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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Apr 29. 2018

수성못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영화 GV]

* 아래 글에는 스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영화GV]

[오오[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영화 GV]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영화 GV]


  주인공 희정(이세영 배우)은 편입시험을 치기 위해 서울에 간다. 편입시험을 치고 나온 희정은 갈래갈래 찢어진 서울의 지하철에서 누가 봐도 지방사람 티를 내며 길을 잃는다. 멍하니 서 있는 그녀에게 다가온 서울의 낮선 이는 뺨을 후려치고 유유자적이 가방을 뺏어간다.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서울의 찬 공기가 희정에게 남았으리라. 

  감독은 이 날 오오극장 GV에서 ‘희정에게 정신차리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꿈도 목적도 없이 단지 서울에 올라가기만 하면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시작이 올 거라 믿는 희정에게, 과거의 나에게 하는 따끔한 충고 같은 것“였다고 말했다. 


  놀란 마음을 추슬러 햄버거 가게에 앉아 엄마에게 전화하는 희정으로 화면이 바뀐다. 햄버거를 입에 문 채 엄마에게 전화하며 우는 희정은 과거의 나를 떠오르게 했다. 힘든 서울 생활에 지쳐 엄마에게 전화하며 우는 밤들이 있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류에 몸을 맡긴 채 아무 생각을 하지 못 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희정이 엉엉 우는 동안 주변의 가게 손님들은 아무도 그녀를 신경쓰지 않는다. 

  유지영 감독이 보여준 잠깐의 서울은 냉담했다. 그리곤 서울을 향한 좌절, 실패, 아픔의 서사가 써진다. 희정은 편입시험에 떨어지고 다시 대구의 수성못이 등장한다.





  영화 전반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돌아간다. 대구에서 편입 준비를 하며 수성못에서 오리배 관리 알바를 하는 희정과 자살에 한번 실패해 사회봉사를 하면서도 다시 자살을 준비하는 영목. 희정은 너무나 맹목적으로 편입을 위해 달려가고 그렇게 열심인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반대편에서 영목은 동반자살을 위해 함께 할 사람을 모은다. 두 사람이 만나 벌어지는 일들은 내게도 있을법한 하지만 굳이 기억을 헤집어 들여다보고 싶진 않은 그런 이야기다.


  둘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다는 점에서 같지만 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사람은 죽음에 다다르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영화는 이 둘이 왜 그렇게 절정을 향해 가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영화의 시적점부터 캐릭터들은 자기의 목적의식을 갖고 이야기를 끌어간다.


  내가 잘 아는 공간이 등장한다는 편안함일까. 영화가 편안했다. 캐릭터들에 정이 갔다. 늘 무언가를 쫓아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대구는, 지방은 서울의 주변지로써의 역할이 주 였고 여성캐릭터가 소비되는 모습 또한 그랬다. 남자인 주연이 무언가를 해내고, 이루면 여자인 조연은 박수를 치거나 극적인 분위기 전환을 위해 위험을 가져오거나. 

 이 모든 걸 떠나 여성이 끌어가는 여성감독의 영화는 그 자체로 해방감을 주었다. 대다수의 독립영화들이 어떠한 메시지나 영화의 분위기를 위해 캐릭터를 낮게 깔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게 전개한다면 '수성못'의 희정과 영목은 영화의 진행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감독이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영화를 찍은 것 같다'는 GV 사회자의 평대로였다. 



  나는 희정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늘 벗어나고 싶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몰랐고, 지금 이 곳과 이 곳에 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정작 뭘 위해서 떠날 준비를 하는지 몰랐다. 당연히 떠나서도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은 패배자와 같은 행색으로 돌아왔다. 


  감독은 말했다.

"이 영화가 어둡게 끝나는 것은 내가 20대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일 것. 이 영화에는 영목이 죽으려 하는 이유, 희정이 편입하려 하는 이유, 그들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가 소개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실패로 귀결할 수 밖에 없는 엔딩을 낳았다. 그게 내가 20대를 보낸 깨달음이다"


  덧붙여 감독은 “지금 현재 대구의 20대가 가진 어떤 풍경이 있다면 이 영화가 이후 시간이 지나고 나서 퍼즐판 조각 중 한 개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한조각에 마찬가지로 나의 한조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굿즈. 비스듬히 흔들면 오리 한 마리가 튀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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