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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눈을 보고 던지는 첫 마디가 영포티를 결정한다

아재 개그, 옛날 얘기 그리고..? 가만히 있는게 답일지도

by 알렉스키드


한주 중 가장 피로감이 큰 목요일 퇴근 시간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두눈 옆에 자리한

귀를 통해 들어오는 나즈막한 한 마디

경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텐션이 바닥이라 차분하게 들었는지.
어, 밖에 눈이 온다는데요?


평소 같으면 창 밖을 내다보기라도 할텐데,

오늘은 너무 바빠서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심지어 눈 소식을 전한 선배도,

옆 팀을 지나다 젊은 직원들이 눈이 온다며

창밖을 바라보며 말하는 것 듣고 전해준 상황이었다


여기서 질문,

대부분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오늘 내리는 이번 겨울 첫 눈을 보고,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건낸 첫 마디는?


어. 뭐라고 했더라?
나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 어두워서 안보이는데 많이 오나요?”

잠시 고개를 돌린 뒤, 다시 모니터를 보면서 말이다.


모니터 옆 어딘가로 향할 에너지조차 부족한 순간. 여기서 잘 참자. 분위기 환기를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건 대부분 애처로운 아재 개그다.


갑자기 눈이 와서 센치해진건지,

20대 때 들으면 별로였던 눈에 대한 대화가 떠올랐다


보통 눈이 오면 멋쩍게 웃으며

회사 과차장들이 이런 농담(또는 독백)을 던졌다

지금 백번 양보해서 생각하면 그들도 의례 본인 나이와 직급에 주어진 “사회 기대에 응하는 루틴“을 실행한 숭고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아이고. 차 막히겠네.


백이면 백 이라는 해묵은 표현, 딱 이럴때 쓰인다

근데 오히려 이게 제일 깔끔한 경우에 속한다

눈을 보며 사무실에서 던지는 아재들의 멘트는 더하면 더하니까

눈 오는 날 여자친구와 명동에서 만나던 얘기

눈을 맞으며 헤어지던 대학생 때 이별 얘기

군대에서 눈을 쓸면서 하늘을 욕하던 얘기

친구들과 클럽에서(또는 나이트에서) 놀고 나오던 새벽에 눈을 봤다던 얘기


하나같이 “남이 들으면 감흥이 없는”데,

“본인이 가장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 이야기”들


난 이런게 정말 안타깝다

왜냐고?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니까 그러지, 젠장!


오분 전까지 눈에 긴장을 놓치지 않고

팽팽하게 회의를 하던(또는 업무를 지적하던) 사람이

눈을 보고 센치해져서는 혼자 들뜨는 맥락이 문제다


인생은 Context로 읽혀야하는데,

영포티들은 그걸 실패하게 된다. 눈 때문에!


하필 가장 힘든 사무실 업무 시간에

10대 20대 시절 순수하게 눈을 바라보던 추억을

누군가에게(대부분 앞 자리에 앉은 후배들) 웃으면서 이야기하다보니-


뭉클함이 뭉클함으로 읽히지 않고,

부담스럽고 불편한 사회 생활이 되어 버린다

차라리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고 있거나

혼자 조용한 카페나 바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을 때

주말 여행 중에 가족과 함께 있을 그런 때

눈이 와버리면 오롯이 감흥을 즐길 수 있으련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우리에겐 평일 낮 시간에 내리는 눈을 회사 후배들과 볼 수 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이 펼쳐진다. 그래, 우리도 안타깝다.


왜 우리에게는 혼자 오롯이 쉬어야하는 자유가 없을까? 업무와 사적인 관계가 칼로 무 썰듯이 잘리면 좋은데, 후배들은 되는데 왜 우린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센치해지지 말자는 것도 아니고,

회사 후배들이 보는 눈을 같이 보는게 불행한게 아니다


다만, 선택지가 분명히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잠시 추억에 젖어 예전 사진을 들춰보는 여유

배우자나 애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로맨스

친구들과 채팅을 하면서 예전 추억을 마음대로 떠드는 “적당한 수수방관”

나이 비슷한 동료와 조용히 공감을 하는 친목

조용히 지금의 감정을 SNS나 일기에 기록하는 감성


이렇게나 많은 선택지가 우리에게도 있다

이런 선택으로 마음껏 눈을 보며 즐거워해도,

그 누구도 우리를 흉보지도 않고,

나의 리액션이 영포티였네 어쩌네 되뇌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너무 많은 “직관”에 시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상사의 질문에 빠른 대답을 드려야한다는 압박

후배의 보고에 명확한 피드백을 줘야한다는 고민

업무에 치이면서도 양가와 아이들, 집안의 많은 이슈들을 우선순위에서 미뤄내고있다는 불안

남들은 일하면서도 주식창을 들여다보는데 나만 멀티가 안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


이런 많은 선택지가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지는데,

어떻게 우리가 “눈을 바라보며 솟아 오르는 감성을 절대 후배들에게 쏟아내면 안되고, 우리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 또는 공간을 찾아가야한다는” 결론에 도달 할 수 있겠는가!


나도 안다. 우리, 너무 힘들다!

그래도. 그래도 딱 한번만 참아보자.

어린 시절, 엄마가 저 나비가 너무 예쁘지 않냐고 설명을 하는데, 어린 나는 나비가 나비니까 예쁜거라고 일축하더란다.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설명과 의미부여가 많아진다.

딱 한번만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입을 열지 말고 눈에 담고 가슴으로 삼켜보자.

(우리 20대 때는 시키지않아도 그렇게 했다)


40대가 왜 20대의 행동을 취하냐고?

눈을 보자마자 20대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20대 시절의 감성을 간직하자는데 뭐 어떤가?


가슴에 묻어둔 감성이 눈을 보고 솟아 오른다면,

그것은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혼자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몇 없는 기회 아닌가.


오늘 내리는 눈을 보며 회사 선배와 퇴근하면서,

내가 무심결에 건낸 한마디에 선배가 크게 공감하며

굉장한 위로를 얻은 듯 좋은 표현이라고 말했다.


눈 내리는 소리가 참 예쁘다.


이런거다.

굳이 우리에게 주어진 아저씨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공감이 없는 어린 세대에게 기대지 않아도,

그저 나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과 감동을

나 홀로 100% 가져갈 수 있는 그런 기회.


영포티는 혼자 추억을 통해 힘을 낼 수 있어야한다.
얼마나 감사한가. 눈이 우리를 소년으로 이끄는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이 눈을 바라보자.
커피를 한잔 들고, 창밖 너머 웃으며 눈 속을 걷는
우리의 20대 시절을 나긋이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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