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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건 Sep 14. 2022

내 방과 역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곧이곧대로, 지난 오 년간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밤의 고가도로와 두근거림을 마음에 담아두고 내동 살았다. 오늘 쓰러지고 내일 죽어도 놀라지 말아야지, 했다. 짧게 적어보는 내 방과 역사. 남향의 창이 크게 뚫려 있고 바로 앞에는 강아지가 산다. 강아지는 우리 집에서 사는데 방 앞 베란다에 깔린 패드와 한가득 쌓인 사료 더미와 물통을 근거지로 두고 산다. 강아지 방과 내 방을 구분하는 통유리 문을 열어두는 계절이면 강아지의 배변 여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람을 타고 오는 냄새로 강아지의 목소리로. 강아지는 발자국을 찍고 발소리를 내며 문턱을 지나 나간다. 아침에 방문이 닫혀 있으면 발로 긁으며 짖는다. 자주 쓰러지고 가끔 소파 근처에 엎드려 잔다. 멀리서 보면 미동이 없어 가까이서 봤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등을 보다 오늘 쓰러지고 내일 죽어도 놀라지 말아야지, 했다.

 내 방에는 무엇이 있나. 작년에 푼 혹은 풀지 않은 문제집들이 책장에 있고 그 밖의 책장에는 모조리 책, 책이다. 양경언의 비평서도 황정은의 장편 소설도 김애란의 산문집도 있다. 그리고 김사월 산문집 <사랑하는 미움들>이 있는데 그것으로 내가 사랑하는 노래를 쓰고 부른 가수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비건vegan을 지향하는 삶을 알았다. 내친김에 김사월이 공저한 <비거닝>도 샀다. 환경과 윤리를 근거로 동물성 제품을 소비하지 말자는 뚜렷한 목소리가 가득하다. 책 읽는 다리 사이로 강아지가 이리저리 지나다녔고 꼬리에 실을 달았는지 그대로 나의 삶은 비건과 묶였다. 감정적인 동조라기보다 부끄러움이었다. 죽음에 차등을 두고 당장에 먼, 그러나 실제로는 멀지 않은 죽음에 눈 돌린 스스로 부끄러웠다. 돈을 내고 가난을 이야기하는 것 같이, 비싼 공연을 보며 불평등을 지적하는 것 같이. 책장의 책들이 조금씩 눈치를 줬다. 과연 네가 고민하는 것이 삶이냐, 하고. 과연 네가 고민하는 것이 죽음이냐, 하고. 하지만 김사월이 쓴 것처럼 동물 식품들을 “조금 주춤거리면서 계속 먹을 수 있었다.”* 강아지도 동물성 사료를 계속 먹었다. 2020년에 그랬다.

 2021년에는 방에서 잠만 자고 나갔다. 학원에서 수능 과목 <윤리와 사상>을 공부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과 칸트의 ‘선의지’가 좋았다. EBS 수능특강 막바지에는 싱어의 ‘동물권’이 있었다. 동물에게 권리가 있으면 식물도 권리를 갖냐고 물었던, 오래되고 어린 기억이 났다.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 아닌가요. 우리에게 주어진 힘으로 무엇인들 못 하나요. 요즘 동물권에 관심 있다고 하면 종종 듣는 말이기도 하다. 매번 어린 나를 떠올린다. 우리에게는 10여 년의 시차가 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말하는 당신과 내게 그만큼의 시차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고 다른 생활과 삶을 꾸려왔을 것이므로. 어쩌면 아주 달라서 서로 어울리는 부분이란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래서 그럴까? 그러니까 동물권이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을까? 저간의 부끄러움과 고민을 거치고 나는 동물권의 존재를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더 올바름에 가깝다고 적는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작년인데 그래도 계속 먹었다. 햄버거와 라멘을, 냉면과 콩나물국밥을 조금씩 주춤거리면서 계속 먹었다.

 이제 강아지가 없는 내 방에 무엇이 있나. 발자국이 남았다. 여전히 나는 부끄럽다. 죽음을 생각하는 오 년간 다른 죽음에 무감하고 무신경했음을 고백하며, 발자국을 본다. 낮이면 햇빛이 방바닥을 고르게 비추어 드러나는 발자국을 허리 숙여 물티슈로 닦아 없앴겠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 더는 발자국이 생기지 않으니까 그대로 둔다. 너를 키우고 내가 자라며 먹어치운 생명을 생각한다. 우리가 앞으로 더 소비했을 생명이 많다. 우리의 뼈와 살에 벌써 죽음이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 담아두었던 죽음을 부끄러워하고, 기억하고, 거실을 가득 메우던 비명을 되새긴다. 나는 놀라지 않았으나 몹시 슬펐다. 몹시, 슬펐다, 고 적으면 더 슬프다. 그간 젓가락으로 손가락으로 한 알 한 알 사료를 먹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얄궂게도, 한 알 한 알마다 생명이 있었다. 듣지 않은 비명이 있었다. 보지 않은 죽음이 있었다.

 긴 긴 비명을 내동 기억하기로 했다.

 주춤거리지 않고 멈추기로 했다.


* 김사월 <사랑하는 미움들>, 다산북스, 2019, 38쪽에서 변형하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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