 학습한다. 수증기, 물, 얼음 등은 물의 형태에 따른 분류이다. 지질학적으론 강과 개울, 계곡 또는 협곡, 호수, 폭포 등으로 분류된다.
물에 대한 이야기로 여행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 모든 물에 대한 모든 과학적 분류를 순수한 형태의 자연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트리글라브 국립공원과 블레드 지역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물로 형성된 자연에 살아가는 여러 생명체의 삶에 대한 진귀한 경험과 순수한 자연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슬로베니아이기 때문이다.
트리글라브(Triglav) 산은 율리안 알프스(Julian Alps) 산맥에 있는 가장 높은 산(2,864m)의 이름이다. 율리안 알프스란 이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식 줄리어스 시저)가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본인의 이름을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이 산맥은 이탈리아 북동부에서 슬로베니아 서북부에 이르는 석회암지대의 산맥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돌이나 바위가 석회암인 흰색이나 회색이다.
이 산맥에서 슬로베니아 쪽의 가장 높은 산이 트리글라브산이고, 보히니(Bohinj) 호수를 포함한 이 지역이 트리글라브 국립공원이다. 또한,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트리글라브는 슬로베니아인에겐 의미가 남다른 산이다. 이 산의 산봉우리가 3개로 보여서 이름이 지어졌다고도 유래하고 있다. 이 3개의 산봉우리는 슬로베니아 국기에 있는 3개의 산 모양과 50센트 동전에도 등장할 만큼 슬로베니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중요한 곳이다.
이 지역은 유명인사가 자주 방문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표적 실존주의자였던 쟝 폴 샤르트르나 영국의 대표적 추리 소설가인 아가사 크리스티가 자주 방문했던 곳이라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자주 읽었던 나로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며, 진정한 천재 작가로 생각하고 있는 분이다.) 감흥이 남달랐다.
그러나, 그녀도 여기선 아무런 작품도 쓸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라고...
이 아름다운 슬로베니아의 자연을 지질학적 분류로 나누어 소개해볼까 한다.
I. 호수
1. 블레드(Bled) 호수 지역
많은 한국인 단체 관광버스가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2014년 이 곳에 왔을 때완 확연히 달라진 인기이다. 물론 중국인 단체 관광객 수도 이에 못지않다.
이 지역은 이미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관광지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촬영지였다. 그래서, 슬로베니아의 바닷가 도시인 피란(Piran)과 함께 최근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빙하로 인해 형성된 블레드 호수는 호수 동북쪽 바위산에 위치한 아름다운 블레드 성과 호수 안에 있는 작은 섬인 블레드 섬으로 인해 그림과 같은 경치를 만들어 낸다.
섬 안엔 99계단을 오르면 다다르는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다. 이 섬은 선사시대의 유적이 있을 정도로 유래가 깊다. 교회가 생기기 전엔 사랑과 풍요의 여신 지바의 성지였다고 전해진다.
호숫가에서 이 섬까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인 pletana는 넘쳐 나는 관광객으로 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배가 줄지어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호수 위에서 기차가 줄지어 지나가는 것 같다. 3년 전에 같은 나룻배를 타려고 오래 기다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때는 사람 수가 채워지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 배가 출발했다. 역시 단체관광객의 힘은 대단하다.
더 크고 건축물이 별로 없는 보히니 호수에 비해 블레드는 멋스럽다. 아름다운 경치는 합스부르크 시절에도 명소로써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유고슬라비아 왕국 시절엔 여름 별장이 있었고, 유고슬라비아의 사회주의 공화국 전성기를 이룩한 유명한 크로아티아 출신의 티토의 집권 시기인 1947년에도 이곳에 별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고 권력층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빼어난 경관이 지금은 슬로베니아 관광의 중심지로써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호수에서 신비로운 3가지 자연현상을 경험했다. 여행기 서두에 이야기했던 물(가)에 사는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다.
잠자리가 허물을 벗어 날개를 말리고 날아가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것이다. 허물을 거의 다 벗고 날개 등 몸을 말리고 날아가는 모든 장면을 아이들과 천천히 지켜보았다. 주변에 먹이를 구하며 서성거리는 새들을 쫒아가며, 생명의 신비로움을 아이들이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여행의 추억거리이자 산 공부이다.
다른 하나는 나뭇가지가 드리워진 호숫가에 모여 쉬고 있는 물고기 떼이다. 주변에 낚시군이 많이 있었는데, 절대 이곳을 발견하지 못하길 마음속으로 빌어 보았다. 거의 움직임이 없이 떼를 지어 쉬고 있는 물고기 떼가 마냥 신기했다. 아내는 이 나무가 물고기들에게 그늘과 아늑함을 느끼게 해주어 물고기가 쉬고 있다고 아이들에게 감성적인 설명을 해 준다. 상황과 참 어울리는 설명이다.
그리고, 귀엽고 예쁜 오리가족 이야기다. 엄마 오리와 여러 마리 새끼가 줄을 지어 호수를 가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자연과 함께하는 생명체를 관찰하고 마음에 담는 데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단체관광을 쫒아다니다 보면 시간 제약으로 소소한 자연의 움직임을 살 필 여유가 없다. 이번 여행을 통해, 관광지의 경치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한가로이 호숫가에서 앉아 오랜 시간 자연을 살피고 음미하는 것도 물이라는 장소와 휴가라는 시간이 준 축복이다.
보히니 호수에선 아예 돗자리를 깔고 한 참 동안이나 우리 가족 만의 호수를 만끽했다.
2. 보히니(Bohinj) 호수
블레드 호수와 불과 26Km 떨어진 보히니 호수는 블레드만큼 아름답고 깨끗한 호수이지만, 한적하고 큰 호수이다. 블레드와 같은 눈길을 끄는 건축물이 그다지 없지만, 그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주는 느낌은 우리 가족에겐 더 알맞은 호수였다. 보히니 호수는 사바 보힌스카 강과 맞닫아 있는 호수이다. 보히니란 이름의 유래도 무척 흥미롭다. 전설에 따르면 신이 사람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는데, 몇몇 사람들에겐 나누어주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땅을 달라고 조르지 않는 조용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신은 그들의 겸손함과 인내심에 감복하여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땅을 주었다고 한다. 그 신을 Boh라고 부르기 때문에 보히니라고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땅이다.
보히니 호수는 우리 가족에게 참된 휴식과 평온이란 의미를,, 그리고 그로 인한 행복감을 준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보히니 호수 중간 정도에 위치한 호숫가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고 앉거나 누워 느꼈던 물소리, 바람소리, 햇볕의 따스함,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번 슬로베니아 자연 여행에서 만족감을 UP 시켜주는 소중한 요소들이었다.
우리 가족 여행에서 물가를 갈 때 빼놓을 수 없는 필수 품목은 돗자리이다. 유럽의 여러 해변이나 호수에서 자유로운 휴식을 취하려면 한국인에겐 돗자리가 간편하고 좋다. 주로 유럽인들은 옷이나 긴 수건들을 이용하지만, (또는 그냥 맨 바박에..) 흙이 묻거나 차갑고 딱딱해서 불편하다. 아이들과 같이 하는 여행에선 눕거나 쉴 때 돗자리만큼 편한 것이 없다. 역시 준비해 온 보람이 있다. 돗자리는 어딘가에 어느 정도는 머무르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만큼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자연을 느끼기엔 느긋함이 필요하다.
주변에 한동안 사람이 아무도 없어 오로지 우리 가족만을 위해 호수가 준비된 듯한 사치스러운 감상이 느껴진다.
한참 동안의 평온함의 자리를 정리하고, 보히니 호수에서 유명하다는 명소를 찾는다.
수사슴의 노력 없이도 호수는 계속 평온할 것 같다.
그리고, 보히니 호수에서 상징과도 같은 성요한 침례교회와 석교가 있는 곳을 찾았다.
이 교회는 1,300년 이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에 바로크식 탑을 더한 곳이다.
교회 안엔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는데 들어가 보진 못했다.
여기는 호수의 초입이자, 우리 가족이 쉬며 보았던 한가로운 호수 유람선을 탈 수 있는 곳이다.
가톨릭 성당이 아닌 침례교회가 있는 것이 의외였다. 다음날 Bitnje마을을 지나가다 본 성모승천 교회도 침례교회였고 보힌스카 비스트리차에도 침례교회가 있으니, 이 지역은 침례교가 전파된 곳인 것 같다.
이 교회는 이번 여행의 압권이다. 지나가다 차를 세우고 그 아름다움을 감탄하기는 처음이다.
산 배경과 너무 잘 어울리는 한 폭의 서양화다.
이 성모승천 교회는 15세기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건축연도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보히니의 맑은 호수 물에 비치는 성당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블레드 못지않은 아름다운 호수 임을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