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활 적응기 I
유럽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3달이 지나간다.
아직도 서울 강남의 복잡한 도심에 완전히 적응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30년을 살았던 고국이 아닌가?
지난 10년간 살던 유럽 두나라에서 처음 겪었던 어색함, 불편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의 3달 기간 중 또 20여 일을 캐나다 토론토에서 살아봤다.
캐나다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처음 가본 캐나다 토론토였지만 왠지 익숙했다. 마음이 편했다. 비엔나나 프라하보다 편했다.
토론토에서 그곳의 삶을 유럽과 비교하며 살펴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젠 내게 익숙해진 유럽(캐나다도)식 삶의 방식이 한국(서울 중심)의 그것과는 어떠한 지 비교해 보려 한다. (주관적인 경험에 따른 것이라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출근 모습이 다르다.
강남으로 출근할 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빠르다. 지하철도 빠르고, 버스 전용차로도 있으니까!
한국은 대중교통이 참 잘 되어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좁은 곳에 모여서 사니까 당연한 일이다. 어느 대도시나 비슷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럽에선 인구가 많은 대도시는 그렇게 많지 않다.(미국이나 중국, 한국 등 아시아와 비교한다면..)
EU 국가 중, 런던을 제외하면 유럽에서 4백만 명이 넘는 도시가 없다. 2백만 명이 넘는 도시도 5곳밖에 없다. EU가 28개국으로 이루어져 있고, EU 전체 인구가 511.8백만 명(2017.1월 기준, Eurostat 발표)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은 셈이다. 백만 명만 넘으면 유럽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대도시란 느낌을 가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해도 백만 명이 넘는 도시가 10곳이나 된다. 성남시가 97만 명이 넘었으니 언젠가 백만 도시에 합류될지도 모른다.
참고로 잠시 내가 머물렀던 캐나다 토론토시 인구는 2백6십만 명이고, 광역 토론토(주변 24개 위성도시 포함 GTA로 불림, Greater Toronto Area)로는 6백만 명이 넘는다.
도시의 인구 규모가 다르니 생활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유럽 인구는 비교적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소도시나 마을에서도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이사를 하는 인구도 그다지 많지 않으니, (그래서 임차로 나온 주택을 구하기 쉽지 않다.) 자기가 사는 도시나 마을에 대한 애착도 강한 편이다.
서울처럼 인구가 많은 도시는 기본적으로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어야 한다. 토론토도 지하철이 있고 노선버스도 많다. 대중교통이 비교적 발달되어 있지만, 역시 한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따라가지는 못힌다.
반면, 유럽의 도시들은 지하철이 없는 대도시도 많을뿐더러, 버스 노선도 그렇게 많지 않다. 단, 버스 노선별 시간 준수는 거의 정확하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남부는 좀 그렇지 않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긴 하지만, 시간 소모가 크다. 이유는 노선이 많지 않아 갈아탈 때 기다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많이 이용한다. 유럽 사람들은 주차공간이나 도로가 협소해 소형차를 선호한다. (합리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라 자신의 사용 목적상 클 필요가 없으면 작은 차를 산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형 SUV를 선호하기도 한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니 출퇴근에 차량 사용이 더 필요한 것이다.
대중교통의 이용 모습도 다르다. 한국에서 수도권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대다수 사람들이 휴대폰을 이용하여 뭔가를 하고 있다.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경우도 많다.
반면 유럽의 대중교통 수단에서 휴대폰이나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물론 젊은 사람들은 가끔 휴대폰을 보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중교통 이용 고객은 주로 청소년이나 장노년층이다. 이야기를 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은 있지만,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버스나 지하철의 구조도 다르다. 유럽의 버스들은 보통 크기가 크고 길다. 좌석은 더 딱딱하다. 가장 큰 차이는 좌석의 배치 형태가 우리나라 버스처럼 일률적으로 같은 쪽을 보고 있지 않다. 유럽의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좌석의 배치 구조가 다르다. 그래서 좌석 수도 적은 편이다. 버스의 크기가 우리나라 버스보다 크고 길어서 좌석의 부족 부분을 해결해 준다.
토론토에서 타 본 버스는 우리나라 버스와 구조가 비슷했지만, 좀 더 폭이 좁았다.
사소한 것이지만, 지하철이나 버스의 좌석 배치에도 나름의 생각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일행이나 가족이 탈 경우를 위해 구성된 배치이니까. 대중교통 이용인구가 적어서 그런 배치가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대중교통에서 승객들의 인사나 눈 맞춤을 보면 다른 것이 재미있다. 우리나라에선 버스나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모르는 사람과는 인사를 하지 않고 눈을 맞추지도 않는다. 캐나다에선 붐비지 않는 이상,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옆사람과 잠깐 눈인사를 하거나 How are you?, Hello 등 인사를 건넨다.
유럽에선 어떨까? 내가 만난 수많은 유럽인들은 나라마다 좀 차이가 있지만, 잘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물론 대도시일수록 더 그렇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대중교통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출근 후, 사무실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자기가 일하는 사무실이므로 대다수 아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상사나 연장자에게 꼭 인사를 하는 편이다. 다른 부서나 자기 자리에서 멀더라도 일부러 찾아가서 인사를 한다. 인사를 하면 좋은 인상을 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럽이나 북미 사람들은 자기 팀 등 눈에 보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인사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사(방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대부분 임원이거나 직급이 높음)에게 굳이 찾아가서 인사를 건네지는 않는다. 유럽인 상사는 사람들의 인사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가 본 캐나다나 유럽의 출근 후 사무실 풍경은 자유롭고 생기가 넘친다. 커피(사무실에 커피 머신이 구비되어 있거나, 커피를 출근길에 사서 들고 옴)를 마시며 가벼운 담소를 나눈다. 직원용 휴게실 등(보통 직원용 휴게 공간이 별도 구비되어 있음)에서 만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일보단 사생활 등 가벼운 담소를 나눈다. 근무 시작 시간엔 자리로 돌아가지만, 요즘엔 개인별 유연근무제(flexible working time)를 실시하는 회사가 많아 좀 더 시간에 자유로운 편이다.
출근하자마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 PC를 바라보거나, 사외나 회사 건물의 카페에서 같은 팀 동료(혹은 항상 만나는 사람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과는 다르다.
사무실은 일하는 곳일 뿐 아니라 직장 동료들과 교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내가 한국에서 일하는 사무실에선 매일 정해진 시간 사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방송에 따라 맨손 체조를 한다. 생활 정보가 나올 때도 있고, 회사의 정보를 알려준다. 난 체조를 열심히 따라 한다. 하루에 몸 움직일이 없는 사무직의 환경에서 어쩌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체조를 대강한다. 하기 싫지만 의무감에 설렁설렁한다. 자리도 비좁아 체조를 하기에 적절한 공간도 아니다.
유럽이나 북미의 사무실에서 체조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단체 체조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유럽이나 북미 사람들이 몸을 덜 쓰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여가시간에 스포츠 활동을 즐긴다. 알아서 자신의 건강과 몸을 챙긴다.
복장은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유니폼 근무자가 아닌 이상 특정한 복장의 규제가 없는 것이 유럽과 북미 쪽의 직장문화이다. 유럽 회사에선 복장 규정이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본인의 업무나 일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입는다. 양복, 단정한 복장, 비즈니스 캐주얼 등 정해진 룰이 있는 우리나라 직장과는 좀 다르다. 요즘엔 한국도 근무복장이 많이 자율화되었다. 하지만 원래 있던 것이 없어진 것과 처음부터 없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자율복장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신경이 쓰인다. 라운드 티는 사실 입고 다니기 힘들다. 어떤 옷이든 자신의 취향에 따라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지와 타인의 눈을 신경 써서 입어야 하는지 차이다.
퇴근시간에 대해선 참 할 말이 많다. 유럽이나 북미 기업에선 법률로 정해진 근무시간이 엄격하다. 오버타임에 대한 엄격한 적용과 수당 지급은 칼 같다. 오버타임을 하는 것은 자신이나 회사에 대한 부담을 준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급료를 받는 것이 최상의 근로 상태이다. 자신의 시간도 관리하고, 회사의 추가 비용도 없앤다.
한국에선 정규 퇴근 시간이 모호할뿐더러 대부분 오버타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못한다. 근무하는 시간과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정비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지런하고 근면함을 미덕처럼 여긴다.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이 부지런한 것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있지만, 어쨌든 일찍 출근 해 늦게 퇴근하는 사람을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시간의 관리는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다음 글은 학교와 교육, 그리고 학부모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