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렉스키드 Aug 02. 2024

축구는 80분, 야구는 9회말, 촬영도 후반부부터다

아득해가는 멘탈을 붙잡고, 스스로 강하게 일어서는 것을 선택했다.

첫 기업 방문 촬영의 전반전이 끝났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일반인 진행자’로서, 나와 같은 ’일반인 직장인‘의 인터뷰를 얻어내고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그들도 나도 서로 모르는 보통의 사람들이니까. 업무 시간이고.


오전 촬영을 마치고, 잠시 생각했다.

인터뷰 컨디션이 아래처럼 달랐다면 더 쉬웠을까?

사방이 트여있는 거리나 큰 공간에서 촬영

별도의 공간에서 일 대 일로 촬영


전자의 경우,

인터뷰가 쉬울 수 있지만 지나가는 사람을 잡는 섭외 자체가 더 어려울테고

후자의 경우,

지켜보는 동료는 적으나 결국 인터터뷰이 vs 촬영 스탭들이라는 부담감

사실 결과론적일 것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럼에도, 하나의 값진 레슨을 얻었다.


레슨런 하나.

인터뷰이는 미리 정하고 진행하자.


취재에 응해주신 기업을 만나,
첫번째 촬영을 하게 된 이야기는 아래에서 시작

https://brunch.co.kr/@alexkidd/129


실제로 동 기업 촬영 이후에도 수많은 기업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단순했다.

취재 승인 결정은 경영진이 한다

인사/홍보 담당자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 경영진의 결정으로 촬영이 진행되지 않거나

막상 담당자나 출연하는 직원이 하기 싫어도 →  경영진이 결정하면 진행해야하는 경우가 있을뿐


그러므로, 촬영 전 도착해서
직원들의 공감을, 현장의 분위기를 사자.
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회사를 위해 얼굴을 노출하는 것이 요즘 세대에게 어디 쉬운일이겠는가. 충분히 공감한다.


오전 촬영을 마치고 스탭분들이 준비해준 커피를 마시며,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아득해진 마음이 조금 가시자, 살짝 분한 마음도 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분했을까? 스스로에 대한, 바로 그것이었다.


인트로에서 사무실 소개를 하며 조용한 분위기에 얼어버린 내 모습

인터뷰 진행에 다소 매끄럽지 못한(끊고 맺음이 적어 호흡이 길어지는) 내 진행

촬영 시간은 흐르는데 '다큐멘터리 텐션'인 상황을 보며 초조해하는 스탭들

오전 촬영을 마친 뒤, 쉬는 시간에 “고생하셨다”고 말하는 후배의 목소리와 표정


그렇게 앉아있는 내 모습은 마치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넋을 놓은 패장 같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자꾸 패배감이 엄습하려 했다.

"생각보다 나는 굉장히 탤런트가 적은 것 아닐까. 괜히 시작했나."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리라 자신했는데,

영 허우적대며 주변 걱정을 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게 아닌데. 평소의 나답지 않아. 이유가 뭘까.

앞으로도 최소 열번의 촬영을 해야하는데.

예능이 아니라 다큐를 찍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잠시 패닉으로 가려던 찰나에, 모든 사고의 회로를 멈췄다.

40년간 수많은 감정의 너울을 겪었기에, 스스로 객관화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이 위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정신을 다잡았다.


어른답자. 담당자답자.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자. 내가 책임지자.


피할 수 없다.

일반인이 아닌 진행자로 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두번째 레슨을 스스로 구했다.


레슨런 둘.

나는 개그맨이 아닌 진행자다.


그래. 억지 개그를 던지느니,

오히려 후반에는 조금 부담을 덜고 진행해보자.


커피 한잔의 여유까진 아니지만, 나는 너무 마음이 급한 상태였다. Relax하고, 불안감을 “내가 잘하는 방법들”로 이겨내기로 마음 먹었다. 하나씩.


다음 촬영은 다행히도,

오전에 게릴라 인터뷰를 진행했던 직원분과 함께 찰영 하게 되었다. 오전 인터뷰는 결정된 바 없이 현장에서 내가 붙잡고 인터뷰를 했지만, 알고 보니 점심 인터뷰를 진행 하는 부분은 이 분이 캐스팅 되어 있었다는.


아무래도 오전에 합의 없는 인터뷰를 할 때도 굉장히 잘 해주셨으니 미리 캐스팅된 인터뷰는 더 잘 해 주실 것 아닌가? 내 입장에서도 이분과 이미 구면이라 훨씬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점심 시간 촬영은 씬 특성상 별도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직원 두분을 모시고 촬영하는데, 확실히 공간이 분리되니 보는 직원들도 없고, 훨씬 경직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무드로 진행할 수 있었다. 공간 분리. 나조차도 굉장히 그것을 원했음을 촬영을 끝내고 깨달았다.


직무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질문 리스트에 있는 내용 절반 그리고 현장에서 애드립으로 던진 질문을 소화했는데, 다행히 그 중에서도 몇 가지 포인트가 최종 영상에 실릴 수 있었다.


살릴 수 있던 요소는 확실히 이렇더라

분리된 공간이라 쳐다보는 동료 직원들이 없고

원래 친한 인터뷰이가 두명이 함께 참석하고

섭외가 된 인터뷰이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음


그러다보니, 짧은 호흡으로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꼬리를 물면서 말 장난을 치는 본래의 내 유머 포인트도 살려낼 수 있었다.

그래. 진행을 하는 나를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약속된 컨디션'들이 필요하구나.


상황이 훨씬 편하다보니, 또 웃기려는 중압감을 버리다보니,

자연스럽게 내 경험(이직 관련)에 기반한 질문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원하는 대화, 리액션들이 나올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러 온 사람이 자꾸 웃겨야된다는 생각에만 집중하니,
당연히 주객이 전도 되어 스텝이 꼬일 수 밖에.
영상의 목적에 맞게, 내게 주어진 MC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니 모든게 부드러워졌다.
“오전 촬영”을 해봐서 경험이 주는 안정, 그로 인해 회복탄력을 찾은 것이 크겠지만.


하늘이 무너질 땐, 솟아날 수 있는 다음 스테이지를 한번 찾아보자. 몇 시간이든, 몇 일 몇 주든, 다음 시험이든. 분명 기회는 있다. 중요한건 철저한 복기와 마음가짐, 인내심이다

그리고 이어진 씬은 면접이었다.

워낙 유튜브 콘텐츠를 챙겨보는 타입이 아니라, 파트너사 실장님의 추천으로 찾아본 ‘유명 유튜버’의 면접 영상들을 미리 찾아 볼 수 있었다. 이를 보면서 “그와 겹치는 역할이나 접점을 최대한 피하자“는 장면들을 미리 찾아낼 수 있었다. 다행히도.


레슨런 셋.

미리 스터디해서, 유명인의 카피캣을 피하자.


가장 중요한 점은 '원래 유튜브를 안보는 내가' 사전 스터디 없이

촬영을 했다가, 누군가를 따라했다는 말을 들어봐야 혼자만 억울했을텐데,

오히려 '스터디'를 위해서 찾아본 덕분에 우려될 수 있는 부분을 사전에 방지했다는 점이다.


예능인들만큼 살릴 재능도 없고, 따라가봐야 뻔한 카피캣이 되어 조롱거리만 될텐데,

차라리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직무 이야기. 사람사는 이야기.


진지한 면접 장면을 진행하려는 찰나, 예능 포인트는 뜻밖의 포인트에서 등장했다.


면접에서 이용하려고 소품삼아 작성한 내 경력기술서에 말도 안 되는 숫자가 있던 것이다.

면접관께서 이 점을 물어보셨고, 다행히 순발력을 발휘해서 개그로 잘 넘길 수 있었다.

첫 장면을 그렇게 시작하니 면접관분들도 분위기가 녹아서 진지하게 때로는 위트있게 잘 받아주셨다.


결과적으로,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우연히 동 기업의 대표님께서도 사전 인터뷰에서 '솔직함'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으셨고,
의도한건 아니지만 솔직히 실수를 인정하고, 넘어가는 부분에서 기업 가치도 보일 수 있었다.


촬영하는 내내 과거 면접 보러다니던 기억도 나고, 압박감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절실함을 버리고, 한걸음 떨어져 위트 있게 넘기는 상황을 자꾸만 만들어서,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공감, 카타르시스와 정보를 건내주자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의 촬영을 마쳤다.

오프닝을 찍었던 로비에서 클로징까지 마치고,

스탭들이 정리를 하는 사이 나는 오전에 촬영에 대해 물어보신

관리소장님에게 가서 이만저만해서 촬영을 했고, 나는 어디서 나왔으며,

협조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자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까지 청하셨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면서,

길었던 하루를 돌아보며 다음 촬영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후련함보다 과제를 잔뜩 받은 그런 느낌이었지만,

촬영을 결정하고 참여해준 기업에게 보은하는 길은
이 콘텐츠를 계속 잘 만들어서 여기 출연하길 잘했다는
자부심과 성과(기업에 대한 관심)를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감사했던 점은, 취재기업의 대표님이다.
대표님께서 취재를 결정해주셨고, 직접 출연 하시면서 오히려 첫 번째 촬영이라 굳어있는 나를 위해서 재치있는 농담도 먼저 던져주셨다.
우리 프로그램의 레퍼런스를 위해서도,취재 기업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서도 너무나 큰 부분인데,
정말 큰 도움을 주셔서 고개 숙여 감사드렸다.


그리고 나는,

두번째 취재 기업을 찾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첫 촬영을 복기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