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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Mar 15. 2018

시급 6000원, 그리고 커피체리티

 "음료 나왔습니다"

  한 잔의 차가 글을 쓰는 내 앞에 놓여진다. 


  오늘은 아메리카노가 아닌 커피체리티다. 일주일에 3번쯤 얼굴을 보는 동네 카페 알바생이 추천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따뜻한 차를 마셔보세요” 그렇게 내 앞에 커피체리티가 놓여졌다. 글을 쓰기 싫어서 이 차 한 잔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커피열매를 따는 이의 거친 손과 작은 동네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는 알바생의 시급 6000원, 그리고 커피체리.





무쓸모의 쓸모 

  대부분의 커피체리는 버려진다. 필요없으면 버려지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 살고 있다. 끊임없이 나의 쓸모를 인정받기 위해 목소릴 높인다. 때론 옆 사람을 밟고 뒤돌아볼 틈 없이 분주하게 나아간다. 커피콩들을 둘러싸고 있는 과육 부분인 커피체리는 씨를 골라낸 후 버려진다. 무쓸모하기 때문이다. 화분에 들어갈 만큼 예쁘거나 향이 좋거나, 아니면 뛰어나게 맛이 좋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쓸모를 외칠 수 있는 목소리를 갖거나.


  문득 과일은 버리고 씨앗을 볶아 마시는 커피나무의 특징이 생경하다. 우리의 착취는 알맹이에 국한된다. 열매 자체의 과육이 적기도 하거니와 별 맛도 없다. 다른 과일과는 다른 취급이다. 수확되기 전 나무에 매달려있는 열매들은 맛있는 간식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채집된 직후부터 부패한다는 단점이 있다. 상업적인 활용가치가 낮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체리 속의 생두를 로스팅하면 그 다음 원두가 된다. 그리고 난 뒤 커피 체리는 버려진다. 


  버려지는 것에서 버려지는 나를 연상한다. 볼펜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사용자의 취급에 따라 커피체리의 운명이 바뀐다. 어쩌면 커피체리도 ‘버려지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커피체리 



  ‘밥하는 아줌마’라고 불린 급식노동자, 시간의 압박과 함께 노동하다 떨어져 죽은 외줄노동자, 서울역 노숙자, 음식점 배달부, 마트 판매원, 일용직, 무직자. 그들은 쓸모를 외치지 않는다. 쓸모를 고민하고 외칠 여유가 없다. 사회가 그들을 취급하는 방식은 그 쓸모를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커피체리 껍데기를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커피생두를 둘러싸고 있는 중요한 구성품이지만 까고 벗겨 밀어낸다.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을 그래도 지탱하며 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진정한 쓸모를 최선을 다해 실행하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해받지 못하고 그래서 연대하기 힘이 든,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삶을 산다. 손에 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목소리를 가진다. 손에 큰 피켓을 들고 하루 종일 서 있어도, 크레인 위에 올라가 확성기를 들어도, 곡기를 끊고  소리쳐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커피체리가 나무에 옹기종기 달려 씨앗만 내주고 버려지듯 그냥 지나칠 뿐이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커피체리의 활용

  모든 커피는 수확 후 껍질을 제거하고 과육과 점액질을 제거하는 정제과정을 거친다. 정제 후 남는 커피열매의 과육을 말려 차로 우려내면 카스카라(cascara), 즉 커피체리티가 된다. 카스카라는 스페인어로 껍질 혹은 피부를 뜻하는 단어다.   


  커피체리티처럼 쓸모없으면 버려지는 세상에서 다른 길은 생각보다 많다. 펄프들이 썩기 전에 그 시간 안에 펄프들을 건조시켜 안정화한 후 식품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댄 벨리보(Dan Belliveau)는 이것을 글루텐이 없는 밀가루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외에도 커피체리는 쨈이나 와인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홈리스의 자활을 위해 시작된 잡지 <빅이슈>가 떠올랐다. 찾아보니 벌써 7년을 버텼다. 시스템이 자리 잡도록 애쓴 사람들과 재능기부를 한 사람들, 매년 들어오고 나가는 홈리스 판매원들. 그리고 자립에 성공한 이들까지. 그들은 끊임없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실험 중이다. 완전히 썩기 전이라면 변화할 수 있다. 알아봐주고 손잡아 끌어내는 이들이 있으면 미미할지라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커피체리의 쓸모를 찾아보며 다른 길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결국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무쓸모의 쓸모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다시 내 앞의 잔을 바라본다. 따뜻하던 차가 식었다. 커피체리의 과육을 말려 로스팅한 커피체리티를 한 모금 마신다. 건포도같은 달큰한 향과 달리 맛은 쌉싸름하다. 한 모금에 커피체리의 쓸모를, 다음 한 모금에 나의 쓸모를 생각한다. 테이블 구석에 커피찌꺼기가 테이크아웃 잔에 담겨 있다.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해 퇴비를 생산하거나, 이를 압축해 연료로 활용하는 방법 등이 연구되고 있다는 기사를 기어이 찾았다. 커피 한 잔이 되는 것, 그조차 욕심이더라도 어디선가 쓰임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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