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의 의식 구조 이해 (III)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살고 있는 시간대는 다를 수 있어도, 동시대의 지구인은 동일한 시간 속에 살아간다. 동일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노동'은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수단이다. 어떤 사람에겐 인생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투입한 시간'에 비례하는 대가(소득)로 살아간다.
현대 사회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과도한 노동시간은 우리 사회의 문제로 늘 지적되어 왔다. 한국도 올해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법규화 되었다. 소득계산에 적용되는 노동(근로) 시간에 대한 노동부의 해석도 나왔다. 키는 '근로시간'의 정의이다. '근로시간'을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종속되어 있는 시간으로 보았다. 사용자의 지휘·감독은 명시적인 것뿐 아니라 묵시적인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해석에 따르면 '회식'은 '근로시간'이 아니고, '접대(상사의 지시에 의한)'는 '근로시간'이다. 사용자가 통제하는 시간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유럽인과 직장생활을 하면서 노동과 시간에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동일 문화권 사람이라도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이란 기간은 한국 직장인의 의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그들만의 공통점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유럽 직장에선 근로시간의 주도권이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상사가 갑작스러운 야근을 요구하면 거부하거나, 하더라도 흔쾌히 하는 사람이 드물다. (유럽인은 예외 없이 그렇다가 아니라, '한국인에 비해 그렇다'라고 이해하면 된다.) 개인 일정(정규 노동시간 외)에 없는 사용자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관리가 비교적 철저한 유럽인의 입장에서 볼 때, 초과근무를 자주 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다. 시간 외 근무를 많이 하는 사람은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규시간에 열심히 하지 않거나, 업무능력이 모자라 일을 제때 끝내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또한 초과근무를 하는 것 자체가 회사에 피해를 주는 일로 느낀다. 회사에선 초과수당을 지급하여야 하므로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유는 인원이 부족하거나 업무분장이 잘못되어 있는 때이다. 이런 경우라면 최대한 빨리 충원이나 업무 조정이 되어야 한다. 노동법뿐 아니라 그들의 인식 때문에 일상적인 초과근무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유럽인은 시간관리가 철저한 편이다. 한국인과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한국인은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며 사내에 돌아가는 정보의 흐름이나 가십거리를 아는 것이 시간 내 업무를 마무리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럽인에겐 본인의 업무를 정해진 시간에 끝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커피나 담배를 피우며 업무 외 다른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 자신의 일은 근무 시간 내에 끝내야만 올바른 직장인이며,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근무시간 내에 마무리할 수 있으며, 동료와 어느 정도 수다를 떨 수 있는 기본적인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회사에서의 일반적 노동시간인 것이다.
노동자는 근로시간에 관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스스로 시간관리를 철저히 해 생산성을 높여 절대적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 노동시간 개혁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